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가 죽인 책들
로버트 다운스 지음, 곽재성.정지운 옮김 / 예지(Wisdom)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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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명의 발전 역사를 살펴보는건 무척이나 흥미롭다.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자전과 공전을 한다는 사실은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지만 1543년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가 나오기 전까지는 말도 안되는 허황된 소리에 불과했다. 우주의 중심인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한 은하계의 행성중 하나에 불과하며 자전과 공전을 한다는 사실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세상이 뒤바뀌는 혁명적인 것이었다.
"교과서가 죽인 책들"에서는 이와 같은 인류 문명의 흐름을 결정한 인류가 남긴 위대한 책 50여권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고대 그리스시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20세기 프로이드, 히틀러에 이르기까지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책들은 우리에게 사실 익숙한 책들이다. 교과서에 무수히 등장하는 이름들이며 시험을 위해 열심히 암기했던 것들이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내가 제대로 읽어본 책은 거의 없었다. 아마도 대다수의 사람들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고전에 대한 무관심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 책의 원제는 "Books that changed the world" 이다. 제목처럼 이책에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것은 세계를 바꾸는 직접적인 계기가 된 역사적인 저작들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위에 언급한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는 가장 대표적인 저작이다. 코페르니쿠스는 무려 30여년에 걸쳐 연구를 거듭하며 이책을 저술하였다.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은 중세시대를 지배하던 철학적.종교적 믿음을 완전히 뒤집어 엎는 것이었다. 이런 파격으로 결국 200년 넘게 금서로 묶이는 신세가 되었다. 이후에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이론적으로 완벽하게 뒷받침 해준 사람이 있으니 그가 바로 아이작뉴턴이다. 인류에 깊은 영향을 미친 책중에 뉴턴의 "자연과학철학의 수학적원리(프린키피아)"만큼 유명하면서도 거의 읽히지 않은 책도 없다고 한다. 그 이유는 난해한 수학적 원리로 쓰여져 수학자들 조차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뉴턴은 이책에서 그가 발견한 유율(미적분)을 이용하여 행성의 움직임을 수학적으로 설명해냈다. 너무나 유명한 만유인력의 법칙이 "프린키피아"를 통해 실체를 드러내며 드디어 세계의 체계가 밝혀진 것이다.
이와 같이 과학체계의 혁신을 가져온 위대한 저작 뿐만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상분야에서 인류의 혁명적 변화를 몰고온 책의 저작배경과 주요내용을 읽어 나가다 보면 원작에 대한 관심이 증폭된다. 고전은 단순히 지나간 시대의 산물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를 형성해온 중요한 궤적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의 법칙의 근원을 알기 위해서 이런 고전 읽기는 필수적이다. 이책은 그동안 무심히 지나쳐왔던 역사속의 명저에 관심을 갖는 좋은 계기를 마련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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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형 인간, 강요하지 마라
이우일 외 지음 / 청림출판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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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럽게 울어대는 알람시계의 소리에 눈 뜨는 아침. 어제와 다를바 없는 힘겨운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다. 아직 잔류하는 잠기운을 몰아내지 못한채 집을 나서는 모습은 대다수 직장인들의 일상이다. 출근길 지하철속 번드르한 외양과는 달리 얼굴표정은 피곤에 지쳐있다. 출근시간의 지하철안 여기저기 끄떡끄떡 졸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활기찬 아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사무실에 틀어박혀 톱니바퀴 처럼 일하다 지쳐갈무렵 퇴근시간이 다가온다. 하지만 퇴근시간은 일의 끝을 알리는 시간이 아니다. 야근, 회식이라는 이름의 또다른 일이 시작되는 시간을 의미할 뿐이다. 매일 반복되는 이런 생활을 만족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자본주의의 거대한 시스템의 틀안에서는 9 to 6라는 쳇바퀴를 끝없이 달릴밖에 달리 방법이 없기에 다들 그렇게 살아 가고 있는 것이리라.

