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들의 아랫사람이 아닙니다 - 가족 호칭 개선 투쟁기
배윤민정 지음 / 푸른숲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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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호칭은 신분을 지칭할까?

왜 형이나 동생과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나아가 같은 두 여자 사이에서 호칭의 차등이 생기는 걸까? 여자들이 온전한 개인이 아니라 배우자에게 종속된 존재로 취급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p.27

탈권위적인 시아버지, ‘사랑한다’라고 말하는 시어머니, 제사 안 지내고 집안을 분담하는 가풍까지... 가족이 되기 전에 봤을 때 이상적인 가족이었다. 결혼을 하고나서야 뭔가 이상한 것을 깨달았다. 저자의 시어머니와 아들 둘이 함께 있는 ‘박가네’ 단톡방을 통해 집안의 대소사가 하달되었다. 결혼을 하고 가족이 되었음에도 수평적인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발언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생기만 가장 욕을 먹는다. 나만 그런건가?) 가족이기 보다는 집안의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동자일 뿐이다. 그리고 바라본다. 시가의 모든 가족들에겐 ‘님’이라는 글자가 자연스럽게 붙는다. ‘아버님’, ‘어머님’, ‘아주버님’, ‘형님’이 붙지만 시가 식구 중 그 누구도 막내 며느리에겐 ‘님’자를 불러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몇 번의 망설임 끝에 ‘아주버님’, ‘제수씨’, ‘동서’라는 호칭 대신 이름 뒤에 ‘님’을 붙이자고 의견을 내놓았다. 아주버님은 노골적으로 화를 내고 동갑내기 형님은 무시와 침묵으로 답을 했다. 그리고 백일잔치에서 말을 걸었다. “동서, 왔어?”

저자는 불편했다. 호칭이 불편했고, 아랫사람이라는 위치를 강요하는 것이 불편했다. 몇 번의 갈등 끝에 남편의 형 부부에게 사과를 했다. 이렇게 일단락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문제는 남았다. 이런 호칭과 위계질서는 당연한걸까? 아랫사람이라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감내해야 하는 것일까? 저자는 가족호칭 문제를 적은 머그컵 100개를 맞춰 주변에 나눠주며 반응을 살폈다. 그리고 이렇게 책이 나왔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했다고 그 집안에서 암묵적으로 낮은 위치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거리를 인정받고 존중받고 싶어 하죠. p.110

사랑하는 사람과 더 오래 함께 하고 싶다는 이유로 결혼이라는 걸 한다. 결혼을 해서 부부라는 이름만 얻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맏아들이거나 막내라는 이유로 내 위치까지 정해진다. 사회에선 막내라는 자리로 시작했다 하더라도 진급할 기회가 있다. 가족만이 자리를 고정하고 위치를 강요한다. 왜 가족 안에서는 이름이 없어질까? 이름 부를 일이 없으니 형님들 성이 기억 안 날 때도 있다. 내 이름은 아는 지 궁금해진다. 외국에선 있는 이름 선택한 것도 그렇게 열심히 부른다. 우리나라 이름은 좋은 날과 시간까지 맞춰가며 한자 한자 좋은 뜻, 듣기 좋은, 부르기 좋은 이름을 지어준다. 그럼 뭐하는가? 시집에서 난 ‘애미야’, ‘동서’일뿐... (아주버님들은 날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네.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당신은 가족들을 모두 ‘님’이라고 부르는데, 어째서 당신이 ‘님’이라고 불리고 싶다는 건 무례한 일이 되는 걸까?” p.152

작년 추석에 이 책을 처음 읽고 형님들에게 나만 ‘님’으로 불리지 않는다는 얘기를 했다. 다들 웃으며 “그렇게 ‘님’이 듣고 싶었어?”라는 말을 했다. 꼭 그런 건 아니었다. 차별적인 호칭에 대해 함께 얘기하고 싶었다. 막내며느리라는 자리는 늘 어리다고만 생각한다. 다행이 내가 나이가 가장 어리다는 거다. 만약에 내가 나이가 가장 많았다면? 그랬다면 어떤 반응이 나왔을까?

책에서도 그렇고 내 주변도 비슷하다. 호칭 그까짓꺼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 말이다. 다들 그렇게 쓰자고 약속한 것을 함께 쓰는 말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부터 ‘가장’이라는 단어를 ‘똥’이라고 부르기로 했다면? 가장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그날부터 아니 그날 전부터 난리가 날 것이다. 가장을 뭘로 보냐고... 가장을 똥처럼 볼 것 아니냐고... 말은 힘을 가진다. 호칭에 차등이 있다면 역할에도 차등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저자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호칭을 바꾸자고 이야기한다. 한 사람, 개개인 모두가 평등하고 존중받기 위해 쉬운 일부터(그까짓꺼) 바꿔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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