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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와 장미의 나날
모리 마리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홍차와 장미의 나날> 제목이 주는 느낌이 평화로우면서 따뜻하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요즘의 분위기와 잘 맞는다.
작가인 <모리 마리>는 일본에서는 유명 작가라는데 나는 요번에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접하게 되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글쓰기를 시작했지만,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사람 중 한 명인 <모리 오가이>의 장녀로 태어나 문학의 피가 흘러서인지 뛰어난 재능으로 많은 소설을 남겼다고 한다.
책을 읽고 난 후기를 적기에도 솜씨가 부족한 나는 부러울 뿐이다.
이 책은 힘든 일상에서도 미식가로 살면서 행복을 찾았던 모리 마리의 음식과 관련된 소소한 이야기 모음이다.

메이지풍 서양요리나 생제르맹 거리 레스토랑의 얼린 달걀 요리 등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라온 덕에 그 당시 일본 서민들이 많이 접하긴 힘들었을 것 같은 음식들도 많이 나온다. 먹어보지 못한 음식들이 나올 때면 그 맛을 상상하면서 읽었다. 그중 서민적인 음식은 속이 안 좋을 때 먹는 흰죽과 매실장아찌, 추억 속의 수유나무 열매가 있다. 특히 수유나무는 표지 그림에도 그려져있어서 어떤 나무인지 궁금해서 검색을 해보았는데 산수유나무 열매와 비슷했다. 나중에 산수유를 볼 때마다 이 책 생각이 날 것 같다.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구나 이런 음식을 좋아하는구나 생각하며 읽던 중 콜라중독이라는 단어에 친밀감이 확 높아졌다. 술을 못하는 나는 탄산음료 딱 두 가지를 좋아하는데 맥콜과 콜라다.
모리 마리는 처음 콜라를 마셨을 때 곰팡이 냄새가 나는 맛없는 음료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곰팡이 냄새라니! 처음에 시원하고 톡 쏘는 콜라가 아닌 김빠진 미지근한 콜라를 접한 것일까?
아무튼 이제는 콜라가 없으면 맥을 못 춘다는데, 레몬 서너 방울과 벌꿀 용액 두세 방울을 넣어 아껴 마시는 것이 모리 마리식 콜라 마시는 법이다. 콜라에 뭔가를 넣어서 마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미식가는 뭔가 다르다. 다음에 마트에 가서 콜라를 살 때는 레몬을 함께 사 와야겠다.
P.70
내 하루하루 속 즐거움, 그것은 시다.
아니, 시 비슷한 것이라고 하는 편이 좋겠지.
나는 시라는 것을 잘 안다고는 말할 수 없으며 지은 적도 없다.
그냥 내가 생각하는, 시 비슷한 것들은 하루하루 일상 속에서 느끼는 게 그저 즐겁다.
그 즐거움이 마음속에 넘쳐흘러 생활을 어쩐지 재미있게 만들어 주니까.
P.187
식사 때면 건성건성 게으른 손놀림으로 젓가락을 집어 들고 남이 고심해서 만든 접시 위의 음식에 이것저것 손은 대지만 맛없는지 맛있는지 표정을 살펴봐도 전혀 알 수 없는 사람들인데, 이런 사람들은 인생의 즐거움이 절반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P.267
차를 마시는 내 눈에 침대 헤드보드 위 빈 베르 무트 병에 꽂아둔 빨간 장미, 파르스름한 코카콜라병, 짙은 파란색 병에 꽂아둔 진홍색 장미화 하얀 꽃, 연홍색 꽃 등이 비쳐서 차를 마시는 즐거움을 배로 늘려준다. 영화 제목을 빌리면,<술과 장미의 나날>이 아니라 '홍차와 장미의 나날' 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