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퀘스천 One Question - 내 인생을 바꾸는 한 가지 질문
켄 콜먼 지음, 김정한 옮김 / 홍익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원 퀘스천

 

  우리는 살면서 난관에 봉착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그 난관을 헤쳐나가기 위해 해답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 해답은 여러 곳에 숨어있다. 그 중 하나는 멘토를 만나는 일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한 명의 멘토가 아닌 여러 명의 멘토를 만난다. 인생에 대한 멘토, 연애에 대한 멘토, 직업에 대한 멘토 등등 삶의 분야는 아주 다양하기 때문이다. '원 퀘스천'은 다양한 멘토들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다양한 분야에 대한 내 갈림길에서 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기회

  우리는 기회를 스스로 시작하고, 끝내고, 심지어 만들기도 ㅏ지만 대부분의 경우 앞으로 무엇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보지 못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런 일을 아주 능숙하게 해나가는 데 반해서 어떤 사람은 번번이 실패하고, 탈락하고, 그리하여 아주 형편없는 환경에서 살아갑니다.

  그런 차이는 도대체 어디서 시작되는 걸까요? 나는 여러 요인들 가운데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두려움은 동전의 양면 같은 것으로 두려움 없이는 기회도 없습니다. 바로 두려움이 우리 삶의 나침반 구실을 한다고 여겨지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기회를 만나고 만든다. 그리고 그것들을 맞대응하기도 하고, 흘려보내기도 한다. 기회는 선택이다. 그리고 선택에는 등가교환의 법칙에 따라 기회비용이 따라온다. 결국 선택은 변화를 암시한다. 내가 갈림길에서 선택했을 때 무엇인가 변화가 일어나기도, 일어나지 않기도 한다. 내가 그것을 지나쳤다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선택했을 때에는 변화가 일어난다. 대개 선택에서 갈등한다. 그 이유는 바로 선택에서 오는 변화의 두려움 때문이다. 사람의 앞날을 예측할 수 없기에 우리는 변화로 인해 나타나는 알 수 없는 안개같은 두려움에 대해 갈등한다. 하지만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급변하는 현 사회에서 도태된다. 그렇기에 변화에서 오는 두려움에 대해 우리는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지금의 안락함 속에서 현상유지를 바라는 사람도 있다. 생각해볼 것은 그 현상유지가 과연 현상유지일까, 도태되는 것일까? 누군가가 수백 번, 수천 번 말해준 들 자신의 생각이 변하지 않으면 어렵다. 그렇기에 스스로 생각해보자. 기회는 인생에 단 한 번 오는 것이 아니다. 실패해서 아주 형편없는 환경에서 살아갈 수도 있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많은 기회들이 있다는 점을 기억하고 그 기회를 맞이할 준비를 미리 하는 것은 어떨까? -실패는 운과 외부영향도 있지만, 자기 자신이 그 기회를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얼마나 되어있는 지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실패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기쁘게 기회를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의 꿈을 찾고 도전하려면 처음에는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인 '시작은 미미하나 끝은 창대하리라'라는 말은 꿈을 찾아 도전하는 청년들에게 딱 어울리는 조언입니다.

  아이디어는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다. 그 아이디어가 기획이 되고 표면으로 드러날 때 그 아이디어는 자신의 것이 된다. 브레인스토밍을 하다보면 이런저런 아이디어들이 많이 나온다. 가령 예를 들어 예전 브레인스토밍 때, 장난삼아 '과일 소주'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었다. 당시에는 향만 첨가한 몇 가지의 과일 소주가 유행이었다. 향만 첨가한 후 일반 소주값보다 꽤 높게 책정되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진 한 사람이 말했다. '수박을 잘라서 껍질만 남도록 파내고 소주와 수박을 같이 넣어주면 안돼?' 그 말이 나오고 2년 뒤쯤이었을까. 실제로 소주가 과일에 담겨나오기 시작했고, 향이 아닌 과일과 소주를 믹서기에 넣고 갈아서 나오는 과일주들이 대거 등장했다. 이렇듯 누구나 생각은 하지만 쉽게 실행으로 옮기진 못한다. 꿈을 꾸고 있다면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는가, 말로만 꿈이라고 외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결단력

  많은 사람들이 어릴 적부터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는 버릇에 길들여져 있다. 인생의 목표에 대한 확신도 없이 대학에 진학한다. 앞으로 어떤 직업을 가질지 선택을 못했기 때문에 전공을 고르는데도 미적거리게 된다. 그러다 대학 1학년 동안 꿈에 그리는 직업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하지만 이때 필요한 것은 그런 고민이 아니라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다.

  요점은 이렇다. 젊은 시절에 단호하게 결정을 내리는 버릇을 들이지 못하면 죽을 때까지 우유부단하게 살게 될 것이다. 자신이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하기로 결정했다면,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어려운 일들에 주눅 들지 말아야 한다. 어떤 방향이든 한 발짝이라도 움직이려고 결정하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진보하게 된다.

