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은이 가장 좋아하는 유물은 부여박물관의 한 토기였다. 화려해서도 아니고 희귀해서도 아니고 명은과 개인적인 연관이 있어저도 아니었다. 그것은 어느 박물관이든 제일 첫 관에 배치하는 단순한 형태의 토기였는데, 가마의 불 속에서 엉거주춤 내려앉은형태였다. 못 쓸 정도로 망가진 것은 아니고 윗부분이 모호하게 일그러진 형태였는데 아마 토기 장인은 에이, 만든 김에 그냥 쓰지, 뭐 정도로 넘겼을 것이다. 그 실패작이 천오백 년을 살아남아 박물관에 자리잡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테고 말이다. 훨씬 잘 만든 토기가 많았을 텐데 하필 그 토기가 발굴되고 보존되어서 유리함 안에 전시된 걸 4세기의 토기 장인이 알게 된다면 얼마나황당해하고 민망해할까? 천오백 년짜리 유머였다. 알아채고 웃는사람도 그리 많지 않을 시간의 시시한 웃음거리였다.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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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고솜에게 반하면 - 제10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46
허진희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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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청소년기의 인간관계.
이걸 좀 더 빨리 알았으면 참 좋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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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도서관 사서 실무
강민선 지음 / 임시제본소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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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무가 필요했던건데 에세이만 잔뜩 읽었다.
감정의 과잉이 자주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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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시타 노리코의 다도 수행일기.
다 좋은데 일본인들은 계절감에 강박이 심한것 같다.
왜 사계절이 일본에만 있는것처럼 그 찰나의 순간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며 다른 나라의 계절은 인정하려 하지 않는지.

"그럴 때는 말이지.……."
선생님의 목소리가 나를 가로막았다.
가운데 걸 남기는 거란다."
.......네?"
"마지막 과자가 정중앙에 남아 있도록 다른 길 집으렴. 제일 가운데가 남아 있으면 마지막 손님에게 과자가 돌아갔을때 ‘남은 것을 먹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잖니?"
듣고 보니 그릇 한구석에 외따로이 놓여 있는 만주는, 아무리 봐도 남은 물건‘이다. 하지만 똑같은 마지막 하나라도정중앙에 있으면 그릇까지도 다 마지막 사람을 위해 준비된것처럼 보인다.
고작 만주 하나인데도 놓인 위치에 따라서 의미까지 달라지는 것이다.

66쪽

"꽃은 붉게 피면 되고, 버들은 푸르게 우거지면 돼."
간의 그 말을 듣고, 그때의 내 모습을 떠올렸다.
버들은 푸르고, 꽃은 붉다.
그날 이후로 그 문구를 좋아하게 됐다. 지금도 다른 사람 이 빛나 보일 때, 내가 나답지 않은 모습이 되려고 할 때, 그 말을 떠올린다.

75쪽

아와시마 씨도 오랫동안 다도를 해온 사람이다. 영국 여행이야기를 하면서 벚꽃이 한 달 내내 핀다고 이야기했더니,
아와시마 씨가 "그건 좀 아닌 것 같네요." 하며 웃었다.
이 나라의 계절은 ‘지금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해서 눈 깜짝할 새 지나가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계절 안에서 아주 짧은 순간인 ‘지금‘을 살아간다.

155쪽

우리가 배우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길을 나아가는 법이다.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시간을 들여서 몸으로 익힌 것은 언제나 내 안에 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처음 한 데마에는 마치 긴 언덕길을 오르다가 갑자기 전망 좋은 고지대로 나온 것처럼 상쾌한 느낌이었다.

1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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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쪽/ 109쪽/228쪽

8년을 했으면 나도 달항아리 정도는 만들어줘야 하는 게 아니냐고? 그런 기대에 찬 눈빛은 정중히 사양한다. 매번,
아저씨 바로 옆 내 물레에서는 완전히 다른 일이 벌어지고있기 때문이다. 분명 밥그릇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만들다보면 국그릇이 되어 있었다. 그래도, 합격. 분명 커플 접시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만들고 보니 두 개가 각도도 크기도 모두 달랐다. 그래도, 합격. 길고 가는 꽃병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작고 뚱뚱한 꽃병이 나왔네? 나름 예쁘네. 그래, 너도나랑 같이 집에 가자. 별의별 이상한 애들이 전부 합격 딱지를 달고 가마로 직행했다. 그리고 가마에서 나온 완성품들은 하나같이 어딘가 모자랐고, 하나같이 내 맘에 들었다.

학생의 세계에서 직장인의 세계로 옮겨간다는 건 단순히 돈을 버는 세계로 편입한 것이 아니었다. 그 돈이 허용하는 수많은 경험들의 세계로 동시에 입장하는 것이었다. 3천 원짜리 학교 앞 밥집에서 1만 2천 원짜리 파스타의 세계로, 천원짜리 커피에서 5천 원짜리 아메리카노의 세계로 물 흐르듯 입장했다. 못 먹던 것을 먹기 시작했다. 안 보이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안 들리던 것이 들리기 시작했다. 

꼭 머리를 세게 박고 나서야, 아, 여기 벽이 있었군, 돌아가야 하는 거였군, 이라며 뒤늦은 깨달음을 얻는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제 와서라도 깨달았으니 됐어 평생 미련을 가지는 것보다는 실패해보는 게 낫지 않아?‘
라며 실패 앞에 스스로를 비난하지 않는 재주가 있다는 것이다. 이미 실패해버린 거, 나를 비난해서 어디에 쓰겠는가?
‘다음에 안 그러면 되지, 뭐‘라며 실패를 미화하는 일에 일인자가 있다면 그건 언제나 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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