사회적 성공이라는 대의 명분을 내세우며 끊임없이 제시되는 무수한 처세의 유형들을 대할때마다 그리 탐탁치 않게 생각되는건 그 속에 나라는 개인은 사라져 버린듯 하기때문이다. 요즘 우리사회에 "아침형 인간"이라는 유행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있다. 그런데 "아침형 인간"의 유행은 자신의 선택의 문제가 아닌 전사회적 강요의 형태로 다가오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된다. 방송과 신문이 요란하게 "아침형 인간"을 찬양하면서 기업체들로 앞다퉈 직원들에게 "아침형 인간"을 강요하고 있는 모습이다. 아침을 일찍시작해 그 시간을 자기계발에 활용 한다면 성공한 사람이 될수 있다는 주장에 굳이 토를 달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럴수 있는 사람이라면 실천하면 될것이고, 아침에 맥을 못추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거리가 먼 이야기일 뿐이다. 그런데 단순히 아침이라는 시간에 대한 강조만이 이루어지면서 아침 기상시간이 빠른 사람, 출근시간이 빠른 사람이 좋고 그렇지 못하면 문제가 있다는식의 분위기로 흐르는 것은 바람직하진 않아 보인다.
이책 "아침형 인간, 강요하지마라"에서 말하고 있는것이 바로 이런 생각들이다. 우선 사람을 어떤 형(形)이라는 틀에 맞추려고 하는 사실 자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이런식의 "아침형인간", "올빼미형 인간"의 이분법적인 분류가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사람들은 다들 자신의 생화습관이나 직업, 생체리듬에 따라 자신에 맞는 생활 패턴이 다르고 효률적인 시간도 다를수 밖에 없다. 아침에 생생한 사람이 있는 반면 밤이되야 힘이나는 사람이 있는것이다. 일률적인 틀로 사람을 묶고 동일한 패턴을 강요하는 것은 다양성을 무시하고 획일적인 사회로 퇴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작금의 "아침형 인간"에 대한 우리사회의 쏠림현상은 그 배후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철밥통"의 글속에 등장하는 회사형 인간이 사실 우리의 모두의 자화상이 아닌가 싶다. 우리 대부분은 조기출근을 강요 당하고 야근을 밥먹듯이 해야만 하는 시간의 선택권을 갖지못한 "아침형 인간"도 "올빼미 족"도 아닌 "회사형 인간" 이라는 말이 서글프게 다가온다. 직장인들에게 아침은 여분의 시간이 아니다. 지칠대로 지친 심신을 쉬는 최소한의 수면시간의 한부분일 뿐인데 이조차 자유일 수 없게 만드는 아침형 인간의 강요는 너무나 비인간적이다. 그래서 요즘은 더욱 아침출근길이 짜증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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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 - '수유+너머'에 대한 인류학적 보고서
고미숙 지음 / 휴머니스트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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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부쩍 자주 듣게 되는 이름이 있다. '수유+너머'라는 다소 묘한 이름의 집단이다. 이 이름을 들을때 마다 도대체 무슨의미일까? 뭘하는 곳일까? 하는 궁금증이 들곤했다. 이 궁금증에 시원한 답을 주는 것이 바로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이다. 이 책을 통해 '수유+너머'는 정체를 확연히 드러낸다. 수유리의 조그만 공부방으로 태동하여 지금의 전방위 지식의 횡단을 감행하는 지식코뮌의 모습으로 진화해가는 과정을 이 단체의 산파인 고미숙은 역동적으로 진술하고 있다.
'대학의 학문이 획일화 되고, 지식에 대한 앎이 더이상 기쁨이 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인식에서 지식코뮌 '수유+너머'는 출발하였다. 전공분야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식의 경계를 횡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의 시스템속에서는 이런 지식의 횡단과 탈주의 방식과 소통공간을 찾지 못했던 많은 지식인들이 이곳에 모이면서 '수유+너머'는 자생적인 체계를 만들어 가며 현재까지 진화해 오게된다. 그 진행 과정을 쫏아오다 보면 너무나 자연스럽고 행복한 모습에 부러움 마저 느끼게된다.
