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함께 읽는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
에릭 카펠리스 엮음, 이형식 옮김 / 까치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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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이 참 접근하기 어렵긴 어려운가 보다. '한권으로 읽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만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등을 비롯, 총 7부 14권(국내11권)인 방대한 원작을 분량을 줄이거나 만화로 표현하거나 하여 좀 더 읽기 쉽게 소개한 책들이 참 많이도 나와 있다. 나도 십여년 전 한 권짜리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산 적이 있는데 그 책이 원작이 아니라는 것을 이번 원작 중 제1부 1권인 <스완네 집 쪽으로1>을 읽기 전까지 전혀 몰랐었다. (그때 그 책을 한장도 읽지 않았다는 이야기 -_-; ) 첫번째 권을 읽어본 결과, 그 수많은 축약본과 만화책들이 왜 필요한지 조금 알 것 같기도 했다. 분량이 방대한 대작이기도 하거니와 한문장이 5줄,10줄로 이어지는 호흡이 아주 긴 문체는 서너장 읽을 때마다 꼭 한번씩은 '내가 이 짓을 왜 하고 있지?' 같은 의구심을 갖게 하고, 이해못할 문장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면 참다참다 급기야는 책을 던져버리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래도 원작을 놓기가 어려운 이유는, 결국은 읽게 될 것이고 또 읽어야 할 것 같아서이다. 근대 유럽의 문화사를 공부하다 보면 결국 프루스트를 비껴가기 어려우리라는 생각은 거의 확신에 가깝다. 요즘 읽고 있는 유럽 근대 미술사나 인상주의, 당시 화가들, 문필가들의 이야기에 프루스트나 프루스트의 소설 등 프루스트와 한다리만 건너면 연결되는 소재가 적어도 하나쯤은 나오니 피할래야 피할 수가 없을 듯 하다. 그래서 나도 축약본이나 만화책 등의 도움을 받아가며 원작을 천천히 읽어나가기로 했다.

<그림과 함께 읽는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는 원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회화적인 비유나 상징을 담고 있는 명문들을 뽑아 관련 미술작품과 함께 구성한 책이다. 이 책을 편집한 에릭 카펠리스 Eric Karpeles 는 각 페이지마다 짧고 적절한 설명을 달아 원작을 읽지 않은 독자에게 길잡이를 마련해 준다. 심상이나 심리묘사 등에 비해 줄거리가 중요한 소설은 아니지만 그래도 듬성듬성 뽑아 놓은 짧은 문단들만으로는 이야기의 전개과정을 이해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시각적인 묘사나 예술에 대한 묘사가 차지하는 부분은 참 크다. 프루스트 자신이 친구 쟝 꼭또에게 한 이야기처럼 그의 책은 '일종의 그림'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가 가진 재능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모아 언어의 한계를 실험하고 그것을 통하여 관념을 시각화한다. 그의 소설은 언어와 문학과 시각예술이 통합된 종합예술이다. 편저자는 이렇게 시각예술화된 프루스트의 원작에서 특히 회화와 관련있는 부분들을 뽑아 200여점의 도판과 함께 원작의 진수를 보여준다. <그림과 함께 읽는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의 원제가 핵심을 표현하고 있는 듯 하다. PAINTINGS IN PROUST.

이번 독서는 참 좋은 느낌이었다. 이 책은 원작의 가치를 빛나게 해주면서도 그 자체로도 독자적인 가치가 있는 책이다. 인간사의 단면에 대한 프루스트의 통찰이 담긴 명문들은 소설의 줄거리를 벗어나 있어도 의미가 퇴색되지 않는다. 또한 그와 관련되어 르네상스시대부터 인상주의시대를 넘나드는 회화작품들은 원작을 읽으며 머릿속으로 시각화하는 과정을 조금 더 쉽고 흥미있는 것으로 바꾸어 준다. 앞으로 원작을 읽어나가는 데 있어 이 책은 가끔 달콤하고 나른한 휴식이 되어 줄 것 같아 든든하다.

더하여.
소설속에 등장하는 화자의 화가 친구인 엘스띠르에 대한 이야기에 마네, 르누아르 등의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이 실려 있는 것을 보니 프루스트가 당시 새로운 고전의 대열에 합류하며 인정받기 시작하던 인상주의 화가들에게서 작중 인물에 대한 영감을 얻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인상주의를 비롯한 19세기 중반~ 20세기 초의 유럽 미술사에 집중하고 있는 나에게도 또 다른 자극이 되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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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세잔 Taschen 베이직 아트 (마로니에북스) 49
울리케 베크스 말로르니 지음, 박미연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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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오직 그림만을 위해 살았던  세잔(Paul Cezanne 1839~1906)과 그의 그림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Taschen사의 Basic Art 시리즈 중 한 권이다. 오늘날 현대미술의 아버지라 불리게 된 세잔의 일생과 그의 그림세계를 대표작 70여점과 함께 구성한 <폴 세잔>은 그림이 인생의 유일한 열정이었던 세잔, 색채를 통해 빛과  형태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함으로써 20세기 현대 미술의 지평을 넓히고 마티스와 피카소를 비롯한 후대의 미술가들에게 선구자같은 존재가 된 세잔을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깔끔한 입문서가 되어 주었다.

