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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노 갓파의 인도 스케치 여행
세노 갓파 지음, 김이경 옮김 / 서해문집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내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인도를 다녀온 사람은 두가지 부류로 나뉜다.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 '다시 찾고 싶은 곳이자 살고 싶은 곳'
이 극명한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한때 나도 인도에 대한 호기심으로 인도여행을 잠시 꿈꾸었던 적이 있었던 지라
인도 여행기의 형식으로 씌여진 이 책에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
제일 먼저 책장을 열어본 뒤에는 저절로 탄성이 나온다.
'인도 여행지와 인도 풍경을 그린 이 세밀한 그림은 도대체 뭐람?'
인도의 서민들의 모습 뿐 아니라 호텔방, 인도의 기차부터 유명 관광지의 사원까지
세노 갓파의 세밀한 스케치로 재탄생이 되어 있었다.
책을 읽다 말고 부랴부랴 저자 세노 갓파에 대한 소개로 돌아가보았다.
이름만 들어서는 국적을 알 수 없었는데 일본이라는 그는 독학으로 무대 미술을 공부한 사람으로
현재는 일본을 대표하는 무대 미술가라고 한다. 그리고 이미 이 책 외에도 유럽, 일본 등을 돌며 세밀화를 통한 여행기를 다수 발표한 작가이기도 하였다.
어쩐지 책 여기저기에 삽입된 건물 그림들이 단순 미술학도의 그림과는 다르다고 생각되었는데
역시 무대 미술가라 그런지 건축가의 그림 특징과 유사한 면을 가지고 있었다.
사이즈에 집착하는 것을 보니 그런 생각은 굳어졌다. '이 사람, 자신의 직업에 충실한, 그리고 무척 꼼꼼한 사람이구나.'
아마도 세노 갓파는 본명은 아니겠지라고도 생각해본다.
갓파는 생소한 일본이름이기 때문에.... 찾아보니 역시 갓파는 우리가 흔히 갑빠라고 알고 있는 일본 요괴명칭에서 따온 것 같다.
역시 독특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세노 갓파의 책에 소개된 인도는 다양성이 살아있는 국가이다.
지폐에 쓰여있는 언어만 14개이며, 종교도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힌두교(인구의 80% 정도 차지)외에도 이슬람교, 자이나교, 기독교, 시크교, 조로아스터교까지 가지고 있는 종교도 다양하다.
카스트 제도로 인한 빈부의 격차는 하늘과 땅만큼 벌어져 있고...
빈부 격차 외에도 현재까지 카스트 제도의 잔재가 남아있어 여전히 다른 계급과의 결혼은 쉽게 용납하지 않으며 제일 하층민인 불가촉민의 경우에는 정부 법적 보호가 있지만 부당한 차별을 당하며 살고 있다.

내가 인도에서 태어났으면 과연 행복한 삶을 살았을까 모르겠지만
(힌두교도였으면 내세를 기약하며 수긍하고 살았을 것이다.)
직접 세노 갓파가 인도인과 부딪혀가면서 경험한 '책에 묘사된 인도인의 세계'는 그 다양함만큼 재미가 있다.
인도의 역사부터 지루하게 시작하는 형식이 아니라 여행기 형식이라 현지 사람들과의 만남(운전사들부터 가이드, 지식인까지)에서 얻게되는 살아있는 인도에 대한 정보를 인도에 무지한 나로서는 참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지루하기 쉬운 각 사원들의 정보도 세노 갓파의 설명 덕에 어느 정도는 쉽게 넘어갔다.
(물론 사원들 이름을 외우기란 어렵다. 낮선 인도어라 그런지 도시 이름도 어렵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아쉽게 생각되는 점도 있다.
스케치만으로 인도의 풍경이 전달되기 때문에 실제 모습보다 조금 더 미화된다는 것이다.
더러운 몰골을 한 사람을 모습, 거대한 혼돈의 흐름을 보여주는 기차역 풍경, 시장통 풍경들이
선으로 묘사된 세밀화 속에 묻혀 생생하게 살아있는 느낌을 주진 못한다.
그리고 새로운 호텔을 방문할 때마다 삽입되는 호텔방 안 풍경은 나중에 조금 지겹기도 하더라.
그래도 처음 접한 인도에 관련된 책을 이 책으로 하길 잘했다는 생각도 든다.
인도를 방문한 많은 사람들이 괴로워하는 더러움(우리가 생각할 때의 더러움)이 사진이 아니라
스케치로 전달되기 때문에 거부감이 덜하기 때문이다.
녹슨 철제병에서 따라주는 레모네이드라던지, 기차역 바닥에서 쓰러져 자는 사람들 모습,
식기 대신 바나나 잎을 그릇삼아 먹는 밥, 불가촉 천민들의 옷차림, 한푼만 달라고 매달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직접 본다면 처음부터 편견이 생길 수도 있지 않겠는가?
이제 이 책으로 인도의 맛을 보았으니 이제 생생한 사진들이 넘치는 다른 인도 관련 서적을 뒤적거려봐야겠다.
이 책을 통해 다시 인도에 흥미가 생겨버렸으니 이제 떠날 수 있는 시간을 만드는게 문제다.
인도, 과연 내 생애에 한번 방문할 수 있으려나..
인도를 두번이나 방문한 미스터 갓파가 부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