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길을 잃는 이상한 여자 - 상상할 수 없는 독특한 뇌를 가진 사람들
헬렌 톰슨 지음, 김보은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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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할 수 없는 독특한 뇌를 가진 사람들"  에 대하여.

 

어렸을 때부터 나는 '세계의 놀라운 이야기' 시리즈 같은 책을 좋아했었다.

손끝에서 불을 지필 수 있는 사람이나 벌에 뒤덮여 살고 있는 사람,

자면서 미래를 예언한다는 사람, 전생을 기억한다는 사람, 

시간 여행을 했다고 주장하던 사람, 심령사진을 찍었다는 사람 등등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다.

실망스럽게도 어른이 되고 나서 깨닫게 된 것은

그 당시 읽었던 여러 권의 책 내용이란 대부분 책을 쓰기 위해 지어냈거나 사기꾼에게 속은 것이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여전히 어딘가에서 특별한 사람들이 살고 있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은 버리지 않았다.

그 특별함이 생기는 데에 왜? 어떻게? 라는 것은 나로서는 알 수 없지만

세상에는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있고 

종교적으로도 과학적으로도 우리들 자신이 무엇인지 완전히 정의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나 또한 가끔 '이 장면을 꿈에서 본 것 같은데...' 라거나 '여자의 직감' 같은 미묘한 느낌.

유독 사람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고 연예인들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것,

늘 사용하던 단어가 생전 처음 보는 단어처럼 느껴져서 몇 번이고 되뇌어 보는 것과 같이 

그냥 지나쳐버리는 사소하고도 사소한 이상한 순간들이 있는데 

나보다 조금 더 이상한 사람들이 있다 해도 전혀 놀랄 것이 없지 않을까.

 

그래서 실제로 존재하는 이상한 사람들, 정확하게는 이상한 뇌를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반가웠다.

누군가가 그랬다더라 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뇌과학과 임상심리학'으로 설명되는  이야기라니

믿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아직 연구 중이라고 할지라도 알지 못할 뿐이지 없던 일은 아닌 것이다.

 

물론 그들에게는 큰 고통일 수 있는 현상에 단지 흥미로 다가설 일은 아니다.

뇌의 수수께끼와 그들의 증상에 대한 나의 호기심은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고 

저자의 말처럼 인간의 뇌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고 싶다면 

독특하고 놀라운 뇌에 대해서도 함께 알아야만 하기 때문에 그들의 이야기를 알게 되어 반가울 뿐이다.

 

헬렌 톰슨은,

독특한 뇌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의 삶을 관찰하다가

우리 모두의 뇌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전체적으로 그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며

뇌에 관한 연구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했던 어느 과학자의 말을 떠올랐다.

곧 로봇이 인간을 대체할 거라는 우려나 우주 정복의 시대가 열린다는 희망찬 미래를 그리는 중에도

정작 우리는 우리가 가진 뇌 하나도 완전히 알아내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헬렌 톰슨이 만난 9명의 독특한 뇌를 가진 사람들은

어느 미래에는 더 이상 독특하지 않을 수도 있다. 

치료제가 개발되거나 간단한 수술만으로도 일반적인 사람들처럼 뇌가 작동할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우리들이 그들처럼 작동하는 뇌를 가지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안타깝게도 과연 사실일까 싶을 정도로 기이한 일이 그들에게 일어나고 있었다.

 

- 암기력과는 별개로 자신의 모든 순간은 기억하는 사람 : 기억의 본질

- 집안에서조차 길을 잃어버리는 사람 : 방향 감각과 심적 지도 

- 사람에게서 특정 숫자나 여러 색이 보이는 색맹인 사람 : 공감각과 파검/흰금 드레스

- 뇌 수술 후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사람 : 인격

- 끊임없이 들려오는 소리에 시달리는 청각을 잃은 사람 : 환각

- 자신이 호랑이로 변했다고 믿는 사람 : 동물화 망상증과 제노멜리아라는 질병

- 자신으로부터 분리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 사람 : 이인성 장애와 뭉크의 절규

-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사람 : 코타르 증후군 (걷는 시체 증후군)

- 타인의 촉감과 느낌을 그대로 느끼는 사람 : 거울 촉각 공감각

 

이렇게만 보아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실제로 책을 읽어보아도 그들의 상태를 그대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들이 거짓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데도 나는 전혀 느껴보지 못한 증상이기 때문에

아무리 자세히 설명을 해주어도 내 머릿속에서는 쉽게 그려지지가 않는다.

 

나는 어려울 것 없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기억하고

고통스러운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고 좋은 기억이 그 자리를 메우기도 한다.

타인의 슬픔에 함께 눈물 흘릴 수는 있지만 누군가가 손을 베었다고 해서 내 손이 아프지는 않다.

내가 나인 것을 낯설게 느껴본 적이 없으며 먹고 자고 듣고 냄새를 맡는 등의 일상생활을 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모든 것들이 자라면서 당연하게 나에게 장착되는 것이었고 모두가 그럴 거라 생각했다.

그러니 9명의 주인공들이 남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겪었을 혼란과 고통의 크기를 가늠할 수가 없다.

모두가 불행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미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내어

평범하게 살아가기 위해 많은 힘을 쏟고 있음에는 틀림이 없었다.

 

저자 또한 그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을 테지만 

그들을 찾아가서 현재의 삶을 보고 과거를 듣고 증상과 변화에 대해 귀를 기울이며 

그들과 함께 했던 연구팀 또는 의료팀들에게 의견을 구하고

그들과 비슷한 증상이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와 먼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기록들을 더해 다양한 각도로 풀어간다.

 

뇌 사진의 촬영에서 무엇이 우리와 다른지 그리고 어느 부분이 손상되었는지

해부학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면 그들이 변화하게 된 계기가 어디에 있는지를 놓고 

해마, 뉴런, 시냅스, 대뇌와 소뇌, 상뇌와 하뇌, 우뇌와 좌뇌, 전두엽, 두정엽, 측두엽, 상두정소엽,

후각뇌피질, 격자세포, 위치세포, 거울 뉴런 등등등등등 

뇌의 구조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증상에 대한 이해를 도우려 한다.

 

여러 가설을 포함한 설명들로 뇌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서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고 

실로 어려운 이야기지만 큰 부담이 없이 다가설 수 있다.

결국에는 뇌의 세세한 구조들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고

자극과 그에 대한 정보가 이쪽에서 저쪽으로 촘촘하게 이어질 때 정상적인 뇌 활동이 가능하다는 것 말이다.

연결 고리가 손상되거나 어느 한 부분이 없어도 살아갈 수는 있지만

독특하고 이상한 뇌를 가진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이와 같이 이상한 증상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할 것이고

많은 학자들이 해부학적으로든 심리학적으로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연구하고 있을 것이다.

뇌의 아주 작은 부분이 손상되어 그런 문제가 일어난 줄도 모르고 

자신이 미쳤다고 생각하다가 삶을 포기해버렸을지도 모를 사람들이 좀 더 많은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다.

 

물론 독특하다는 이유로 마녀사냥을 당하거나 전두엽 절제술을 당할 일이 없어진 것만으로도 많은 발전을 했지만.

 

아쉽다.

내가 이 책을 15년 전에 읽을 수 있었다면 나는 기꺼이 뇌과학자가 되기로 했을 것이다.





※ 위의 글은 서평 이벤트에 당첨되어 해당 출판사가 제공한 책을 읽고 쓴 개인적인 소감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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