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운동장 - 아파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하여
김은식 글, 박준수 사진 / 브레인스토어 / 2012년 10월
절판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마주친 오래된 기억과 추억 만큼 큰 울림을 가진 것도 없으리라.
그것이 더 없이 아름답고 즐거웠으며 감동적이었던 순간이라면 더더욱.
사실 우리는 너무도 빠르게 흘러가고, 너무도 급하게 변해가는 것들에 적응하기에 더 급급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이토록 가혹하고 잔인하게 애써 외면했던 아픔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그저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린 한 공간에 대해, 어느 순간 바뀌어져 버린 하나의 이름에 대해,
그리고 그 곳에 담겨 있던 수 많은 시간들과 그것에 비례한 혹은 더 셀 수 없는 많은 사람들과 그들의 기억들에 대해
우리는 마음을 다해 사과를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잊혀져 가고 있었기에. 그리고 더 이상 아파하지 않았기에.

그 곳이 우직하게 서 있던 그 시간들 속에서 야구를 좋아하지 않은 이가 있을까.
사실, 나는 스포츠에 그리 열의를 가지고 환호하는 편이 아니어서 특히 동대문 운동장에 대한 추억은 없다.
하지만 지금 이 맘 때의 함성소리와 해질 녘 늘어지는 햇살이나 함께 느슨해 지던 그 곳의 그림자들이 아련하게 남아있다.
그리고 오랜 시간동안 자리잡고 있던 그 곳이 사라지고 흉물스럽게 올라가고 있는 건물들을 보며 더 이상 동대문을 찾아가지 않게 되었던 것 같다.
하나하나 낡은 것들이 스러져 가고, 의미있는 것들이 사라져 가고, 그 단단한 존재감이 잊혀져 가는 것을 마주할 때
나는 늘 가슴이 먹먹해 진다.
우리의 삶도 그렇게 변해가고 있는 것 같아서.

이 책을 마주하며 나는 젊은 시절의 아빠가 떠올랐고, 그 시절의 수 많은 아빠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이미 머리숱이 없는 볼품없는 아저씨가 되었거나 주름살이 깊게 패인 할아버지가 되었다.
가슴 깊이 박힌 아픔을 덤덤하게 풀어내는 글과
차분하고 서글프게 담겨있는 그 곳의 마지막 장면들이
그 시절의 수 많은 아빠들을 다시 울리게 할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다시 한번 안타까워 할 수 밖에 없는 그 추억들과 조우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충분히 아파하며 충실히 그 아픔을 견뎌내야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우리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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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다. 사실 어찌된 일인지 누구도 모르지 않는다.
기억이란, 추억이란, 원래 잘려나간다고 해서 아픔을 느낄 수 있는 부위가 아니다.
그것은 무게도, 부피도 없는 것이기에 사라진다고 해서 금세 사라진 줄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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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리 오랜 세월 동안, 그리 많은 사람의, 그리 파란만장한 사연을 담고 새겨온 그곳에서, 그냥 두면 흘러가 그 기억과 추억마저 멀리 깊숙이 묻어버릴 세월 앞에서, 한 자락 진혼곡을 불러줄 이도 없다면 그건 너무 서글픈 일이다.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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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란 필요에 대한 강박을 벗어나면서부터 발견되는 것이다. 그래서 굳이 없어도 되는 것, 딱히 쓸모가 없는 것을 응시하고 곱씹고 되살려 표현하는 데서부터 예술이나 문화가 시작된다.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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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것이 사라진 지 벌써 서너 해나 지나서야 새삼
묵직해지는 가슴을 안고 나는 스스로에게, 그리고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제 질문을 던진다.
왜 아파하지 않느냐고 말이다.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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