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과 '사고' 의 두 단편이 실려있다.
약속은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는 형사의 이야기이고, 사고는 우연히 작은 마을에 들어선 한 남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작가의 다른 글은 읽어보지 않았다.
뒤렌마트는 원래 스위스가 낳은 세계적인 극작가이고 , 추리소설은 순전히 밥벌이를 위해 쓰여진 것들이긴 하지만 그것 역시 뒤렌마트의 이름을 알리는데 이바지했다고 뒤에 설명이 되어 있다. 전통적인 추리소설의 틀(여기서는 아슬아슬한 사건의 줄거리를 쫓아가며 뛰어난 능력의 수사관이 나타나 수수께끼를 풀고 범인을 잡아 독자들에게 영웅이 되는 그런 추리소설이라고 말한다.)을 깨려고 시도한 작가라고 한다.

전통을 깨는 것도 좋고,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내는 것도 좋고, 이것이 추리소설인가 아닌가 고민하게 만드는 것도 좋고 다 좋은데, 내게는 이 두 단편이 그리 재밌게 읽히지 않았다. 그나마 '사고' 가 '약속'보다 낫긴 한데 개연성이라고 해야 하나? 허무맹랑하더라고 한편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할 수 있는 그런 것. 나는 그러한 것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두 단편이 보여주는 형식도 그리 참신한 틀이라 할 수 없고.

'약속' 은 연쇄살인범을 찾기 위해 예정된 밝은 미래를 버리고, 오로지 범인을 잡겠다는 일념으로 윤리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방법까지 동원하지만, 결국 실패한 한 수사관의 이야기를 그의 상관이 회상하는 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수사관이 느끼는 심리적인 변화, 압박 등을 바깥에서 바라보는 상관의 입장에서 서술하는 건데 그에 따른 흥미나 긴장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고, 질질 끄는 듯한 분위기에 꽤 지루했다.
좋은 소재이고, 비극적인 결말도 어울리는데, 읽는 재미가 없으니 아쉽다.

'사고'는 자동차 고장으로 우연히 한 마을에 들린 남자가 여관 대신 머무른 저택에서 그 주인과 친구들이 벌이는 재판의 피고가 되어 먹고 마시고 하며 의도하지 않은 살인에 대해 유죄판결을 받는 이야기이다. 그 주인과 친구들은 그저 재미로, 마지막 남은 인생의 유흥에 불과한 일이었고, 남자도 먹고 마시고 충분히 즐겁게 보냈지만, 아침에 발견한 것은 그의 자살한 시체라는 거다.
대충 거기까진 좋았는데 남자의 자살은 아주 난감했다. 어떤 힌트도 주지 않고, 죄책감을 느끼거나 하는 그러한 한 마디도 없이 돌연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너무 급작스럽고 쉬이 납득하기 힘들었다. 재판에서 돌연한 자살로 이르는 연결이 내겐 전혀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주인과 친구들이 사형을 집행하는 게 더 좋지 않았을까. 전형적이긴 해도.
그런데 읽다 보니 이 이야기는 왠지 연극으로 봤으면 더 좋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작가가 원래 극작가이기도 하고, 동일 공간 안에서 파티같은 재판을 여는 것이 딱 연극처럼 느껴졌다. 작가가 방송극으로 개작 발표도 했다고 한다.
'쥐덫' 을 연극으로 봤을 때 참 느낌이 남달랐는데 '사고' 도 분명 그러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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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추리 작가 협회에서 그 해 최고의 장편소설에 수여하는 던컨 로리 대거 상의 2006년 수상작.

무슨 대거 상을 받았다고 하면 왠지 읽어보고싶은 마음이 무럭무럭 생기기 마련이고, 또 퍼즐미스테리 운운하면 반드시 봐야된다는 의무감에 꽉 사로잡히게 된다.

하지만 기대를 충족시킬만큼의 만족도는 얻지 못했다. 역시 광고문구에 너무 기대가 컸나보다.(;;)

붉은 목도리가 선명하게 눈 위에 쓰러진 십대 소녀 캐서린의 시체.
8년 전에 사라진 캐트리오나라는 작은 소녀.
검은 갈까마귀떼.

