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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성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110
존 딕슨 카 지음, 전형기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9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존 딕슨 카의 이름을 처음 접했던 것은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인 혼진 살인 사건에서 였습니다.
그때 당시 다음 추리소설을 무엇을 살 지 고민하던 찰나에 그 소설 내에서 잠깐 언급했던 '존 딕슨 카' 라는 이름을 보았고, 그렇게 저는 그의 추리소설 중 하나인 '화형법정' 을 구매했습니다.
사실 화형법정은 엔딩 때문에 추리소설인지, 미스터리 소설인지 많이 헤깔리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존 딕슨 카' 라는 작가는 제게 있어 매우 악명이 높은 이름이 되었죠.
그래서 그의 또 다른 소설인 '해골성' 을 구매했을 때 이 소설 또한 '화형법정' 의 엔딩처럼 되는게 아닐까 상당히 조마조마하면서 읽어내려갔습니다만, 다 읽은 지금에서야 그것이 제 쓸데 없는 걱정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 소설에서는 즐길거리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등장하는 두 탐정 중 과연 누가 먼저 진실에 도달할지' 이며,
또 하나는 '과연 피해자는 누가 어떻게 죽였냐' 하는 부분입니다.
처음에 이야기는 프랑스 탐정 방코랑이, '위대한 마술사 메이르쟈의 죽음과 그의 친구 아리슨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조사해 달라' 고 하는 의뢰인과 만나는 부분에서 시작합니다.
그래서 메이르쟈와 깊은 연관이 있는 해골모양의 성에서, 또 다른 조사인인 경찰 소속 독일인 폰 아른하임 남작과 만나게 됩니다.
방코랑과 폰 아른하임 남작은 이전에도 몇 번 서로 두뇌를 겨루었던 적이 있는 끈질인 악연이자 라이벌입니다.
이 두 탐정은 마치 기싸움을 하듯 자신들 만의 방식으로 증거들을 풀이하며 서로 상대보다 더 먼저 진실을 파헤치려 하지만
페어 플레이 정신도 투철한 나머지, 자신이 발견한 단서와 증언들을 상대에게도 기꺼이 들려주며 서로 함께 주요 증인의 말을 들으러 가기도 하죠.
사실 저는 이 방코랑이라는 탐정의 작품은 이 '해골성' 이 처음입니다.
그렇기에 이 소설의 엔딩에서 방코랑과 폰 아른하임 남작의 선택이 과연 이들에게 어울리는 엔딩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폰 아른하임 남작은 타인에게 보여주기를 좋아하는 성격이었나요? 혹은 방코랑은 그저 진실만을 쫓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었나요?
만약 작가가 이 캐릭터들을 다음에도 사용한다면, (후에 방코랑과 폰 아른하임 남작이 서로 다시 만난다면 ) 이런 엔딩으로는 만족스럽지 못할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소설을 읽다보면 폰 아른하임 남작은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진실을 쫓으려는 것이 아닌, 방코랑의 코를 납작하게 하겠다는 의지로 수사를 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건 방코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의 코를 납작하게 하려고 겉으로는 조용한 척, 무심한 척 하면서도 수사하는 내내 속으로는 폰 아른하임 남작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애쓰고 있죠.
그런데 이런 식의 엔딩은 방코랑과 폰 아른하임 남작의 캐릭터 둘에게 납득이 가지 않는 엔딩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심지어 그 둘은 조사할 때에도 페어플레이를 유지하던 사람들인데!
그저 작가는 방코랑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스포트라이트를 이쪽에 더 비춘걸까요?
제목과 책 표지로 인해 이 소설이 추리소설이 아닌 미스테리 소설로 오해될 수 있습니다만
이 소설은 추리소설이며 '해골성' 이라는 주제에 맞게, 미스테리한 요소도 갖추고 있습니다.
으시으시한 살인현장, 비밀통로, 거대한 마술사, 천둥과 폭풍우.
사건의 전체적 배경이 빅토리아 시대가 지난 후 얼마 되지 않은 먼지가 켜켜히 쌓인 오래된 고성이기 때문에 토요미스테리나 드라큘라 영화처럼 어둠 속의 공포를 연상케 하며, 겉으로는 괜찮은 척 하지만 속으로는 공포와 두려움에 떨고 있는 등장인물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마치 작은 촛불이 흔들리는 것처럼 연약한 존재로 묘사가 됩니다.
그리고 그 모습들은 독자로 하여금 소설을 읽는 내내 살짝 긴장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습니다.
저는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왜 그렇게 추리소설 작가들이 존 딕슨 카를 언급하는지 상당부분 이해가 되었습니다.
소설 속에서 트릭풀이도 좋고, 주인공의 심리묘사도 좋고, 증거들을 서술하는 방식도 매우 좋았습니다.
중요한 건 이제 존 딕슨 카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볼 용기도 생겼다는 거네요.
만약 퇴락한 고성의 오싹함을 좋아하시거나, 혹은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는 구도를 좋아한다면 이 소설을 한번 읽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