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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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편소설 모음집은 언제나 환영한다.
짧은 호흡의 소설을 좋아하기도 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한 권으로 읽다 보면 나의 상상력 또한 풍부해지고 대중교통 안에서 잠깐잠깐 읽기도 좋다. 책 한 권을 가볍게 읽으려면 단편 모음집이 딱이다.
 
책 소개를 읽자마자 꼭 읽어보고 싶었던 [레이디스]

 

 책 제목만을 봤을 때는 단편소설 모음집인 줄도 몰랐고 작가가 이렇게나 유명한 사람인 줄도 몰랐다.
서스펜스의 대가, <더 타임스> 선정 역대 최고의 범죄소설 작가, 유명 영화들의 원작자이자 [캐롤]의 원작자
[캐롤]은 분명 사랑에 관한 이야기였다. 퀴어 영화였고 섬세하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기억한다. 비록 원작을 읽어보진 못했지만 범죄소설가와는 동떨어져 보이는데 미국과 유럽에서 추리작가협회 상을 수상할 정도라니 작가의 소개를 읽고 작가에 대해 검색해 볼수록 이 책의 내용이 더 궁금해져 갔다.
 

하지만 제목만으로는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질지 알지 못했다.
작가의 이력을 읽는 것만으로도 한껏 기대 중이었지만 제목은 심심하게도 [레이디스]
 
여성만의 이야기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내용들을 되짚어보니 각 작품 속에 나오는 여성들의 존재가 굉장히 강렬하다. 소설 속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듯한 여성들이면서도 결코 평범하지 않은 그들의 존재감. 작가 소개 페이지에서 말하듯 '타인에 대한 불안한 감정' 이 생생하게 담긴 책 속의 인물들이 책을 읽는 나에게도 전해지며 당장 어떠한 일이 생길 것만 같고 깊은 사연이 숨겨져 있을 것만 같아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큰 사건은 없지만 한 장면 장면이 섬세하고 예리하게 묘사되어 있고 그 정교한 심리 표현에 있어서는 흔하지만 독특한 여성 캐릭터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다.
 
작가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초기 심리소설들을 모아 출간하게 된 것이라 하니 제목을 먼저 정해놓고 쓴 작품들이 전혀 아니지만 전혀 다른 열여섯 개의 작품을 하나로 묶는 데는 [레이디스]라는 제목이 충분히 잘 어울려 보인다.

작품의 길이는 제각각이다. 단편소설 치고도 아주 짧은 이야기도 있었다.
7번째 작품인 [프림로즈는 분홍색이야]는 이야기도 짧지만 사건도 아주 단순해서 다음 이야기로 넘어갈 때 '어라? 이게 끝난 건가?'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시작은 분명히 흥미진진했는데 마무리가 생소하고 허무했다. 한데 리뷰를 쓰는 지금에서야 '아...!' 알게 된다.
작가를 알고 나면 책이 더 재미있어지는 경우도 꽤 있었지만, 특히나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그녀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나서 책을 읽는 것이 좀 더 이해하기 쉽다. 왜냐하면 작가는 장편/단편 할 것 없이 다작을 했고 한 번도 소재의 고갈을 느껴본 적이 없다는 말을 했었다고 한다. 그러니 [공 튀기기 세계 챔피언]이나 [프림로즈는 분홍색이야]와 같은 이야기들은 어떠한 소재라도 이야기로 만들어 내는, 특히나 별것 아닌 소재에도 긴장감을 불어넣는 그녀의 재능을 뽐내는 글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열 여석 작품 중에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것은 [최고로 멋진 아침]과 [모빌 항구에 배들이 들어오면]이다.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설정과 묘사들도 좋았고 배경이나 문장 하나하나는 평화로워 보이는데 이야기의 시작부터 끝까지 불안감과 긴장감이 감돌면서 별의별 상상을 하게끔 만든다. 물론 결말은 나의 상상과는 전혀 다른 쪽이라 더욱 신선했지만. 그것은 글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미드에서나 나올 법한 끔찍한 결말을 상상해서이기도 했으니 서스펜스의 대가라는 말이 정말로 맞다.
 
다만 수록된 작품들은 초기의 작품이라 그런지 내용이 신선하고 특이해서 흥미롭지만 어딘지 알 수 없게 밀도가 부족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상황 설명이 너무 부족하다거나 인물의 묘사가 너무 단편적이라 독자의 상상력이 꽤나 필요한 내용이 있다거나 하는 부분 말이다. 어쩌면 작가의 시그니처일지도 모르지만 이 책 한 권만을 읽었을 때의 느낌이 그러하다.
그래서 아무래도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꼭 읽어보아야겠다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초기 단편들이 이렇게나 흥미진진한데 영화화까지 되어 유명해진 장편들은 얼마나 더 흥미진진할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아직 작가의 그 어떤 작품도 읽어보지 않았다면 [레이디스]의 열여섯 작품을 먼저 읽어보는 것이 좋겠다.
읽는 내내 검은 오라를 내뿜어내며 자신만만하게 글을 써 내려가는 작가의 모습이 분명 그려질 것이고
그 작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에게 입덕하게 될 것이다.
 
 
 
** 작가의 작품이 [태양은 가득히]라는 영화의 원작이었는지 몰랐었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굉장히 관심 있는 '리플리 증후군'이 이 영화를 통해서 알려졌다고 하니 굉장히 놀랍다. 이러한 작가가 [캐롤]의 원작자라는 사실까지도 놀라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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