폴 세잔은 전형적인 예술가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복잡하고 예민하며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을 가진, 쉽게 흥분하고 때로 과격하며 광기 어린 열정으로 그림에 몰입하는 사람. 내향적이고 원시적이며 아이같은 순수함을 가진 사람.  집요하게 탐구하고 섬세하고 대담하며 격정적이면서 동시에 초월한 모순되는 성격을 가진 기이하고 이해할 수 없는 아웃사이더. 내향적이고 수줍음이 많았던 세잔은 파리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향인 엑상프로방스에 점차 은둔하게 되는데 일생동안 그를 매혹시킨 고향의 자연을 화폭에 담아내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면서 그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창조하게 된다.

"빛은 재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색채를 통해 묘사해야 하는 것이다." 세잔의 그림을 이해하는 키워드인 이 말을 나는 처음에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했다.  아마 이 책을 읽기 전에 인상주의에 관한 책을 읽고 있었고 그 속에 나온 세잔을 그의 인상주의친구들과 동일시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인상주의화가들의 중심에는 빛이 있었고 빛은 그들이 묘사하는 사물의  형태와 색을 결정하는 주체였으므로 색채가 주체가 되고 빛이 대상이 되는 세잔의 개념을 인상주의의 시각으로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

젊은 시절 세잔은 인상주의 전시회에 참여하기도 하고 인상주의화가인 까미유 피사로(Camille Pissaro 1830~1903)에게 인상주의 기법을 배우기도 하는 등 인상주의 친구들과  개인적으로 기법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가진다.  그러나 인상주의 그림이 지나치게 일시적이며 순간적이라고 느꼈던 그는 점차 인상주의와 멀어지게 된다. 세잔은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빛과 그림자의 효과를 넘어선 대상의 본질, 즉 그것들의 내재적이고 영원한 형태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p.46).  원시적인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그 자신의 시각으로 지각하고 이렇게 지각된 자연을 영속성과 불멸성을 가진 대상으로 재창조하는 작업을 통해 세잔은 그의  예술세계를 구축해 나갔고 그에게 색채는 형태와 빛을 표현하는 궁극적인 수단이 되었다.  전통적인 선 원근법이나 인상주의의 원근법이 아닌, 색채효과와 공간구성으로 깊이감을 창출해 내는 기법이나 엄밀하게 구성되어 전체적인 조화와 균형을 추구하는 신중한  창조작업은 현대적 '구성'의 개념, '디자인'의 개념, '창의성'이 전제된 '예술'이라는 개념에 토대가 된 듯 느껴진다. 말년으로 갈수록 구성의 개념이 발전하고 더 추상적으로 변모해가는 세잔의 그림은 동시대의 후배 화가들에게 광범위한 영향을 주었고 현대미술의 아버지라 불리게 만들었다. 그의 말년 대작인 일련의 <수욕도(bathers)>에서는 피카소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금 보아도 여전히 세련되고 모던한 그의 작품에서 후대의 현대미술이 잉태되고 있었음을 느낄 수 있다.  그의 그림은 21세기에도 여전히 매력적이고 눈길을 사로잡는다.

책의  텍스트는 다소 무미건조한 문체여서 글을 통해 세잔에 대한 인간적인 매력을 찾기는 힘들었던 것 같다. 긴 분량을 압축요약한 듯한 글은 이야기로서의 재미는  별로 없었다.  90여 페이지로 제한된 분량의 기획시리즈, 그리고 배경이나 문맥보다 한 사람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 '인물사'적인 구성의 한계가 아닐까 생각된다.  후반부의 세잔의 예술철학에 대한 부분은 조금 난해하기도 하지만 두세번 정독하고나니 상당히 많은 부분을 이해할 수 있었다.  반면 만족할 정도로 많지는 않지만 알뜰하고 성의있게 구성된 70여점의 도판은 그의 40여년동안의 스타일변천과정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조금 아쉬움이 없지 않지만 들고  다니면서 보기에 전혀 부담없이 느껴지는 가벼움과 질좋은 도판은 한번씩 꺼내보며 참고하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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