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 메이커
에르네스트 판 데르 크바스트 지음, 임종기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시와 아이스크림이 그리는 강력한 삶의 연금술이라는 설명을 가진 책을 만났다. 언뜻 생각해보면 도무지 연결고리가 떠오르지 않는다. 뭔가 재미난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

소설은 주인공의 아버지가 여든 살 생일을 앞두고 사랑에 빠진 것으로 시작한다. 아버지가 지붕에 위성방송 수신기를 설치하자 천 개가 넘는 채널이 나오기 시작한다. 하루 종일 리모컨만 돌리던 어느 날 런던 올림픽에서 붉은 머리의 해머던지기 선수에게 첫눈에 반해버린다. 이탈리아 최북단 골짜기 마을인 베나스 디 카도레에서 주인공인 조반니 틸라미니는 태어났다. 아이스크림이 이 골짜기에서 발병됐다고 믿는 사람들. 최초의 아이스크림을 만든 사람은 조반니의 할아버지인 주세페 틸라미니다. 베나스 골짜기의 아이스크림 장수들은 매년 봄이 되면 집을 떠난다. 돈을 벌러 네덜란드로 떠나 아이스크림 가게를 열어 장사를 하고 겨울이 되어야 고향으로 돌아온다. 이들은 대대손손 아이스크림 제조하는 가업을 잇는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자란 조반니, 루카 형제는 아이스크림 장수 외의 삶에 대해 생각해본 적조차 없다. 조반니는 '리처드 하이만'이라는 사람을 만나 시를 알게 된다. 그는 후에 세계 시 축제의 디렉터로 세계 여행을 하며 자유로운 삶을 누리는 동안, 동생 루카는 가업을 이으며 그만의 아이스크림을 만드는데 열중한다. 조반니는 자유를, 시와 자유를 얻는 대신에 가업을, 그가 첫눈에 반해버린 소녀를 포기해야 했다. 그 소녀는 동생의 와이프가 되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도 동생 부부에겐 아이가 없었다. 동생인 루카의 정자의 움직임이 없다는 것. 가업을 이을, 아내가 그토록 원하는 아이를 낳기 위해 루카는 형에게 은밀한 제안을 하는데...

그 은밀한 제안이 나오기까지는 사실 좀 지루하다. 내용이 문제가 아니다. 시인인 주인공이 시인들과 시에 관해 열심히 이야기하는데 내가 못 알아들을 뿐... 초반의 지루함을 이겨내며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그때부턴 속도가 붙는다. (그래, 기다린 보람이 있어야지!)

다들 먹고사는 걸로 고민을 한다. 나도 그 걱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가끔씩은 우리 부모님이 엄청 잘 나가는 가게를 하셔서 내가 가업을 이으면 어떨까? 아니면 음식 솜씨 좋으신 시어머니가 국숫집을 하셔서 그걸 내가 이어받는다면? 말도 안 되는 생각이지만 내가 지키고 이어나갈 무언가가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물론 착한 딸도, 착한 며느리도 아닌 내가 잠자코 그 일들을 물려받을 리 없다는 건 잘 알지만... 내 인생은 내가 개척하는 거예요! 절 틀 안에 가두려고 하지 마세요! 하며 냉큼 도망갔을거다. 안 봐도 뻔하지... 수의사였던 아빠는 동물을 좋아하는 나와 동물병원을 개업하고 싶어 하셨으나 난 과학을 못했다. 어린이집을 함께 하고 싶으셨던 엄마는 나와 어린이집을 차리고 싶어 하셨지만 난 애들을 싫어했다. 근데 무슨 가업이냐. 난 애초에 루카같은 인생은 살 수 없는 사람이었나 보다.

소설은 에로틱하고 유머러스하다고 뒷장에 적혀있는데 내가 아는 에로틱은 아니었다. (뭘 기대한 건가?) 하지만 그보다 좋은 느낌으로 남았다. 화자가 시인이라 같은 표현을 해도 뭔가 있어 보인다. 아이스크림이 혀 안으로 말려들어가는 듯한 부드러움과 달콤함처럼 말이다. 책을 덮고 남은 여운이 감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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