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그림 하나 - 오늘을 그리며 내일을 생각해
529 지음 / 북폴리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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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0일
"영감의 원천은 바로 '마감'이다."
- 미국의 사업가 겸 소프트웨어 개발자 놀란 부쉬맨(게임회사 아타리 창업자로, 흔히 '스티브 잡스의 유일한 상사'로 알려져 있다.

새로 만든 책갈피가 맘에 들어 여러 개 더 만들어 볼까 하고 본격적으로 스케치를 하고 있다. 이상하게 마감이 다가오면 이런 일이 제일 재밌고 잘 된다.  (p.333)

난 마감이란 걸 좋아한다. 그래서 회사 다닐 때 마감에 맞춰서 일하는 게 신났다. 일정을 고민하며 크고 작은 일들을 배분하고 마감일보다 일찍 일이 마무리될 때의 희열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매번 반복되는 회사 생활 중에 찾는 작은 기쁨 같은 거다. 빼곡하게 업무 일지를 채우고 체크 표시를 할 때는 또 얼마나 뿌듯한지... 그런데 내 인생이 마감일은 알 수 없어서 그런가 티슈 뽑듯이 살고 있다. 항상 그렇지만 반성해본다. 반성만 하고 잘 고쳐지지 않는다는 게 함정이지만...

책을 처음 받고 정말 365일이 다 있는지 궁금해서 휘리릭 훑어보았다. 매일 글로 쓰는 일기도 쉽지 않은데 그림일기라니... 매일매일 검사를 받아야 했던 그림일기도 미루다가 썼던 게 한두 번이 아닌데 자신의 의지만으로 매일 그림을 그린 작가가 새삼 존경스러웠다. 보통 11월 정도에 예쁜 달력이 나온다. 예쁜 달력이 당장 쓰고 싶어서 칸칸이 달력에 그림을 채워 넣고는 하는데, 의지력 제로인 사람이라 4월이 되기 전에 시들해진다. 열두 달 그림을 꽉 채운 달력 하나도 나에겐 늘 버겁다. 2019년엔 가능할랑가?

1월 29일
사소한 것들이 나를 지탱해 주고 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서 간신히 씻고 누웠을 때 이불에서 풍기는 좋아하는 섬유 유연제 향이나, 언젠가 마음에 와닿아 책갈피로 표시해 둔 책의 구절이라든가, 별 내용도 없이 시시콜콜한 친구와의 전화 한 통 같은 것들. 정말 아주 사소한 것들이 계속해서 힘을 내어 날 날아가게 한다.  (p.34)

여름에서 가을이 되면서 괜스레 서글퍼져서 한동안 힘들었다. (좋은 말로 소녀감성, 다른 말로 하면 계절성 우울증 정도 되려나?) 날 지켜준 사소한 것들은 잘 정리된 침대(내가 정리해놓고 혼자 뿌듯해함), 비율을 기가 막히게 조절해서 맛있었던 홍차 커피(우리 집 카페 시그니처 메뉴임), 집 근처 산책로의 햇살 사이로 스며든 햇살 같은 것들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 계속 있게 한다. 그리고 그들이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이자 힘이 된다.

마카롱처럼 기분 좋아지는 책을 만났다. 따뜻하고 달달해서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힐링이 되는 기분이었다. 너무 달콤해서 한꺼번에 많이 먹을 수 없는 마카롱처럼 이 책도 한꺼번에 읽을 수 없었다. 갓 건조기에서 꺼낸 듯 포근한 그림일기라 마음만 먹으면 금방 읽을 수 있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조금 더 오랫동안 가슴에 품고 싶었다. 몰랑해서 슈크림이 마구마구 빠져나오는 듯한 시간에 위로가 되는 책이다.

7월 29일
어쩔 수 없는 일들에 더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괜찮지 않은데도 괜찮다고 하는 날들이 많아지고, 내 이야기를 솔직하게 할 수 있는 일들이 적어지고, 앞으로의 일보다 지나온 일들을 보는 시간이 많아져도, '나'로 있는 것을 포기하지 않기를. 중심을 잡고 굳건히 서 있기를.
사랑하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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