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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감정수업 - 스피노자와 함께 배우는 인간의 48가지 얼굴
강신주 지음 / 민음사 / 2013년 11월
평점 :
많은 사람들이 이 책에 대해 대형 출판사의 꼼수에 놀아났다며 아쉬워한다. 하지만 책 자체만 놓고 본다 해도 많은 아쉬움이 남는 책이다.
이 책에서 내가 느꼈던 가장 큰 아쉬움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성"에 대해 너무 간과했다는 점이다. 글쓴이가 "감정"을 소재로, “감정”에 중점을 두다보니 “이성”은 신경 쓸 겨를이 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글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인간이란 이성을 지닌 동물”이라는 점을 계속 상기하면서 글을 썼어야만했다. 이처럼 이성을 배제한 채 글을 쓰다보니 ‘철학자의 어드바이스’는 너무 감정적이고 극단적인 처방이 되었다. 혜민스님이 그러지 않았던가. 감정이란 계속 형태가 변하면서 움직이는 것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감정은 이성이 충분히 돌아올 때까지 오랜 시간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감정은 이성보다 빠르고 즉흥적이기 때문에 주변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이기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따라서 글쓴이는 순간적인 감정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언급을 해주었어야 했는데 그것이 없다는 점에서 많이 아쉽다. 차라리 감정을 철학이 아닌 심리학의 눈으로 다루었다면 덜 극단적이었을까?
또한 감정을 개방적인 관점으로 바라보지 않았다는 점도 한계점이다. 문학작품에 워낙 연애소설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인지 "사랑을 하는" 단일적인 상황설정을 통한 감정 설명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호의'라는 감정을 ‘이성 간의 사랑’이라는 울타리 안에 가둬놓고 설명을 한다. 하지만 호의는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도 베풀 수 있는 감정 아닌가? 이처럼 사랑 이외에도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 속에서 충분히 특정한 감정을 가질 수 있는데 왜 ‘사랑’이라는 상황에 집착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감정에 대해 좋고 나쁨을 정의 내리는게 과연 가능한지도 의문스럽다. 물론 보편적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은 긍정, 미움 이라는 감정은 부정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감정은 딱 잘라 긍정과 부정을 논할 수 없을 것 같다. 감정이란 이성보다 워낙 주관적이고 다양하며 복잡하고 즉흥적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공식 대입하듯 설명하기 곤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다양한 감정을 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하지만 그에 대한 얘기는 없다. 사실 그것을 알고 싶어서 이 책을 읽는 것이었는데 서론만 열심히 얘기하다가 끝나는 기분이다. 48가지 감정을 모두 다루지 않더라도 감정에 대해 좀 더 심도 깊게 다루었으면 좋지 않을까 싶다.
다른 리뷰에서도 그랬지만 책의 두께에 비해 내용에 깊이가 없다. 각자 뜯어놓고 보면 의미심장하고 유의미하지만 글쓴이가 하고자하는 말이 최종적으로 무엇인지 파악이 안 된다. 48가지 감정에 대해 나름대로 쉽게 공감을 얻기 위해 문학을 가지고 왔지만 오히려 얕은 내용에 글이 산만하다. “철학”이 ‘주’가 아닌 ‘객’이 되면서 오히려 민음사 책을 팔기위한 일종의 홍보책자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읽는 동안 지루하고 특별히 인상 깊었던 것도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이 가치가 전혀 없는 책은 아니라는 것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한다. 아무리 거대 자본 출판사의 상업적인 면이 있다고는 하나, 우리가 여태 잊고 살았던 감정의 중요성을 문학이라는 흥미 있는 요소를 통해 재평가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는 점에서는 높이 평가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