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페어 - 사법체계에 숨겨진 불평등을 범죄심리학과 신경과학으로 해부하다
애덤 벤포라도 지음, 강혜정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9년 6월
평점 :
절판


 

뉴스에서 화가 머리 끝까지 솟는 사건들을 접하곤 한다. 사회에 결코 나와서는 안될 것만 같은 범죄자들에게 터무니없는 형량이 나온다거나, 뻥튀기 3개를 훔쳤다는 이유로 징역 3년을 선고 받았다는 판결을 볼 때가 있다. 그럴 때 마다 판사들의 자질이 의심스럽다. 정의의 여신은 이해 당사자들의 차이를 보지 않기 때문에 눈 가리개를 했다 하는데 그녀의 정의는 전혀 공평해 보이지 않는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추의 무게는 동일한걸까?

어렸을 때 ‘별나라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도 우리 친구다! 이거 나이 제대로 인증하는구만)에서 보았던 오로라 공주의 마녀 재판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어떤 별에서 오로라 공주가 마녀로 몰렸더랬다. 오로라 공주가 의심에서 벗어나려면 물 속에서 익사하지 말고 살아야 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린 나이에 봤음에도 그것이 말이 안되는 것을 알고 안타까워하며 화를 냈다. 성인이 되고 그것이 실제로 있었던 재판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충격이었다. 현재의 우리는 그것이 비합리적임을 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900년 후 우리의 후손들은 우리의 사법제도를 어떻게 볼까? 우리가 900년 전의 재판을 보고 충격을 받은 것만큼 그들도 충격을 받을까? 그들이 우리 재판에서 편견과 불합리성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자신 할 수 있을까?

우리의 직관이 워낙 몸에 배어 있어서 그것이 잘못되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 힘들다. 그러나 우리가 사건을 판단하고 결과를 결정한다고 생각하는 그 직관은 사실 기껏해야 매우 불완전한 관심 사안 목록을 만들어낼 뿐이다. 최악의 경우 그것은 사건과는 대체로 무관하다. 가령 우리가 사건을 엉뚱한 방향으로 끌고 갈 가능성이 있는 익숙한 문제들을 모두 깔끔히 해결한다고 해도, 그리고 우리 제도가 원래 목적대로 정확히 운용된다고 해도, 결국 우리는 부당한 유죄 판결, 편향된 절차, 짓밟힌 권리, 불평등한 대우라는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다. 부정의는 우리 법률 구조 자체에 내재되어 있으며, 매일 매 순간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부정의의 근원은 편협한 경찰관이나 교활한 검사의 사악한 마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있다. p.19

수사, 판결, 처벌, 개혁. 이렇게 4부로 구성된 책은 우리가 사법제도에서 만날 수 있는 수많은 편견과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한다. 법률회사 변호사로 일하는 저자의 글은 내부고발 보고서를 읽는 것 같다. 법 집행까지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사법제도의 불공정한 부분을 볼 수 있다. 경량화된 조직, 시스템이 된 사법체계 안에서 벌어지는 비합리적인 판단, 상황이 벌어지는 심리적인 근거들을 설명한다.

“맞아. 상관없어. 상관없는 건 오로지 증거물뿐이야. 증거물은 오버롤 차림의 남자 따윈 없고, 개릿이 범인이라는 걸 보여주고 있어.”

“증거물은 그럴 ‘가능성을 제시할’뿐이죠, 라임. 그걸 증명해 주지는 않아요. 증거물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요. 게다가 나한테도 나름대로 증거가 있어요.”

(곤충소년 중에서)

CSI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우리의 수사도 매우 과학적으로 바뀌었다고 믿는다. 증거들이 용의자를 가리킨다는 말을 듣곤 한다. 사실 그렇지가 않다. 증거들은 거기에 있을 뿐이다. 해석하는 것은 감정적인 인간일 뿐이다.

“사법제도는 우리가 공정했는가라는 질문에 매우 민감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실수를 저지르지는 않았는지 자꾸 물어야 합니다. 그것이 지금도 제가 노력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p.262

사법제도라는 자체가 인간에 대해 부정확한 가정 아래에서 만들어졌다. 태생부터 불완전할 수 밖에 없다. 얼핏 보면 그것은 그런대로 괜찮아보인다. 자세히 들여봐야 알 수 있다. 법이 복잡하다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너희들끼리 알아서 하라고 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은 없어지고 만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문제다. 이 책은 문제점을 인지하고 바꿀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 발짝 그 가능성에 다가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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