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지대
줌파 라히리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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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읽어서 일수도 있지만, 읽는내내, 그리고 마지막장을 덮고 난 뒤에도, 야트막한 물에 몸이 반 쯤 잠겨있는 듯 했다. 우다얀이 숨어있었던 저지대가 이런 느낌이었을까. 계속 엇갈리기만 하는 사람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그 누구 하나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지 못한다. (마지막에 함께하게 된 수바시와 엘리스, 벨라와 드루는 잘 살았을까? 하지만 그들에 대한 정보는 거의 알 수 없다.) 그들의 감정이 그대로 표출되었다면 이 소설과는 전혀 다른, 격렬한 감정이 파도치는 내용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비졸리와 가우리의 관계는 막장드라마의 소재라고 해도 충분해보인다. 하지만 둘 다 자신의 감정을 분출하지 않고, 마음속에 담아놓는다. 그리고 이것은 거의 대부분의 관계에서 동일하게 반복된다. 우다얀은 수바시에게 자신의 활동을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고, 가우리도 편지 한 장 남긴채 벨라와 수바시를 떠난다. 우다얀과 수바시의 아버지는 아무말 없이 세상을 떠나고, 가장 친밀하다고 생각했던 우다얀과 가우리조차 서로가 한 일에 대해 많은 부분을 알지 못했다. 그렇게 알지 못했던 일들은 모두, 사건이 벌어진 뒤에야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알려진다. 우다얀이 죽은 뒤에, 가우리가 떠난 뒤에... 남은 사람들에게는 감정을 드러내는 것보다는 그 상황에서 자신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가 더 중요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묻어버린 감정들 한 가운데에, 읽는내내 고요히 잠겨있게 된다.

인도의 근현대사를 알지 못하기에, 100여년, 3대에 걸친 장대한 이야기를 이해하기가 그렇게 쉽지는 않았다. 실존 인물인 듯한 인도공산당의 지도자들이나 큰 사건들에 대해 좀 더 알고 있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아있다. 하지만 그런 굴곡진 현대사는 당시 세계 어디에서나 발생했었고, 우리나라 역시 그 한가운데에서 요동친 곳이다. 식민지배가 끝난 이후 새로운 시대, 새로운 나라를 만들기 위한 젊은이들의 투쟁, 더 나은 삶을 위한 강대국으로의 이동과 그곳에서의 고단한 삶, 급격한 사회변화에 의한 세대간의 갈등 등은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적용될 것이다. 그러기에 세부적인 내용을 알지는 못하더라도, 그들의 이야기는 곧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곧 미국으로 떠나는 여동생때문에, 가우리의 모습에 조금 더 관심이 갔었다. 그녀의 미국에서의 모습이 곧 내 동생의 모습이 될 수도 있으므로. 아직도 그녀의 심정이 모두 이해되지는 않는다. 마지막까지 약간의 의문을 가지고 바라보았다. 왜 그녀는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그 닫쳐버린 마음이, 그로 인한 자신의 행동때문에 결국 상처받게 되는 그녀의 모습이, 쓸쓸하면서도 안타까웠다.

 

우다얀은 결국 소설의 끝부분에서야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죽음은, 이 모든 사건이 일어난 시작지점이었다. 그 이후 등장인물들은 마치 그가 숨어있었던 저지대처럼, 항상 엇갈려갔다. 그리고 그 감정들은 각자의 마음속에 상처의 저지대를 만들어갔다. 마지막으로 우다얀이 떠올린 햇빛 가득한 가우리와의 한 때는, 그래서 더욱 아름답고, 아프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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