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의 미, 칠월의 솔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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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월의 미, 칠월의 솔

 

  김연수 작가를 처음 만났다. 그동안 문학을 멀리한 탓도 있었고, 특정 작가를 제외하고는 한국문학에 그리 크게 관심이 있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신간소식에서 김연수 작가를 만났다. 그리고나서 상속자들에서 김연수 작가의 원더보이가 나오더라. 요즘 두루두루 읽으려고 노력하는 터라 작가의 문체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나는 바로 스마트폰을 통해 김연수 작가를 검색해보았다. 얼마전 낭독회도 하시고, 벌써 등단 20주년이라는 소식에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정말 나는 김연수 작가의 작품을 만난 적이 없었던 것일까. 딱히 생각이 들지 않았다가 2009년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가지 즐거움'이 떠올랐다. 아, 완전히 처음 만난 것은 아니었구나. 그리고 내가 읽고 싶어했던 책 리스트에도 김연수 작가의 책이 있더라. 도착한 책에 커버를 씌우곤 가만히 바라보았다. 반갑다, 사월의 미 칠월의 솔!

 

  김연수 작가를 인식하게 된 시점부터 남자라는 것을 알았으니 읽으면서 '남자였어?'하고 놀라지는 않았지만, 참 글이 여성스럽다고 생각했다. 읽고 있던 부분의 화자가 여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잔잔했다. 굳이 표현하자면 단조의 곡같은 느낌이랄까. 무엇인가 뚜렷하지 않은 낡고 빛바랜 것들을 꺼낸 느낌이다.

 

 

  <깊은 밤, 기린의 말>

  인내심이란 뭔가 이뤄질때까지 참아내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포기하는 일을 뜻했다. 견디는 게 아니라 패배하는 일. 엄마가 알아낸 인내심의 진정한 뜻이 그게 맞다면, 그 1년이 지난 뒤부터 엄마는 진짜 인내하게 됐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우리 머리 위에는 거대한 귀 같은게 있을 거야. 그래서 아무리 하찮고 사소한 말이라도 우리가 하는 말들을 그 귀는 다 들어줄 거야. 그런 귀가 있어 깊은 밤 우리가 저마다 혼자서 중얼거리는 말들은 외롭지도 슬프지도 않은 거야.

 

  자폐아 태호의 가족들. 여기서 인내의 의미인 포기는 손을 놓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여전히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엮여있다. 그리고 포장된 무언가로 위로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그 자체로 '거대한 귀'가 다 들어준다. 다 포용해준다. 그렇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려준다.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서귀포시 정방동 136-2번지에서 바다보면서 3개월 남짓 살았어. 함석지붕집이었는데, 빗소리가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우리가 살림을 차린 사월에는 미 정도였는데, 점점 높아지더니 칠월이 되니까 솔 정도까지 올라가더라. 그 사람 부인이 애 데리고 찾아오지만 않았어도 시 정도까진 올라가지 않았을까? 그 석 달 동안 밤이면 감독님 품안에서 빗소리를 들으면서 누워 있었지.

 

  화자의 이모는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한 제주도의 집 함석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가 그렇게 좋았다고 한다. 너무 로맨틱해서 부럽더라. 애틋한 사랑의 기억. 그런 이모의 꿈은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며 죽는 것이었는데,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이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다. 영화감독도, 아이도, 미국에서의 남편도. 이모는 사랑하는 사람을 대신하여 사랑했던 사람의 아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관계를 연결한다.

 

  죽는 순간에 마지막으로 보게 될 얼굴이 평생 사랑한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면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더라도 그건 불행하다고 할 수밖에 없어. 그러니 무조건 결혼을 하고, 그다음엔 아이를 낳아.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전부야.

 

 

  <주쌩뚜디피디를 듣던 터널의 밤>

  큰누나는 두사람의 삶이 서로 겹친다는 것을 알게 도ㅒㅆ단다. 그래서 엄마가 다시 한번 인생을 살 수 있다면, 그건 우리도 또 한번의 삶을 사는 게 된다는 사실을. 다시 말하면, 우리가 또한번의 삶을 살 수 있다면 엄마 역시 다시 한번 인생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그렇게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터널에서 누군가 노래를 부른다. 화자는 큰누나와 함께 엄마를 찾아 안산의 그 터널로 향한다. 그리고 네 번을 통과하면서 엄마의 이야기를 나눈다. 그 안에는 그들의 추억이 있다. 이제 세상에 없는 엄마와의 추억이다. 화자의 졸업식에 빨간스커트를 입고온 엄마와의 추억. 그리고 죽기전 옷을 다 꺼내서 다시 입어보며 세월을 오가던 엄마와의 추억. 네 번을 오가는 동안 화자는 계속 못듣다가 마지막 터널의 끝에서 "주쌩뚜디피니", "쥐뻬리따꾸피앙상" 엄마의 목소리를 듣는다. 여기선 어쩐지 내가 오싹하더라. 저건 프랑스어고 '모든 게 끝났다는 걸 안다, 사랑은 떠나갔으니까. 한번만 더 둘이서 사랑할 수 없을까'라는 내용의 노래라고 한다. 엄마가 죽기전에 반복해서 들으면서 부르던 노래. 우리는 삶을 어떻게 살고 있는 걸까? 나는 누구와 기억이 연결되어 있을까?

 

 

  단편들로 이루어진 이번 소설집은 관계에 대해 풀어내고 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고. 서로의 기억과 기억이,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 관계가 연결되어 있다고 작가는 여러 소재들을 들어 이야기 한다. 그렇다. 우리는 그 관계속에서 추억을 만들면서 살아간다. 아름답게. 아름답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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