'수유+너머'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현실을 인식하는 사고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우선 현실의 구조화된 시스템에 수긍하며 사는것에 이의를 제기한다. '주어진 길만을 가는것'은 편하긴 하겠지만 포기해야할 것이 너무나 많다고 말한다. '길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내가 가는곳이 바로 길'이라는 능동적 사고가 바로 '수유+너머'의 탄생과 발전의 첫 출발선인 듯하다.
'수유+너머'의 가장 빛나는 면은 무엇보다도 '지식에 대한 희열'을 꿈꾸는데 있어 보인다. 지식에 대한 욕구는 가지를 치고 그 가지가 끊임없이 분화되며 뻗어나가는 속에서 지식은 고착화 되는것이 아니라 '천의 고원'을 유목하며 거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 원동력은 '지식에 대한 욕구와 희열'에 의해 이루어지는것이다. 책속에 그려진 '수유+너머'의 모습은 지적희열을 끊임없이 생산해내는 유기체로 비쳐진다. 스스로 자신의 형태를 변이하며 진화를 거듭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흥미롭다.
'수유+너머'의 현재의 모습이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라 말하지만 사실 모두가 희망한 자유일것이다. '자꾸떠들면 현실로 이루어 진다'는 고미숙의 말처럼 모두가 생각하고 희망한다면 결국 이루어진다는 현재의 구현체로서 '수유+너머'는 의미있어 보인다. '삶의 유쾌한 반란'을 지금도 진행하고 있는 '수유+너머'의 미래의 모습이 궁금하다. 그들은 여전히 진화중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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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가 된 이름 The Beatles
한경식 지음 / 더불어책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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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은 캠퍼스에 낭만이 남아있던 시절, 친구들과 술한잔 마시며 동아리방에 모여 앉아 기타와 더불어 노래를 부르며 시간을 보내곤했다. 그때 주로 민중가요나 동물원 같은 대학가에서 유행하던 포크계열 노래를 많이 불렀다. 그런데 우리와는 달리 팝송만을 부르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가 부르는 노래는 바로 비틀즈의 노래들이었다.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Yesterday'로 부터 시작해서 익숙치 않은 비틀즈의 곡들을 연이어 불러대는 그 친구의 모습은 사실 좀 엉뚱해서 낮설었다.
유명한 히트곡 몇곡만으로 알 뿐이던 내가 비틀즈에 관심을 갖게 되고 빠져들게 된 계기가 바로 이 친구 때문이었다. 비틀즈를 조금씩 알아가면서 이들의 음악뿐만이 아니라 네 사람의 삷의 모습도 무척 흥미롭게 다가왔다. 무엇보다 멤버 각자의 개성이 노래마다 고스란히 드러나는 걸 느낄때 비틀즈의 음악을 듣는 것은 매력적이었다. 비틀즈의 두축인 존레논과 폴맥카트니의 조금은 상반된 음악적 성향이 빚어내는 상호작용은 비틀즈의 음악을 지금까지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주요요인이 되지 않았나 싶다.
비틀즈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음반 뿐만 아니라 관련된 영화나 책 등 많은 자료를 접하면서 놀란것은 수많은 비틀매니아의 존재였다. 꽤 오래전인 1960년대 활동을 시작했고 1970년에 해체된지 벌써 30여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비틀즈의 작은 사실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그들의 열정이 놀라웠다. 이들이 있기에 비틀즈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살아 있는것 같다.
"신화가 된 이름 비틀즈" 이 책 역시 비틀매니아가 이룬 하나의 커다란 성과물이다. 음악 전문가의 손으로 쓰여진 것이 아닌 순수한 비틀매니아의 열정만으로 이렇듯 생생하게 비틀즈의 궤적을 500여 페이지에 걸쳐 되살려내는 작업을 해낸 저자의 노력에 정말이지 존경스러움을 표하고 싶어진다. 존레논이 처음 들어간 학교 이름이 뭔지, 밴드의 최초 활동 연도와 같은 시시콜콜한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쓴소리를 할 수도 있지만 비틀매니아에게는 비틀즈의 소소한 사실하나도 무척이나 소중하다. 매니아란 그만큼 그곳에 깊숙히 빠져야만 할 수 있는 그런 것이다.
