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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콕 탐정 ㅣ 세계추리베스트 20
에밀 가보리오 지음, 한진영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처음 이 르콕탐정에 대해 접한 것은 셜록홈즈 소설책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 홈즈씨를 보니 에드거 엘런 포의 작품에 나오는 뒤팽이 떠오르는 군요. 그런 이야기 속의 인물이 실제로 존재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홈즈가 일어나서 파이프에 불을 붙였다.
" 뒤팽과 저를 비교하신 것은 저에 대해 칭찬하는 뜻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그가 말했다.
" 내 생각에 뒤팽은 좀 수준이 낮은 친구죠. 십오분간이나 침묵을 지키다가 한마디 던지면서 친구의 생각을 그의 수법은 과시적이고 얄팍한 것이죠. 그가 분석적인 천재인 것은 분명합니다만 포가 생각했던 것처럼 경의로운 존재는 아니예요."
" 에밀 가보리오의 작품은 읽어봤습니까? 거기에 나오는 르콕탐정은 어떤가요?"
내가 물었다.
셜록홈즈는 비웃으며 콧방귀를 뀌었다.
"르콕은 끔찍할 정도죠."
그는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 그에게서 인정할만한 점이 있다면 의욕뿐입니다. 그가 등장하는 책은 나를 꽤나 골치아프게 만들었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정체불명의 범인을 밝혀내는가였죠. 나라면 24시간 안에 충분할 일을 르콕은 여섯달동안 헤맵니다. 그 책이 탐정들이 피해야할 일들에 대해 가르치는 교본으로 쓰일 수는 있을겁니다."
셜록홈즈에서는 르콕탐정에 대해 위처럼 험담을 했지만,
사실 르콕탐정과 셜록홈즈를 비교하면, 저는 증거풀이 면에서는 르콕탐정이 월등하다고 생각합니다.
셜록홈즈는 자신이 생각한 것을 사건이 끝나고 나서 한꺼번에 서술하는 반면, 르콕탐정은 하나하나 이 증거가 무엇을 나타내는지 설명해주기 때문에 (사실 그와 동행하는 선배경찰에게 하는 설명이지만,) 독자들도 르콕의 추리에 함께 동참할 수 있습니다.
르콕탐정은 다른 사설탐정과는 다르게 신입경찰입니다.
물론 엘러리 퀸 등 경찰을 직업으로 하는 탐정들도 꽤나 있습니다만, 이 책을 접했을 때에는 다양한 추리소설을 접하지 않았었던 때라 '탐정은 전부 사설탐정이며 독단적으로 행동한다' 라고 생각했었을 때라 굉장히 신선했습니다. (심지어 엘러리는 부자지간이 경찰에서 일하며 아버지는 경찰총장이라는 것을 볼 때, 르콕이 커리어가 없는 '신입 경찰' 이라는 점은 굉장히 특이한 케이스입니다.)
게다가 이렇게 출세에 대해 꿈과 야망이 있는 열혈 탐정을 보는 것도 쉽지가 않습니다.
소설 안에서는 자신의 눈 앞의 성공을 보며 밥도 안먹고 밤잠도 안자고 돌아다니다가, 자신의 추론과 맞지 않으면 낙담하다가, 화내다가 하는 인간적인 모습이 많이 나옵니다.
중간중간 만약 작가가 '이때 르콕이 좀만 더 신경을 기울였다면! 그의 신념을 다시한번 떠올렸었다면!' 라고 했던 말이 없었더라면 분명 독자들은 모르고 지나쳤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부분은 결국 범인을 특정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탐정 소설을 읽다보면, 대부분의 탐정들은 어느정도 물리학과 범죄학에 대해 탁월한 지식이 있고, 분장실력도 어느정도 갖추고 있습니다.
이는 르콕에서도 똑같이 나옵니다. 비록 르콕이 신입경찰이라고 해도 경찰 이전에 변호사 일 등으로 배워온 지식이 있었기 때문에 증거들을 보존하는 일이나, 추리하는 일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하긴, 그런 지식이 없었다면 증거들을 가져다놓아도 추리를 할 수가 없을테니까요. 그러면 추리소설의 주인공으로서는 실격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이 책에서는 범인의 정체를 알지만 과연 르콕이 잡을 수 있을지 없을 지 애매하게 열린결말로 끝을 맺습니다.
그리고 그 범인을 찾기 위해서 또 다른 높은 지식의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죠.
개인적으로는 이런 열린결말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범인이 아무리 큰 존재일지라도, 캐릭터(르콕)의 성격 상 범인을 잡으려 애를 쓰지만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지라도, 어떤 식으로든 범인을 잡는 과정을 끝까지 서술하는 것이 깔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주인공이 무언가를 손에 쥘 수 있고 그동안 해 온 노력이 보상을 받을테니까요.
어쩌면 이 소설은 잡지에 연재된 장편소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스토리 흐름 중 르콕이 성공하다 실패하다 왔다갔다하고, 점점 범인의 정체가 커지니까요.
왠만한 추리소설 스토리였으면 진작에 범인을 잡고 끝이 났어야 하는데, 왠지 모르게 질질 끌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질질 끌고 있다는 느낌도, 르콕이 삽질하며 추리하는 과정을 보면 꽤나 재미있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게 읽으실 수 있습니다.
그럼 여러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제가 꽤나 좋아하고, 재밌게 읽었던 소설 중 하나입니다.
왜냐면 이 시대때에 나온 추리소설은 르콕탐정, 목요일의 남자, 화형법정 등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마무리가 괜찮은 것이 르콕탐정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에드거 앨런 포나 아서코난도일 등 유명한 추리소설 작가들을 제외하구요.)
만약 어드벤쳐추리물(?) 을 보고 싶다면,
그리고 독자도 이해가 가도록 증거들을 설명하는 탐정소설을 읽고싶으시다면 르콕탐정을 한번 읽어보시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