  요즘은 변화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주입식 교육이 팽배하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결단을 내리기 보다 정해진 이정표에 따라가는 것에 더 익숙하다. 그에 따라 우리의 결단력을 그리 많이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결단력을 가지는 일에 대해 매우 소홀한 편이다. 열심히 하라는 것을 바라보고 행했기 때문에 결국 우리가 결정해야 하는 대학진학 시 전공선택이나 대학 졸업 후 진로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아직까지 대학진학에 있어서 자신이 원하는 전공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점수에 의해 따라가는 경향이 많다. 그렇기에 대학 진학 후 고민한다. '나는 과연 무엇을 위해 이 길을 선택했는가.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앞으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말이다. 딱히 지금의 전공에서 자신이 갈 길을 못찾았을 경우 자퇴를 하고 전과를 하고, 반수를 하고, 휴학을 한다. 아니면 물 흐르듯이 대학생활을 마치고 진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인생은 누군가가 대신 살아주는 것이 아니다. 한 번뿐인 내 인생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 결단력이 필요하고, 그 결단에 대한 실행력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용서

  우리는 '용서하고, 잊어버리자'고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건 결코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상처받았던 순간을 마음속에서 완전히 지울 수는 없습니다. 어떤 사소한 이미지, 극히 짧은 말 한마디조차도 그때의 상황을 되살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때의 기억들에 붙잡혀서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를 그것들이 결정하도록 만들 수는 없습니다. 상처는 남지는 곪아터지지 않게 할 수는 있다는 것입니다.

  용서는 한 번의 행동이라기보다 하나의 연속되는 과정이라고 게일은 말한다. 용서하는 과정에서 그 사람과 마주 앉아 저녁식사를 할 수도 있고, 신뢰가 깨진 관계에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첫발을 내딛어야 할 수도 있다. 또한 용서는 당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일일 수도 있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비록 상처는 깊게 받았지만, 그 상처에 집착하지 않기로 했어. 난 당신에게 나쁜 감정을 갖지 않기로 선택한 거야."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상처를 주고 받는다. 그런 우리는 흔히 용서를 할 수 있다와 없다의 갈림길에 놓인다. 용서는 사랑과 같다. 누구나 뼈아픈 기억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그 사람을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이미 나는 그를 용서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두 가지의 상황 모두 그 기억을 지울 수는 없다. 우리는 언제든지 그 상황을 떠올릴 수 있다. 그것과 전혀 무관한 이야기에서도 떠올릴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용서의 의미를 다시 짚어볼 수 있다. 용서는 그때 그 상황들을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다. 내 마음이 어떤 결정을 내리고, 어떻게 행동을 하고 있는지에 달린 것이다. 내가 용서한 사람과 용서하지 않은 사람을 대할 때 내 마음이 어떻고, 내 행동들이 어떤지 비교해보면 답이 바로 나오지 않는가?

 

  감사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사를 선택 사항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의무 사항에 더 가깝다. 결국엔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 못지않게 감사를 필요로 한다. 포크 감독을 만난 그날은 나에게 감사의 의무라는 게 무엇인지를 깨다게 해주었다. 하지만더 중요한 일이 있다. 그것은 내가 그 만남을 통해 감사할 줄 아는 힘을 키웠다는 것과 이제 다시는 그 힘을 잃지 않겠다고 맹세했다는 사실이다.

  오늘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생각한 혹은 말한 사람이 있는가? 나는 우리엄마다. 지금도 철들진 않았지만, 지금보다 철이 없던 시절 엄마에게 감사하다고 이야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설날, 부모님 결혼기념일, 어버이날, 엄마생신 등 기념일이나 명절에만 그랬던 것 같다. 사실 부끄럽기도 하고 해서 말을 제대로 못했다. 그래서 그 때만이라도 열심히 편지를 썼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SNS가 발달함으로 인해 엄마와 메신져로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러면서 엄마와 이야기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예전보다 감정표현도 많아졌다. 출근하는 딸래미를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셔서 밥상을 차려주시는 엄마. 가끔은 내가 평소보다 일찍 출근할 때면 일어나셔서 꼭 잘다녀오라고 배웅해주신다. 그런 엄마에게 오늘 제일 먼저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다. 감사는 선택이 아니라 의무라고 한다. 자신이 하루에 해야 할 리스트 순위에 올라와있는 '하루에 한 번이상 감사하기.' 항목.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해야 할 때가 아닐까?

 

  세상은 넓고, 우리는 끊임없이 선택을 하며, 그 선택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조언'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얻고 싶어하는 그 '조언'들은 너무 분야가 많고 다양해서 우리는 속속 그 답들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럴 때, 이 책을 읽어보면 어떨까? 원하는 모든 의문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이 안에서 공감할만한 '조언'들이 기록되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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