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노 멜랑콜리 채석장 그라운드 시리즈
장문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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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 두 번 가봤는데 토리노라는 도시를 처음 들어봤다. 책을 읽다 보니 토리노 동계올림픽 이야기가 나와서 아 거기구나,,했다. ㅎㅎㅎ... 토리노는 이탈리아의 북서쪽에 위치한 도시라고 한다. 1861년 통일 이탈리아 왕국이 선포되었을 때 토리노는 이탈리아의 첫 수도가 되었다. 그 후 피렌체와 로마로 수도가 바뀌면서 토리노라는 도시에서는 수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이 책은 수도가 아니게 된 토리노에서 일어난 노동, 계급, 투쟁의 역사를 알려주고 있다. 책의 서문에 나온 문장을 잠깐 가져오면, '특히 고베티와 그람시, 그리고 무엇보다 고베티로부터 거대한 지적-도덕적 영향을 받은 토리노의 반파시스트 자유주의 지식인들의 자유에 대한 끝없는 열망에 대해 쓰려고한다.', 라는 말이 나온다. 책의 제목은 토리노 멜랑콜리인데 왜 멜랑콜리라는 말이 뒤에 붙었을까 정말 궁금했다.

토리노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유를 갈망하며 투쟁했지만 그러한 투쟁은 필연적으로 인간성의 상실을 가져온다. 인간이라는 존재를 사물화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토리노는 멜랑콜리의 도시가 될 수밖에 없다고 책은 이야기한다. 책을 끝까지 읽고 나니 저 말이 너무 와닿아서 계속 책 제목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제목을 넘 잘 지으셨어요,,,ㅠ 멜랑콜리,,, 멜랑콜리,,, 사실 멜랑콜리라는 단어의 제대로 된 뜻도 이 책을 읽으며 처음 알았다. 이렇게 일자무식의 길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게 책을 보내주신 세계 최고의 출판사 문학과 지성사,, 감사합니다,,


'민중이 국가가 되고 있다.'

토리노의 노동자들은 주권을 되찾기 위해 투쟁을 시작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괜히 내가 벅차올랐다. 내가 왜..?ㅠ 고베티도 그러한 노동자들에 대한 찬사를 책에 적었다고 한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 신기했다. 서양의 노동, 계급 투쟁은 우리나라보다 좀 더 일찍 일어났다고 생각했는데 토리노는 우리와 시기가 정말 비슷해서 놀랐다. 얼마 전에 조세희 작가님의 책을 한번 다시 읽었었는데 그래서 더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른다. 일본의 군국주의 아래에서 자유를 외치던 우리나라의 역사가 생각나기도 했다.

작가님이 토리노를 유난히 사랑하시는 이유 중에 이런 이유도 있을까? 나도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토리노가 점점 좋아져서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비행기 표 끊을 뻔 했다. 통장이 날 말려줬다^^...

토리노를 위해 생을 바쳐 활동했던 고베티와 그람시의 역설적인 죽음이 충격적이었다. 그람시는 감옥에서, 고베티는 테러의 후유증 때문에 파리에서 생을 마감했다. 두 사람의 짧은 생이 토리노에 남겨둔 유산은 너무나도 위대했다. 그런 사람들 역시 파시스트들에 의해 희생됐다는 사실이 너무 슬펐다. 파시즘이 나라를 장악한 저 시기의 이탈리아에서 자유를 외쳤다는 것이 너무 대단하다. 언젠가 토리노에 가게된다면 두 사람의 흔적을 꼭 찾아가 보고 싶다. 토리노에는 미래의 자유를 위해 자신들의 자유를 포기한 수많은 고베티와 그람시가 있었다.
문득 드는 생각은 왜 누군가의 희생없이 얻어지는 자유는 찾아보기 힘든 걸까? 이런 생각이 들면 자유란 대체 뭘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과연 다른 사람의 자유를 위해 희생할 수 있을까?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ㅠ

멜랑콜리는 '결여'에서 유래된다고 한다. 멜랑콜리적인 주체는 상실한 대상에 원래부터 있던 결여를 응시하며 "자신이 실패한 장소들로 되돌아가려는 충동"이 강하다고 한다. 멜랑콜리는 애도를 통해 상실의 현실을 인정함으로써 해소될 수 있다고 한다. 즉 애도가 완료되지 않으면 멜랑콜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책을 통해 토리노의 모든 것을 알수는 없었지만 아직 토리노라는 도시에 대한 애도는 완료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강 작가님의 소년이 온다에 이런 말이 나온다.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제대로 된 애도 없이는 미래의 희망을 꿈꿀 수 없다. 토리노가 멜랑콜리에서 벗어나 자유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나는 귀여운 고래의 도시 울산에 살고 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토리노와 울산이 어딘가 닮아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20세기의 이런저런 기억들이 뒤엉켜서 제대로 된 미래로 아직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유독 그러했다. 책 속의 설명을 참고하면 울산은 멜랑콜리 보다는 노스탤지어가 깊게 남아있는 도시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투쟁의 기억들을 자유의 역사로 변환해야 한다는 문장이 계속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수많은 사건이 일어난 땅 위에 발을 딛고 살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그 수많은 사건들이 모두 온전히 우리의 역사가 되지는 못했다. 누군가는 과거의 투쟁을 외면하고 어쩔 땐 똑같이 반복하기도 한다. 이런 책들을 읽으면 내가 항상 하는 생각이 있다. 과연 이 책을 내가 읽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이다. 더 어릴 땐 이런 의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요즘은 이런 생각이 든다. 이런 이야기들을 내가 읽고, 기억하고, 가끔은 행동의 양식으로 삼다 보면 좀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은 토리노야,, 그때까지 잘 있어야해,,, 내가 처음 만나게 될 토리노는 멜랑콜리에서 벗어난 도시가 되어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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