비틀매니아 까지는 아니지만 비틀즈를 좋아했던 사람으로서 이런 책을 만나는 것은 무척 반갑고 고맙다. 비틀즈가 아직도 우리에게 존재하며, 앞으로도 그럴것이라는 느낌을 갖게된건 나혼자만은 아닐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기쁜마음으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저자에게 비틀즈가 추억속이 아닌 현재 진행형으로 계속 이어지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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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이야기 1 - 충격과 공포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5
김태권 지음 / 길찾기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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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내가 유난히 좋아하던 과목은 세계사 시간이었다. 다른시간은 졸아도 그 시간만은 선생님의 이야기에 귀기울였다. 그리스.로마시대의 화려한 신화와 정복의 역사로부터 시작해서 무수히 많은 역사속의 영웅과 사건들을 수놓은 인물들의 이야기에 끌렸었다. 그래서 그런지 세계사 수업은 공부시간이라기 보다는 흥미로운 이야기의 시간이었다.

역사는 오늘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이있다. 21c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말이 의미있게 다가오는건 왜일까? '십자군 이야기-충격과 공포'를 읽어보면 그 이유를 알수있다. 십자군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은 대체적으로 기독교가 지배하던 중세유럽에 일어난 종교적 사건으로 기독교문화와 이슬람문화의 충돌로서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그 근본은 그렇지 않다고 이책은 말하고 있다. 로마제국 붕괴이후 형성된 유럽은 왕권과 신권의 권력다툼이 치열하게 전개되었고, 그 혼란의 와중에 희생되는 것은 바로 하층 농민들이었다. 봉건영주와 기사들에게 수탈당하는 농민들의 불만이 점점 커지면서 이들의 불만을 무마하고 관심을 돌리는 방법으로 조작된것이 종교적 명분을 덧씌운 십자군전쟁이다. 십자군전쟁의 명분은 이슬람세력권에 들어간 기독교 성지인 예루살렘을 해방시킨다는 것이다. 그 당시 교황을 비롯한 기독교 권력은 이슬람세력을 기독교를 억압하고 위협하는 악의 존재로, 이런 악을 응징하고 이슬람세력으로 부터 기독교의 성지인 예루살렘을 되찾아 오는 것이 신의 계시이며 기독교인의 소명이라고 당시 사람들을 선동하였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이야기 아닌가? 이라크 침공을 하면서 부시가 떠들던 말과 어쩌면 그리도 같은지.... 11세기 십자군전쟁이 무려 1000년이 지난 지금시점에서도 다시 되풀이 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씁쓸하게 만든다. 이 책을 읽다보면 십자군전쟁의 허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십자군 봉기의 허무맹랑함, 그 진행과정의 무자비성 등은 정말 혀를 차게 만든다. 중세는 사실 비이성의 시대였다. 십자군전쟁은 비이성의 시대에 이루어진 인간의 끔찍함을 보여주는 사례로 교훈삼야야 할것이다. 하지만 지금세기에 아직도 이런 비이성적인 전쟁을 인간들은 계속하고있다. 자국의 경제적 이득, 국제사회에서의 주도권 장악을 위해 끊임없이 무고한 사람들 위에 폭탄을 퍼붓고 있는 야만적인 국가들은 역사속에서 깨닫는 것이 정녕 하나도 없는 모양이다. 언제쯤 인간은 야만의 시대를 끝낼 수 있을까? 오늘도 뉴스는 온통 테러와 폭격으로 얼룩져있다. 이제라도 역사의 질곡을 반복하지 않기위해서 우리는 역사의 거울을 똑바로 쳐다봐야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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