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의 비망록 -상 - 세계현대작가선 9
주제 사라마구 지음 / 문학세계사 / 1998년 11월
평점 :
품절


서평쓰기에 앞선 불평 한가지. 번역의 조야함이란, 내 전공서적에만 있는 것인 줄 알았다. 술술 읽히는 데서 오는 소설만의 쾌적함도 없었고, 역자 4인이 찬미하는 감동도 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번역이라는 것이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상식적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세상일에 쉬운 것이 어디 있으며, 어렵기 때문에 전문적으로 다루는 것이 아닌가. 그러기에 좋지 않은 번역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더욱이 포르투갈어 판 번역도 아닌, 1998년 판 영국 하넬사의 <발따자르와 블리문다>를 번역한 영·한 번역판에다가 4명의 공동번역이라니, 정말 실망이다.

사실 이런 나의 분노도 실은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두 권의 소설, 그것도 에코만큼 난해하고 복잡한 소설을 참을성있게 읽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결과가 신통치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저자 주제 사라마구는 이 소설로 명성과 부를 얻기 시작했고, 영광스러운 리스본 문학상도 받았는데, 내겐 왜 아무런 감동도 주지 못한 것일까.

아무래도 해답은, 에코가 했던 말대로 소설을 쉽게 읽으려 하는 나의 게으름 때문이겠지만, 소설은 소설이어야 하지 않을까. 뉴욕 타임즈는 이 소설을 두고 '한 편의 로망스이자 모험담이며, 18세기 포르투갈 왕가와 종교에 대한 반추인 동시에 권력의 사용에 대한 통렬하고 아이러닉한 비평'이라고 했지만 내 판단은 그렇지 않다. 이 소설은 '비판할 꺼리가 너무 많아 한 궤에 꿰이지 못했고, 풍자라고 일컬어지는 부분은 너무 피상적이고 직접적이라 맛을 느끼지 못했으며, 로망스치고는 싱겁고, 모험담이라기엔 박진감이 모자라는, 결국 이도 저도 아닌 소설이다.

다만 한 가지 맘에 들었던 것은, 주인공인 발따자르와 블리문다가 아무런 힘도 없는, 그러나 사실은 강력한 의지를 가진 인간들이었다는 점이다. 그 캐릭터 자체가 가지는 힘이 소설에 박진감을 불어넣고, 이 참담한 시대에 인간에게 희망을 걸 수 있게 만들지 않았나 한다.

결론은 났다. 그의 소설 읽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즐거움을 얻고자 하는 1차 목적만이 독서의 목적이 아니라면, 나의 독서를 더더욱 광범위하게 넓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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