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 하면 서구에 비해 후진 것 같은 느낌이 들거나 괜히 주눅 드는 것도 이런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지요.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정말로 우리 그림은 제대로 모방조차 하지못한 삼류 복제품일까요??
아니요.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현대미술사학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김관호가 활동하던 1910년대는 미술계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이 일본을 통해 서양의 문물과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던 때였습니다.
요즘이야 서양의 것을 우리가 꼭 수용해야 하는 ‘선진‘이라 생각하지 않지만, 김관호의 시대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서양은 철도, 자동차, 전기, 무기 등 모든 면에서 발전된 기술을 갖고 있었기에 생존을 위해서는그것들을 반드시 학습해야 했습니다.
미술도 마찬가지였어요. 서화書畫’라고 불리던 동양화가 있었지만, 서양화 역시 배우고 발전시켜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었고, 식민지 상황이었으니 프랑스에 직접 가는 것보다는 일본에 가서 배우는 것이 그나마 용이했지요. 그래서 일본인이 해석한 서양화를 배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양의 것을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다는 자책이나 비난은 이런 시대상황 앞에서 힘을 잃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