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현] 칼과 혀

칼과 혀 - 제7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권정현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0월

제7회 혼불 문학상 수상작인 <칼과 혀>
작년 6회 수상작인 박주영 작가님의 <고요한 밤의 눈>을 읽은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일 년이 지났다니 새삼 날짜 가는 게 빠르게 느껴진다. 믿고 읽는 혼불 수상작인 만큼 요번에는 어떤 작품일지 기대감을 갖고 읽어 내려갔다.

1945년 만주를 배경으로 일본 관동군 사령관 모리(야마다 오토조)와 그를 암살하려는 중국인 요리사 왕 첸, 조선인 여인 길순의 이야기이다. 처음 이야기가 시작이 될 때 중국인 요리사 왕 첸의 아버지인 왕 채판의 이야기로 시작되는데 얼마나 흡입력이 강한지 진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모란 지역에서 태어난 왕 채판은 광둥 지역에서 요리사를 하고 있었는데 돌아가신 양부모 제사를 지내러 모란에 다녀오는 길에 죽고 만다. 그 장면이 너무 생생해서 읽는 내내 코에 피비린내가 나는 듯했다.

일본 사령관을 암살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첸은 적장 안으로 들어가 요리사가 된다.
양념을 쓰지 않고 불과 칼만 이용해서 1분 안에 요리를 만들어내는 시험을 했는데, 첸은 보란 듯이 송이를 구워 통과한다. 그 후 사령관 모리의 음식을 도맡아서 하게 된다.
소련군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음식 타령할 시간이 있을까 싶은데, 모리는 문어 죽을 음미하며 먹고 진미를 즐긴다. 만한 취에 시를 차리라는 명령이 떨어졌을 때는 어이가 없었다.
중국 황실에서 진귀한 재료로 만드는 고급 요리로 사흘에 걸쳐 100가지 넘는 요리가 나온다는 만한 취엔 시인데 드라마 <대장금>에서도 시대상으로는 안 맞지만 만한전석으로 다룬 적이 있다. 워낙 중국을 대표하는 고급 요리이기 때문인듯하다. 그런 걸 전쟁통에 차려내라니... 결국 차리지는 못했지만 얼마나 음식을 좋아하는지 알만한 이야기였다.
첸의 음식에 독을 넣어서 암살하려는 계획이 실패하고 혀의 1/3을 잘렸을 때는 정말 마음이 아팠다.
어차피 무색 무취인 독을 왕창 넣어서 성공했으면 좋으련만.. 게다 술술 자기가 했다고 불었을 때는 정말 답답했다. 모른척하고 다음 기회를 노렸을 수는 없었을까?
첸을 죽이지 않고 부엌에 묶어두고 요리는 계속해서 바치도록 하는 건 의외였다. 음식으로 독살 당할뻔했다면 다른 사람이 해온 음식도 꺼릴 것 같은데...
첸과 함께 사는 조선인 여성 길순의 삶 또한 가슴이 아팠다. 위안부 생활을 하다 탈출해서 첸과 함께 살게 되는데, 전쟁이 일어나면 모두가 힘들지만 특히나 여성은 적군으로 끌려가게 되면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게 된다. 그나마 길순은 일본인 사령관 모리의 마음에 들어 먹는 것은 걱정하지 않았지만 다시 그만의 성 노예로 살게 된다. 얼마 전 본 위안부 관련 영화가 생각이 나서 읽는 내내 괴로웠다. 나라가 힘이 없으면 안 그래도 고달픈 민초들의 삶이 더 힘들어진다. 
전쟁이 나지 않았다면 각각 3명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궁금해진다. 각자의 나라에서 행복하게 지냈을까? 첸은 요리사로 지냈을 것 같고, 전쟁을 싫어했던 모리는 또 그 나름의 삶을.. 길순도 오빠에게서 벗어나 자신만의 삶을 개척하지 않았을까.. 세 청춘을 혼란 속에 휩싸이게 한 무거운 현실에 안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