언어의 직공이 되라 - 건전한 성경 해석의 비결 자세히 읽기 시리즈 1
김지찬 지음 / 생명의말씀사 / 199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성경기자는 탁월한 언어의 직공이었다. 따라서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언어의 직공이 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아모스 선지자가 “너희는 벧엘로 오라, 그리고 범죄하라”고 외쳤을 때, 아모스는 제사장들의 예배에의 부름을 패러디화 하여 비웃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예배의 근거를 여호와가 아니라 바로 이스라엘 자신들에게 두었기 때문이다. 언어의 직공이 되지 않는다면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성경 기자는 “끝이 났도다, 끝이 났도다, 끝이 너를 치러 일어났나니 볼찌어다 임박하도다(겔 7:6)”라는 말씀과 같이 유사발음의 반복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소리의 대가였으며, “이스라엘 족속이 그 이름을 만나라 하였으며 깟씨 같고도 희고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더라(출 16:31)” 이 말씀처럼  독자를 설득하기 위해 함축적인 언어기술을 사용한 비유의 대가였다. 그 뿐만이 아니다. 추상적 사고를 생동감 있게 전달하는 직유, 인간적 표현들을 통해 세계의 현상을 이해하고 현실에 대응하는 방식을 제시하는 의인법, 인간의 사상의 신경을 건들려 전인격에 호소하는 상징과 같은 설득의 장치를 성경 기자는 유용하게 사용하였다. 이렇듯 성경기자가 탁월한 언어의 장인이었다는 점을 이 책은 자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성경을 읽으며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을 많이 접하곤 한다. 수로보니게 여인이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 주시기를 간청했을 때, 예수님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 하니라”고 하셨다. 이 여인은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   이다”고 답하였다. 이 여인의 큰 믿음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몇 년 전 이 부분이 이해가 안 되어서 머리를 꽤 아파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예수님이 그 여인에게 말한 어투가 얼마나 모욕적이었는가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인 듯 하다.

자녀와 개의 대조. “개”의 은유가 가진 강렬한 경멸의 정서가 자녀와 비교되면서 모욕의 강도가 한층 깊어졌다고 저자는 말한다.

또한, 여인은 예수님의 개의 은유를 확장시켜 자기의 목적을 위해 재형성시키고 있으며,   “주인 자녀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는 상 아래 개”의 이미지는 예수님께 강렬한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우리가 언어의 직공이 되지 않는다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성경을 성경기자가 하나님이 영감을 얻어 일사천리로 단숨에 써 내려간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성경 기자들이 각고의 노력으로 결정화된 것이다. 치밀한 구도와 세밀한 계산, 정확한 언어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새로운 감동을 받는 이유 중에 하나가 이것이 아닐까?

또한 이 책을 읽으며 “성경을 너무 건성건성 읽지는 않았나?“ 라고 생각해보는 좋은 경험이 되었던 것 같다.


끝으로 여러분께 하나만 질문하고자 한다.

세상에서 가장 문학적인 책은 성경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비단 나뿐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