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듣는다 - 정재찬의 시 에세이
정재찬 지음 / 휴머니스트 / 2017년 6월
평점 :
품절


 

시가 아직 나오지도 않은 머리말부터 좋은 글이 있었다

누구에게나 상처 주고 상처받은 나날들이 있을 겁니다. 지우고 싶었던, 거의 잊힌 듯싶었던, 앙금처럼 가라앉은 지난 기억들. 허나 어쩌나 한번 휘저으면 금세 흙탕물처럼 일어나고 맙니다. 나이 먹는다고 달라지는 법이 없습니다. 회한은 그런 겁니다. 말끔한 인생은 없습니다.

말끔한 인생은 없다..라는 말이 참 와 닿았다. 다들 행복한다 나만 흙길을 걷는 거 같았는데 사실은 다들 상처도 받고 지우고 싶은 기억도 있지만 그냥 묻고 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위로가 되었다.

총 11개의 주제로 나누어져 있는데 그중 5번째 94페이지의 하루 또 하루 (일상과 일생) 편이 좋았다.

시 도 있었지만 가수 전인권 님이 작사하고 노래한 <사랑한 후에>에 대한 글이 있었는데,


긴 하루 지나고 언덕 저편에 빨간 석양이 물들어 가면
놀던 아이들은 아무 걱정 없이 집으로 하나둘씩 돌아가는데
나는 왜 여기 서있나 저 석양은 나를 깨우고 밤이 내 앞에 다시 다가오는데

이젠 잊어야만 하는 내 아픈 기억이 별이 되어 반짝이며 나를 흔드네
저기 철길 위를 달리는 기차의 커다란 울음으로도 달랠 수 없어
나는 왜 여기 서있나 오늘 밤에 수많은 별의 기억들이 내 앞에 다시 춤을 추는데

어디서 왔는지 내 머리 위로 작은 새 한 마리 날아가네
어느새 밝아온 새벽하늘이 다른 하루를 재촉하는데
종소리는 맑게 퍼지고 저 불빛은 누굴 위한 걸까 새벽이 내 앞에 다시 설레는데

- 전인권 <사랑한 후에>


이 노래의 가사가 이렇게 먹먹하고 쓸쓸한지 예전에는 몰랐다.
작가님은 이 노래를 MBC 무한도전 <명수는 12살> 편.
함께 놀던 친구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쓸쓸히 혼자 남은 명수에게 들려주고 싶다고 하였는데,
부모님의 맞벌이로 혼자 있는 아이에게도, 힘든 하루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의 어른에게도 마음을 울리는 글인 것 같다.

김동삼님의 묵화도 좋았다.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혔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김종삼, 묵화(墨畵)


농사일로 고된 하루를 보낸 소와 할머니. 시골 풍경들이 눈에 보이는 듯한 시.
짧은 시에 이런 모든 걸 담아낼 수 있다니 이런 게 시의 매력인 것 같다.
장황한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도 표현해내는 것.

여름밤에 TV를 끄고 소파에 기대어 앉아 한편 한 편 읽는 재미가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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