그리고
소녀들과 연결된 백치 노인 매그너스.
다른 십대 소녀 샐리.
또 다른 작은 여자 아이 캐시와 엄마 프랜.

기나긴 묘사가 없어도, 짤막한 한 문장만으로도 캐릭터가 생생히 그려지는 그러한 글이 있다고 생각한다. 레이븐 블랙에는 많은 캐릭터들이 나오고, 캐릭터의 상세한 묘사가 많기는 하지만, 왠지 각각의 캐릭터의 개성을 이거다 하고 잡아내기에는 조금.. 너무 두리뭉실하다고 해야할 지, 구구절절하다고 해야할지...
중요한 인물인 캐서린과 매그너스, 그리고 샐리가 좀더 뚜렷하고 명확하게 다가왔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연관이 없는데도 책을 읽으면서 계속 떠오르는 책이 아가사 크리스티의 'ABC 살인사건' 이었다. 살인 사건과 전혀 관계없을 것 같은 외판원의 이야기가 함께 진행되면서 마치 외판원이 범인일거라고 읽는이가 지레짐작하게 만들어버리는 구성에서, 마치 매그너스가 이 외판원처럼 느껴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트릭이나 날카로운 추리력이 돋보이는 글은 아니지만, 딱히 많이 부족한 소설도 아니고..읽기에 무난한 소설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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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지금 타임퀘이크를 겪고 있는 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내 자유의지가 파업 선언한 걸 전혀 모르고 있는 상태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인생이 똥덩어리임을(혹은 아님을) 굳이 타임퀘이크를 통해 깨닫고자 하는 게 아니라고?

아무려나.

나는 언제나 이렇게 불량스럽게 뒹굴뒹굴 빈둥거리며 지낼테니, 남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지 않더라도 나 자신은 엄청 중요하고 멋진 삶은 살고 있다고 믿는 행운을 누리고 있는 바, 어느 순간 자유의지가 이번만 봐준다 하며 덥석 찾아와도, 이게 무슨 희귀한 조화인지 몰라 그 무슨 증후군에 휩쓸리지도, 자유의지로 움직인다고 믿을 지도 모를 자동차에 쿵 부딪힐 염려는 전혀 없을 것이다. 안심하자.
우주가 언제 변덕을 부려 과거로 한 10년쯤, 100년쯤 되돌아간다 할지라도 만반의 준비는 언제나 되어 있다.

딩동댕.

내 쬐끄만 뇌는 건재하고, 좀 삐그덕거리고 기름칠을 해야할 시기가 일년에 몇 번씩 있기는 하지만(간혹 그걸 잊을 때가 있다는 것은 애교로 봐주자.), 좋아하지 않는 것들은 전혀 좋아하지 않고, 무어가 옳은지 판단의 기준은 다수의 의견을 따르는 안전한 방법을 즐겨 쓰고, 엄청 못되게 굴 때(짖궂은 장난은 치지 않고 점잖게, 그러나 있는 힘껏 무시하기-유치하게)가 많은 그런 고약한 성깔머리이지만, 최소한 내 좋아하는 이들이 마음 쓰는 것에 마음 쓰길 바라며, 내 좋아하는 이들을 많이 생각하고 걱정하려 한다. 하길 바란다.
저 하늘에서 반짝이는 몇 개의 점(안 보이는 것도 몇 개)도 포함해서.

그것이 영혼이에요.

딩동댕. 딩동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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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조자들의 마법서 옥타보의 8개 주문 중 하나가 두개골 안에 떡 하니 박힌 덕분에 다른 주문들은 커녕 부릴 줄 아는 마법이라곤 하나도 없는 마법사 린스윈드.

어쨌든 이 세상은 사랑과 평화가 흘러흘러 넘쳐 턱 밑에서 찰랑거림을 믿어 의심치 않는 이쪽 동네에선 최고의 부자인, 바다 건너 온 관광객 두송이꽃.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온 우주와 죽음마저 관통하는 '슬기로운 배나무' 로 만들어진 다리'들'이 달린 짐짝.

이들이 펼치는 모험과 사랑과 우정의 대서사시!

