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인 시차
룬아 지음 / MY(흐름출판)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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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에세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기발하거나 흥미진진한 스토리도 없는, 누구나 느낄만한 잔잔한 독백 같은 글을 왜 읽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제 그런 에세이가 좋아진다. 이 책의 부재처럼 우리가 다르고 닮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리라.

<사적인 시차>는 인터뷰 웹진 '더콤마에이'의 작가 룬아가 직접 쓴 글과 찍은 사진이 있는 에세이다. 어딘가 시크해 보이는 이름의 뜻이 궁금해졌다. 특정한 대상을 가리키는 정관사 'the'와 보편적인 대상을 가리키는 부정관사 'a' 사이에 있는 콤마. 보통의 것들이 이 공간을 통해 특별해진다는 뜻이란다. 이름만큼 예쁜 글이 가득했다. 그렇다고 '나 좀 꾸며봤소!'라며 힘이 잔뜩 들어간 문장이 아니라 무심히 걸친 가디건에서 온기를 느끼는 듯한 글이었다.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고 늘 생각하지만 그게 쉽게 안된다. 글에도 얼굴이란 게 있어서 타고나는 걸까?

신은 나를 만들 때 눈치를 너무 많이 넣었다.
예민이라든지 민감이라든지 하는 것들도.
귀도 잘 안들리고 눈도 나쁜데 왜 굳이 촉만 좋게 말야.
덕분에 엄청 피곤하긴 하지만 괜찮다.
잘 활용하면 달란트가 되기도 할 테니까.

나는 나의 가장 미숙하고 취약한 부분까지도
좋아하기로 결정한다,
이다지도 비장한 이유는,
저절로 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p.92)

한때 '신이 나를 만들 때' 테스트하기가 유행할 때가 있었다. 그 결과로 나는 순수함을 한 스푼 넣고 귀찮음을 세 스푼 넣고 똘끼를 왕창 붓는 결과가 나왔다. (이번에 기억나서 다시 해봐도 또 같은 값이다. 진짜 그런 건가?) 가끔씩 생각해본다. 나에겐 어떤 달란트가 있는지... 사실 신은 나에게 많은 걸 주셨다. 무언가 해보고 싶어 시도하면 남들보다도 빨리 좋은 결과가 나오곤 했다. 하지만 나의 재능은 그저 다 취미가 되었을 뿐이다. 신은 나에게 가장 중요한 재료 중 하나인 열정과 끈기를 깜빡하셨기 때문이다. 아무리 찾아봐도 1도 보이질 않는다. 작심삼일이라도 매일 100번 하면 1년이라는데 난 그것마저 열정적으로 하질 않는다. 누굴 탓하랴.

사진을 좋아한다. 아무리 미술관을 다녀봐도 사진전이 제일 좋다. 암실에 들어가본 적도 없고 원리 같은 건 아무리 들어도 잘 이해가 안 가지만 나만의 시선으로 기록을 남긴다는 것, 시간을 시각적인 사물로 잡아둔다는 느낌이 좋다. 완벽하게 컨트롤할 수 없다는 점은 오히려 해방감을 준다.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사진은 찰나를 잡은 행위다. 같은 장소로 돌아간다고 해도 같은 사진은 찍을 수 없다. 놓친 순간은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사진을 찍은 사람은 스쳐가는 모든 장면에 마음을 던져본다. (p.123)

나도 사진을 좋아한다. 작가처럼 사진전을 더 좋아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말이다. 책 속 사진들은 내가 흔하게 생각하는 일상과 약간의 거리는 있지만 누군가에겐 그것조차 일상일 테지. 한 여름의 나른함 속에서도 에어컨 바람 앞에 앉아 있는 것 같은 청량감이 느껴지는 사진들이 매력적 있었다. 작가의 색깔이 묻어나는 사진들로 가득했다. 나도 내 카메라가 생긴 이후로 무수히 많은 사진을 찍었는데 아직도 내 색깔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바라는 사진은 이런 감성적이며 약간 몽환적인 느낌인데 내 사진을 둘러보면 쨍한 색감과 베일 듯한 날카로운 선예도를 자랑한다. 내 취향에 반하는 사진만 찍을 수 있다는 게 참 재미있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같은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도 사람들마다 다른 사진을 담는다. 사진의 매력은 그런 것 같다. 나만의 것. 찰나를 영원으로 만드는 것...

두 사람 사이의 시차란
불편하고도 묘하게 사적이다. (p.187)

<사적인 시차>란 제목이 좋다. 시차는 한 물체를 두 개의 다른 시선으로 보았을 경우에 생기는 물체 위치의 차이를 의미한다. 시간의 차이를 의미하기도 한다. 거리가 아닌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 생기는 차이를 시차라고 표현한 게 재미있다. 시차는 다름이다. 틀림이 아니다. 우리의 삶에도 정답은 없을 거다. 다양한 다름들이 존재할 뿐... 그래서 우리는 다르고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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