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심리학 - 나도 몰랐던 또 다른 나와의 만남
아네테 쉐퍼 지음, 장혜경 옮김 / 북하우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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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물의 심리학

 

  누구나 특별한 물건을 가지고 있다.

  누구나 자신만의 특별한 물건을 가지고 있다. 오래됐던, 낡았던,  닳았던, 지금은 쓸 수 없는 무엇이더라도 개인에게는 매우 소중한 물건. 나는 물건에 대한 집착이 심한 편이었다. 가져오면 그것은 마치 내 일부라도 된 양 버리는 일이 극히 드물었다. 그렇기에 정리할 때에는 아주 피눈물을 뚝뚝 흘리는 심정으로 그것들을 내보내곤 했다. 그렇다고 물론 아무 것이나 다 주워오는 것은 아니지만, 그 정도로 물건에 대한 추억이 많았다. 소모품은 가차 없이 버리긴 했지만, 심약한 나로서는 인형은 절대 버릴 수 없는 존재와 같아서 엄마는 인형 처지 곤란으로 고민을 하시다가 결국 내가 없을 때를 틈타 인형들을 내 방에서 몰아내곤 하셨다. 그 후 나는 그 인형들이 없어진 걸 알고 엄마에게 인형들에게 지어준 애칭을 불러대며 찾곤 했다. 아직도 내 방에는 인형들이 많다. 물론 애칭은 전부 있다! 그런 나를 저자는 물건 속에 감춰진 정체성과 자의식, 내면의 고백을 발견하는 심리 여행으로 초대하였고, 나는 흥미를 가지고 저자와의 여행에 내 시간과 물건들을 실었다.

 

  천재지변 혹은 도난으로 인해 잃어버린 것들

  천재지변이나 도난을 당한 사람들은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게 단지 인간에게 가장 최소요건인 의식주와 관련되기 때문일까?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과거, 내면의 세계, 자아를 잃어버렸다고 표현했다. 그렇게 사람들은 물건에 추억을 담고, 자신의 세계를 담는다.

  "돈만 훔쳐갔다는 걸 확인하고 얼마나 안도했는지 몰라요." 한 프랑스 여성은 이렇게 강조했다.

  그렇다. 돈은 우리에게 추억으로 기억되는 물건은 아니다. 대체 가능한 물건이자, 교환수단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돈 자체에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지 않을 뿐더러, 돈에 추억을 불어넣지 않는다. 그렇기에 프랑스 여성은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흥미롭게도 우리는 그러한 물건들에 대해 평소에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없어졌을 때에는 그 물건과 그 물건 속에 담긴 자신의 인생 조각을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그런 물건과 밀접하게 닿아있다. 아기 때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서 우리는 이미 물건과의 사회문화를 배우고 그 안에 내 자아를 불어넣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물건들과 분리할 수 없다.

 

  물건과 정체성의 관계

  물건과 우리의 관계는 매우 밀접하다. 물건이 가지는 의미가 상당하기 때문이리라. 이는 가장 쉽게 우리가 흔히 말하는 결혼 반지의 예시에서도 알 수 있다. 결혼 반지는 그 사람이 반려자가 있다는 상징성의 의미다. 하지만, 개인에게 있어서 그 반지는 어떤 추억이 담아있는지 모르는 소중한 반지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의사에게 의사가운은 상징성이자, 자신의 노력과 시간이 묻어있는 옷이고, 역시 다른 유니폼을 입는 사람들도 자신의 유니폼은 자신의 시간이 녹아있는 소중한 것임이 틀림없다. 이와 같이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 물건으로 우리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다.

 

  휴대전화

  이 시대 최고의 산물이 아닐까 싶다. 현 시대에 있어 휴대전화는 소통의 기본 수단이자, 없어서는 안될 필수 물건으로 인식되어 있다. 휴대전화는 실시간으로 연락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부모와 자녀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고 있지만, 그 기능으로 인해 독립성이 떨어지기도 한다. 언제나 필요할 때, 부모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심리학자들과 교육학자들은 휴대전화를 젊은이들의 건강한 독립을 지체시키는 '가상의 탯줄'이라고 부른다. 물건은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지지만, 그에 따른 단점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휴대전화 역시 간편하고 실시간 연락이 되며, 이제는 정보까지 얻을 수 있는 좋은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사회성을 약화시킨다는 단점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는 사용하는 이들의 깨달음이 있어야 극복가능하다고 본다. 따라서 본인은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훗날 혹은 지금의 자녀들에게 어떻게 사용하도록 지도할 것인가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가 아닐까 싶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물건에서도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 각각 가지고 있는 정체성이 다르기 때문이리라. 마치 어릴 때 시킨 교육같은 느낌이다. 여자아이에게는 분홍색 옷을, 남자아이에게는 파란색 옷을 입히는 그런 원리랄까? 물론 여자와 남자는 성차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후천적 사회성이 아니더라도,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후천적 사회문화의 영향이 더 크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건은 스토리를 담고 있다.

  어떤 물건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사람에 대해 알 수 있다고 저자는 심리학자 샘 고슬링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나도 책에서처럼 '염탐'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새롭게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말이다. 염탐을 하자면 먼저 물건들이 쓰는 언어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정체성을 표현하는 "나는 이것이다."와 위장은 아닌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하고, "나는 이렇게 느낀다/느끼고 싶다" 감성적 욕구를 말해주는 주변을 살펴야 하고, "나는 이것을 한다"는 주인의 흔적을 찾아야 한다. 흥미가 생긴다면 한 번 둘러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낡은 것이 사라진 곳에 새 것이 자랄 수 있다.

  생활환경이 바뀌고 상황이 바뀌면 주변에 있는 물건들도 바뀌어야 한다.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 그와의 사진 혹은 같이 쓰던 물건들을 내다 버리듯이 말이다. 그것은 잘못된 행동이 아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겠다는 상징적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물건을 버릴 때, 버린 것을 떠올리며 후회하지 않도록 어떤 의미가 있는 물건이었는지, 떠나보내기로 결심했을 때 다시 한 번 존중해주고 보내야 한다. 물건이 꽉 찬 곳에 새로운 물건이 들어올 공간은 없다. 내보낼 물건을 정리해야 자신을 정리하고 새로운 물건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도 알아두자.

 

  물건의 많고 적음이 그 사람의 인생을 반영하진 않는다.

  물건의 소유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이 행복한지, 불행한지는 알 수 없다. 위에서 말했듯이 위장일 수도 있고, 사람마다 소중히 여기는 물건은 다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유한다고 모두가 행복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이것은 극히 사적인 것이므로, 자신만이 알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자신은 어떤 물건들 속에서 어떤 추억과 의미를 되새기며 살고 있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내보내야할 것은 없는지, 나는 그 안에서 행복한지 한 번 생각해볼 시간을 이 기회를 빌어 가져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는 생각하며 글을 마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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