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의 상상력
와카바야시 미키오 지음, 정선태 옮김 / 산처럼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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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에 대한 와카바야지의 상상력은 장 보드리야르가 읽어낸 보르헤스의 「오욕(汚辱)의 세계사」로부터 시작된다. “어떤 제국에서 황제의 명령을 받은 지도전문가는 매우 정확한 제국의 지도를 완성했다. 심지어 그 지도는 제국과 동일한 크기이기에 결국 제국의 영토 전부를 덮어버리고 말았다. 시간이 갈수록 지도는 낡아가고, 그와 더불어 제국의 국력도 쇠퇴해간다.”

이 이야기의 진실은 무엇일까. 지도가 낡았기 때문에 제국이 쇠퇴해진 것일까, 제국이 쇠퇴해졌기 때문에 지도가 낡고 만 것일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지도는 실제의 영토보다 작게 그려질 때만 가치를 가진다. 이야기 속의 지도처럼 1:1축적으로 지도를 그린다면 실제의  영토가 그러하듯 지도 역시 한 눈에 알아볼 수 없다. 인간의 눈으로 그렇게 큰 것은 볼 수 없다. 그렇기에 지도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은 ‘가시성(可視性)’이다. 즉, 지도는 실재와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실재를 볼 수 있게 해 준다. 하지만 보르헤스의 이야기 속 지도는 이상스럽게 실재와 동일하다. 와카바야지 미키오가 이 이야기를 서두에 꺼낸 것은 지도가 실재와 동일하다는 것, 즉 인간의 사회 인식이 지도와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말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있어 공간은 두 가지 차원을 가진다. ‘지금 여기’ 존재하고 있는 국소(局所)적 공간과 내가 존재하는 공간 바깥의 더 넓은 공간, 즉 전체로서의 전역(全域)적 공간이 그것이다. 스스로의 존재를 전역 내부의 국소로 파악하는 인식은 인간의 본래적인 생물학적 조건에서 기인한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을 분리하고서는 자기 자신을 파악할만한 방법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가 있는 ‘지금 여기’의 지도에 대해 말하기 위해 기원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초기의 ‘지도’는 신화적인 모티프로 충만한 기하학적인 무늬들로 구성되어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선주민 아보리니지의 ‘잉가푼가푸’라는 지도에는 물에 빠져 죽은 두 명의 조상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서식하는 에뮤라는 새, 그리고 바닷게 등이 그려져 있다. 또한 보르네오섬의 가쥬 다야크족 사람들의 지도에는 태양과 사자(死者)의 집, 생명수와 성스러운 집들에 둘러싸인 호수가 그려진 상계(上界)와, 물뱀이 살고 있는 운하가 있는 하계(下界)가 그려져 있다. 이같은 지도를 그리는 사회는 수직적인 깊이를 추구하는 사회이다. 반대로 캐나다의 바힌랜드 에스키모는 세계를 그들이 직접 생활하는 ‘작은 세계’와 주술사에 의해 지배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로 이분한다. 외부로 열린 이 불확정의 공간은 오로지 상상력으로만 알 수 있는 세계이다. 덕분에 그들의 세상은 확정의 공간을 넘어서서 미지의 공간으로까지 확장된다. 이 사회는 수평적인 넓이를 추구하는 사회이며, 이 사회의 인간들은 전역적 공간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세계의 상상적 확장’은 세계를 향한 의지로 변모한다. 미지의 영역에 대한 본능적 불안감은 세계에 대해서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되고,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하고픈 인간의 의지는 미지(未知)의 영역을 기지(旣知)의 영역으로 바꾼다. 더불어 측량 기술의 발달은 모든 토지와 공간을 추상적이고 등질적인 평면으로 생각하도록 인간의 사고를 전환시켰다. 형이상학적이고 신비스런 존재가 살고 있는 신적인 공간이나 황제가 살고 있는 중심으로서의 공간은 사라지고 측정가능한 탈중심으로서의 공간이 남았다. 과연 이같은 균질의 공간이 근대적 인간의 등질적 자아를 만들어 낸 것인지, 혹은 그 반대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더 가까운 곳에 있다면 ‘황제(皇帝)’나 ‘신(神)’, ‘인간(人間)’보다도 한 마리의 ‘개’나 ‘파리’를 더 크게 그리는 원근법적인 사고방식을 근대인이 가지게 되었다는 점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이처럼 지도는 세계라는 텍스트를 읽어내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다양한 노력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보편으로서의 공간에서 어떻게든 나의 위치를 조감하고 싶어한다. 그리하여 근대의 지도는 탐욕스럽게 그 가시성을 추구하며 이 지도에는 지구 표면에 있는 모든 것들이 구석구석 빠짐없이 기록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저 오래전 지도에 있던 수직으로서의 깊이는 사라졌다. 세계의 끝, 천상계와 지하계 등의 신비롭고 형이상학적인 공간이 깃들만한 곳은 더 이상 없다. 그렇다면 근대의 리얼리즘적 지도가 과연 과거의 낭만적 지도보다 더 정확하게 우리 사회를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것 역시도 ‘근대’라는 사회의 고유한 에피스테메epistēmē에 불과할 뿐이라고 저자는 단언한다. 근대의 지도는 그 낭만성을 상실했기에, 우리는 마치 경험을 넘어서서 확장된 세계 속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느낀다. 하지만 사실 우리가 차지한 공간은 불과 몇 평의 한정된 공간임을 잊고 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가쥬 다야크족의 지도에만 성스러움이 깃든 것은 아니다. 우리가 가진 어떠한 지도에도 성스러운 사물과 공간은 존재한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없다고 느낄 뿐이다. 『지도의 상상력』은 ‘상상으로서의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근대적 자아’의 정체를 집요하게 추궁하고자 하는 인문학도라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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