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구나! 우리 장신구 작은 것의 큰 역사
박세경 지음, 조에스더 그림 / 한솔수북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한솔교육 // 작은것의 큰 역사 // 곱구나! 우리 장신구 // 고운 우리 장신구 어떤것들이 있을까? 


전 댕기노래가 있는건 처음 알았어요.


댕기 댕기 궁초댕기 

우리 아배 서울 가서 

닷냥 주고 떠 온 댕기

우리 어매 수공 들여

곱게 곱게 접은 댕기 

...댕기노래중 ...


옛날 여자이들이 부르던 민요예요.

아버지가 서울에서 끊어 온 옷감으로 만들어 준 댕기 하나에 형제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을 보여주고 있지요.

 댕기노래뿐만이겠어요. 

물거품으로 만든 장신구라는 이야기는 어여쁜 공주가 물거품이 너무 이뻐서 장신구로 만들어달라는 내용인데 물거품을 어떻게 장신구로 만들수 있겠어요. 금새 사라져서 버리는 물거품! 이름난 장인이 공주가 직접 이쁜 물거품을 골라주면 아름다운 장신구를 만들어준다 했다죠. 공주는 물거품을 잡을 수 수 없음을 알고는 금으로 된 장신구를 만들어 머리에 꽂았다고 하네요.

그밖에도 옥잠화로 피어난 옥비녀와 얼레빗과 거울, 가체 올린 어린 신부이야기등 설화에 나오는 이야기등이 나왔네요.



장신구는 왜 하게 되었을가요?


장신구를 하는 가장 큰 목적은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서죠. 옛날에는 지위와 신분을 나타내기 위해서, 신을 받들고 소원을 빌기 위해서, 나쁜 기운으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서도 장신구를 했죠. 또 적을 위협하기 위해서도 했죠.


신석기 시대에는 자연재료로 장신구를 만들었어요. 

동물을 잡아 먹고 난 뒤 동물뼈나 뿔, 조개를 이용해서 만들어 뒤꽂이, 목걸이, 발찌도 발견되었죠.


청동기시대에는 금속장신구를 만들기도 했고 삼한시대는 옥과 구슬등 다양한 재료가 쓰이기도 했죠.

삼국시대의 장신구는 삼국시대별로 서로 다른 특색을 나타내기도 했어요.

백제는 우아하고 섬세한 기술을 돋보였고, 신라시대에는 장신구의 황금기를 달리기도 했죠.

가야는 구슬, 철등 공예기술이 뛰어났으며, 고려시대에는 불교와 원나라의 영향을 많이 받기도 했어요.

조선시대에는 남자들도 장신구를 사용했어요. 



전통 장신구는 종류도 많아요.

머리에 하는 장신구는 비녀, 떨잠, 족두리, 화관, 첩지, 뒤꽂이, 댕기,귀고기, 남바위, 전모, 패랭이, 갓등이 있었어요.



몸에 하는 장신구는 노리개, 목걸이, 단추, 장도등이 있었어요.

발과 팔에 하는 장신구는 가락지, 팔찌, 버선, 여러가지 신발등이 있고, 갖고 다니는 장신구는 주머니와 갈모, 경대, 부채등이 있어요. 

특별한 날에는 특별한 옷과 특별한 장신구를 했어요.



돌잔치때에 남자아이들은 저고리에 풍차바지를 입었고 색동을 덧댄 까치두루마기를 입고 긴 조끼모양으로 된 전복을 입었죠. 머리에는 복건을 쓰고 발에는 타래버선을 신고 허리에는 돌띠에는 오방색 오곡주머니를 달기도 했어요.

여자아이는 돌날에 색동저고리를 입었고 저고리 깃과 고름은 자주색으로 꾸몄고, 머리에는 검정공단으로 지은 조바위를 썼는데, 수가 예쁘게 놓인 조바위에는 오색술을 달기도 했고, 발에는 역시 타래 버선을 신었죠.


장원급제때에는 연두색 앵삼을 입고 복두라는 관모를 쓰고, 복두 뒤에 어사화를 꽂았어요. 어사회는 다홍색, 보라색, 노란색등 색색의 종이로 만든 꽃으로 왕이 내리는 장신구라고 했죠.

또한 장원급제자는 합격했다는 증서인 홍패를 받고, 어사주라는 술도 마셨죠. 


그리고 혼례때에는 이야기를 안꺼낼 수 없죠.

신부는 동백기름이나 아주까리 기름을 머리에 발라 윤을 내고 얼굴에는 하얗게 분을 발랐고, 입술과 볼에는 연지를 발랐죠. 이마에는 연지를 붉은 점을 찍었고, 그러면 발그스레하니 신부가 참 예뻐보였어요.  머리에는 용잠을 꽂고, 쪽진머리에는 긴 비녀를 꽂고 비녀 양쪽에는 댕기를 감아돌려.

마지막으로 머리위에 오색 빛깔의 칠보로 장식한 화관을 썼죠.

신부의 옷차림은 자신을 불처럼 크게 일어나라는 뜻으로 빨간 치마에 노랑저고리를 입었죠.

그리고 그 위에 궁중에서 공주가 입던 예복인 활옷이나 왕비가 입던 예복인 원삼을 입었죠. 원래는 궁중에서 입던 옷이지만 혼례날에는 특별히 일반 백성들도 입었죠.

신랑의 옷차림은 궁중 예복 차림으로 혼례를 올렸어요. 파란 관복에 사모관대라는 사모에 가죽을 감싼 허리띠인 각대, 발레는 장화생긴 목화라는 신발을 신었죠.


상중일때는 우리가 모둘 알고 있듯이 모두 수의를 입었고, 장례를 치르는 사람들은 모두 삼베로 지은 옷을 입었어요. 남자는 요질을 허리에 둘렀고, 머리에는 굴건이라는 관모를 쓰고 삼껍질을 왼쪽으로 꼬아 만든 둥근 테인 수질을 다시 둘렀죠. 다리에는 행전이라는 천을 찼죠.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오동나무 지팡이를 짚었죠.




지금도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따져서 하지는 않지만 갖추어 차려입으려고 노력은 하죠.

특히나 돌잔치때 아이들의 한복이나 혼례때, 상중일때는 많은 사람들이 전통을 찾아하고 있어요.


예전보다 그형식이나 과정은 간소화해졌지만 우리의 문화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도 많답니다.


빛나는 우리 문화!!! 우리가 아끼고 사랑해줘야하는데 말이죠.

불편하다 우리것은 번거롭다라고 생각해서 우리의 전통을 잊고 사는듯 싶어요.

우리것의 우수성 우리의 장신구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것 같아요.


장신구의 하나하나 그뜻과 의미가 하나하나 깊으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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