......라는 건 순 거짓말~~


세상물정 모르고 사진찍기에 몰두한 관광객 때문에 도적들에게 쫓기고, 드라이어드에게 쫓기고, 드래곤에게 쫓기고, 짐짝에게 쫓기고, 떨어지고, 걸리고, 떨어지고, 넘어지고, 엎어지고, 쫓기고, 눈만 뜨면 백마 탄 '죽음'과 대면하는, 주먹질은 왠지 좀 하는 듯 하기도 하고 아닌 듯 하기도 한 린스윈드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처절한 사투~~~

.....뭐, 그 비슷한 이야기.


미국판 원서에는 '지도는 없다. 유머 감각을 어찌 지도화할 수 있으랴.' 라고 적혀 있다는데 나 또한 이 문장을 표절해야겠다.

이 유머 감각을, 그리고 이 끝내주는 재미와 흐뭇함을 내 짧은 글로 어찌 표현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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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생각난 건데 황모 출판사에서 나온다던 러브크래프트 선집은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스타일이라고 해야 할까.
읽는 책의 장르에 대해 편식이 심한 나로선 스타일이 어쩌구 저쩌구 할 아무런 뭐도 없지만 책을 읽을 때 아마 이런 걸꺼야.. 하는 기대 심리라고 할 그런 게 은연 중 생기게 된다.

그러니까 만일 아가사 크리스티의 '찰스 덱스터 워드의 비밀' 이었으면, 저 조그만 마을에 새로 이사온 찰스 워드라는 청년을 두고 뒷담화 좋아하는 우리 아줌마들과 마플 할머니가 애인을 죽이고 도망왔니 어쩌니 하다가, 결국은 여자땜에 인생 망친 유약한 청년이었다는 사실을 밝혀 내고, 동정심에 정원사를 새로 구해준다던가 하는 이야기를 은근슬쩍 기다리게 된다던가... ;;
혹 코넌 도일의 '이하동문' 이었으면, 아름다운 아가씨가 소식이 끊긴 약혼자 찰스 워드에 대해 문의하고, 이에 의협심이 발동한 왓슨을 홈즈가 툴툴거리며 따라 가서 결국 유산과 상속과 질병으로 뒤엉킨 숨겨둔 비밀을 파헤쳐 결국 약혼자를 구해낼 지도 모르는 그런 이야기를 기대하게 되어 버린다.

그러니까 러브크래프트의 '이하동문' 이라면 일단 마음 단단히 먹고, 촉수 괴물(..엉?)과 악한 주술사들이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니 조심 조심하면서, 다른 글들과는 달리 한 줄 한 줄 나아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엄청 집중해서 읽어야 한다고 미리 스스로에게 경고하게 된다.
그러니 고미술품과 역사에 비범한 관심을 보이는 찰스 워드라는 청년과, 그 청년의 선조 중 한 사람으로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려는 노력이 아낌없이 가해졌던  조지프 커웬이라는 정체모를 인물이 등장하자마자, '헛...이런 이런...이 쳥년..불쌍하게 됐군..' 하고 쯧쯧 혀를 차는 것은 당연함이 되어 버린다. 더불어 이 추악한 영혼이 어떤 끔찍한 짓을 저지르는지 잔뜩 기대할 수밖에 없게 되고.

'비밀' 은 시각적인 무서움을 느끼게 해주지는 않는다. 글들도 무슨 보고서처럼 이래저래 해서 이렇게 됐는데, 이래저래 해서 그렇게 해서 그렇게 되었다는 식으로 적혀 있어서, 스티븐 킹의 소설처럼 '오마나' 하며 잠시 책장을 덮는다던가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은근히 오싹하다.
묘지의 이상한 흙 냄새가 집 안을 가득 메우고, 개들이 미친 듯 짖어대고, 초상화의 눈동자가 기다렸다는 듯 생생하게 희번덕거리고, 결국 요그소도스까지 나오면 이제 세상의 종말이구나..하는 생각이 그냥 들고마는 거다. 그러다 마지막 페이지에 와서야 한숨을 쉬면서 당분간은 안전해, 당분간은... 하게 된다.

이 안전함은 다음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을 읽을 때까지는 유효하다. 어쨌든.
스멀거리는 광기와 영혼을 지배하는 사악한 마법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그것을 물리칠 수 있는 다른 주문을 기다리며, 혹은 대체 주문의 가능성을 타진하며 다른 책들을 뒤적거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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