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명의 남자가 나온다.
1964년의 서울 이야기이다. 선술집이 나오는 첫 글부터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요즘은 포장마차도 쉽게 찾아볼 수 없지만 있다고 해도 여러 이유로 가지 않게 되었는데 어쩐지 옛날의 선술집, 포장마차는 쓸쓸하지만 정겹고 차디찬 장소이지만 마음에 온기를 넣어주는 곳으로 느껴진다. 그 시절만의 추억 같은 것. 그런 곳에서 세 명의 남자가 만나서 헤어지기까지의 이야기.
그중 서른대여섯 살짜리 남자. 그 남자는 현대에도 살아있다. IMF, 금융위기, 코로나 등등을 거치면서도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인 남자다. 남자이면서 여자이고 25살 이후의 모든 사람이며 1960년대 사람이면서 2021년에 살고 있는 사람이다.
이 책에 있는 12편의 작품 모두 잘 읽힌다. 후루룩 읽고 뒷맛이 씁쓸해도 금세 털고 다음 작품으로 넘어갈 수 있다.
깔끔한 문체지만 우울하고 껄끄럽고 답답하고 자극적이라 그런가.
문체는 지금 읽어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데 6.25 사변, 피난처, 통금 사이렌, 다방, 레지 등의 단어가 자연스럽게 나올 때 낯설다.
게다가 1960~70년대 소설이라 지금의 감수성과는 차이가 있다. 특히 현재의 성인지감수성을 잣대로 읽는다면 혼란스러울 것이다.
끼인 세대에 있는 나로서는 세상이 이렇게나 변했구나 싶은 정도지만 요즘 젊은이가 읽는다면 '엥..?' 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러니 당연한 얘기겠지만 그 시대를 반영한 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읽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김승옥 작가의 12작품이 끝났다.
비록 [무진기행]이 희망을 노래하는 책은 아니지만 읽고 싶었던 책이라 즐겁게 읽었다.
소장 가치가 있는 책이다.
작가가 더 많은 작품을 남겼다면 시대별로 우리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다.
** 아마도 책을 소개해 주는 팟캐스트에서 [무진기행]을 들었던 것 같아서 찾아봤다. 팟캐스트 '일당백' 에서 한국 단편을 소개해 줄 때 포함되어 있었다. 책을 읽고 다시 들어보니 '나 스포 당했었구나...' 싶네. 기억이 안 났던 것이 다행인가. ㅋㅋㅋㅋㅋㅋㅋㅋ
** [무진기행]을 영화화한 작품 중 1967년 [안개] 가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다고 한다. 김승옥 작가가 직접 각색했고 흑백영화. 보고 싶은데 어디에서 볼 수 있는 거지...?
※ 위의 글은 도서리뷰단에 선정되어 해당 출판사가 무상으로 제공한 책을 읽고 쓴 개인적인 소감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