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
허버트 조지 웰즈 지음, 심재관 옮김 / 엔북(nbook)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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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우연히 봤던 영화 〈타임머신〉(1960)의 몇몇 장면들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먼 미래로 시간여행을 떠난 한 남자가 겪는 모험들. 그의 눈앞에 펼쳐진 지구와 인류의 미래. 너무 멀리 떠나서 였을까, 내가 그 영화에서 봤던 미래의 모습은 신비로우면서도 암울했다.

그중에서도 몰록들은 주인공을 괴롭히는 털복숭이 괴물 쯤으로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수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 읽는 원작 소설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것은 바로 시간여행자가 되었다.

좀 많이 배웠다는 영국인 남자의 오만과 편협함이 곳곳에서 배어나와 실소를 자아낼 지경이다. 미래의 문명에 대해, 미래의 인류에 대해 멋대로 판단하고 가치를 따지는 그의 태도에는 다분히 서구 중심이면서 제국주의적인 시각이 배어 있었다.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여기고 완벽한 정복이 문명의 정수라는 식의 논리나, 대뜸 남미 원주민을 야만인으로 지칭하는 것 하며, 미래의 종족들을 다짜고짜 계급 분화로 해석하는 것에서도 지나친 비약과 편견이 깔려 있다. 그는 몰록들을 혐오스런 괴물로 취급하지만 이 또한 시간여행자의 좁은 시각안에서의 가치판단일 뿐이다. 몰록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시간여행자가 평화로운 세계를 파괴하는 침략자로 보였을 지도 모른다. 이렇다할 무기도 들지 않은 작은 몰록들에게 무차별 폭력을 가하고 미래 세계의 아름다운 자연을 아무렇지도 않게 파괴하는 쪽은 시간여행자였다.

타임머신은 어떤 시간으로든 이동할 수 있었는데 시간여행자는 왜 굳이 미래로, 그것도 기계 문명이 쇠락하고 지구가 멸망해 가는 멀고 먼 미래로 여행을 떠났을까. 본문에서 반복해 이상 사회, 완벽한 사회에 대해 언급하는 것으로 봐서 그는 아마도 자신이 꿈꾸는 유토피아가 실현되는지 그 후에는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결국 뭐가 유토피아인지에 뭐가 아름다운 세계인지에 대한 그의 기준부터가 편협하고 오만하기 짝이 없다.

시간여행자의 이야기를 들은 주변 사람들도 그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아마 자신들이 바라는 미래 모습과 많이 다르기 때문에 부정하고 싶었을 것이다.

각자 바라는 미래의 모습이 있겠지만 누구도 타인에게 미래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계급사회야 말로 개인의 미래를 강요하는 세상이리라. 나아가 그전에 우주의 커다란 흐름, 자연의 순리를 거스를 수는 없다.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만 여긴 산업사회가 얼마나 자기파괴적인지는 현재 지구의 모습이 잘 보여주고 있다. 100년 전에는 어땠을지 몰라도 바로 그 잘 난 남자의 고향인 영국의 산업혁명으로부터 가속된 자연파괴와 환경오염은 이미 전지구적인 인류 공통의 문제가 되었다.

쓰여진지 100년이 넘었고 시간여행이라고 하면 이제 흔하디 흔한 소재이지만 상상력을 자극하는 동시에 지금의 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시간여행자가 우리 시대를 방문한다면 그는 또 얼마나 화를 내다가 떠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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