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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
김신회 지음 / 놀 / 2018년 9월
평점 :

원래부터 수필을 좋아했다. 뭔가 다른 사람의 일기장을 합법적으로 훔쳐보는 기분이랄까?
같은 생각과 고민을 하는 글을 만날 때의 반가움과 안도감. 나와 전혀 다른 사고를 가진 사람을 만났을 때의 새로운 신기함이 수필의 매력인 것 같다. 책 한 권을 다 읽고 나서는 소설과는 다르게 작가에 대한 친밀감이 높아져 꼭 아는 사람처럼 느껴지곤 한다.
작년 화제가 된 책을 꼽으라면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라는 책을 빼놓을 수 없다.
나도 워낙 좋아하던 만화에 대한 에세이라서 기분 좋게 읽고 친구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그 작가님의 신간 에세이가 나왔다.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라는 제목이 유유자적한 삶의 보노보노를 다시금 떠오르게 한다.
오른손 집게손가락의 통증으로 인해서 원치 않은 긴 휴가를 얻게 된 후 일 년 반이라는 시간을 쉬게 된다.
바쁘게 살던 삶을 내려놓고 쉬는 것에 익숙해지기까지의 과정, 생각들이 닮 겨 있다.
손의 통증 때문에 독수리 타법으로 하나하나 쓴 글이 한 권의 책으로 엮였다.
나라면 정말 아픈 것을 핑계 삼아 푹 쉬었을 텐데 이 또한 책으로 내다니 프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고 싶은 게 없다는 작가의 말에 언니는 "그럼 먹고 싶은 거 먹어"라고 한다.
평소라면 비싸서 고르지 못했을, 제철이 아닌 2만 원짜리 딸기 한 팩을 사와 기분 좋게 먹고 푹 잠을 자는 글이 있다. 나는 가족이나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를 위해서는 기꺼이 2만 원짜리 딸기 한 팩을 살 수 있다. 하지만 나만을 위해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2만 원으로 할 수 있는 다양한 게 떠오르면서 고작 그 딸기 하나를 사지 못한다.
자기 계발서를 읽는 취향을 존중해 달라는 글을 읽으면서는 뜨끔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자기 계발서는 빌려읽으면 모를까 소장할 가치는 없는 것 같다고 폄하하는 말을 종종 해왔기 때문이다. 어차피 알면서도 안 하는 거 아니냐고 굳이 책까지 읽을 필요가 있냐고 했던 말이 후회스러웠다. 누구나 책에 대한 취향은 있고 무언 가을 시작하기 전에 동기부여를 하기 위해서도 읽을 수 있는데 말이다.
시원한 맥주로 아침을 시작하는 그녀만의 맥모닝, 언제든 편하게 만나는 동네 친구들, 애완동물에 대한 이야기, 타인이 아닌 내가 나에게 지어준 영어 이름 <마리>등 인상에 남은 글들이 많아서 책이 끝나가는 게 아쉬웠다. 마지막에 손의 통증의 시작이 심리적인 요인에서 왔다는 것을 보며, 쉬면서 마음과 몸을 재 정비할 시간을 달라고 신호를 보낸 것 같아 신기하기도 했다.
다음에 신작 작가 이름에 김신회라는 이름이 보인다면 주저 없이 뽑아들만큼 믿고 읽는 글이 하나 더 생긴 것 같아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