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판 저본: Marxism and Epistemology (1975, 초판) 




원서: L’Épistémologie historique de Gaston Bachelard (1969) + 

Pour une critique de l’épistémologie: Bachelard, Canguilhem, Foucault (1972)





영역판 서문 (7-24쪽)


> 인식론이라는 단일한 분과의 두 경향 사이의 비교


1) 바슐라르 vs 포퍼 


바슐라르의 [새로운 과학 정신](Le nouvel esprit scientifique, 1934 -> en. The New Scientific Mind)과 포퍼의 [과학적 발견의 논리](The Logic of Scientific Discovery, 1934) "사이에는 어떤 대면의 조짐이나 경쟁의 징후도 나타나지 않았다." [10]



 [새로운 과학 정신]  [과학적 발견의 논리]  



2) 바슐라르 vs 쿤 


바슐라르의 [현대 물리학의 합리주의적 활동](L'activité rationaliste de la physique contemporaine, 1951)과 쿤의 [과학 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1962). "이 두 책은 핵심적인 문제들에서 실제로 일치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완전한 오류라고 생각한다." [11]


         



"우리는 이러한 진기한 상황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인식론의 역사-- 필연적으로 비교인식론(comparative epistemology)의 형태를 띠게 될 역사 --를 가지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나름대로의 지적 국수주의에 기초해 있는 주장들이 불충분하다는 것은 명백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공백에 의해서 야기될지도 모르는 심각한 오해-- 이러한 오해의 이론적 귀결들은 심각할 수 있다. --에 관해서 곧바로 독자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10] 


"내가 보기에는, 바슐라르적 전통의 지배적 경향은 유물론적인데 반해서, 포퍼주의와 그 변종들의 경향은, 그것이 보여 주고 있는 어떤 외양들에도 불구하고, 명백히 관념론적이다." [11] 



ct. 실증주의 


푸앵카레"(H. Poincare) 이후 전통이 되어 버린 '과학의 가치'에 대한 논문들에 반대하여, 바슐라르는 인식론자들에게 현대 과학적 실천 속에서 새로운 인식론적 가치들이 지속적으로 출현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13] 


        

 


ct. 상대주의/회의주의 


"이러한 유물론적 입장은, 바슐라르가 고전 시대의 관념론 철학이 '인식의 문제'라고 부르던 것의 이론적 공간을 떠나도록 만들고 있다." [14-15] 



여기에 실려 있는 글들은, 3년이 넘는 기간 동안에 씌여진 것으로서, 명백하게 하나의 조우(encounter)를 표시하고 있다. 그것은 프랑스에서 변증법적 유물론-- 맑스주의 철학 --과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에 의해 시작된 인식론적 전통을 만나게 했던 이론적 조우이다. - P7

그것은 ‘인식론적 단절‘ 개념이 어떤 한계 내에서, 따라서 어떤 유보들을 가지고 과학성에 대한 역사적 유물론의 주장을 지지하는 데 이용될 수 있는지를 결정하기 위하여, 내적 비판의 노력을 통해서, 바슐라르의 범주 체계를 역사 유물론의 체(sieve)로 걸러 내는 문제였다. - P9

나는 인식론 그 자체의 영역으로 빠지게 되었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논의하고 있었던 독창적인 인식론적 전통이 인식론 혹은 과학 철학이라는 이름하에, 특히 앵글로-색슨계 국가들에서 실천되고 있는 것의 가장자리에서 어떻게 구성가능한가에 대해서 설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 P9

이 과학 문화의 철학은 바슐라르의 설명에 따르면, ‘인식론적 가치들‘의 점진적인 출현과 항구적인 재조직으로서의 과학사를 드러내야 한다. - P12

가치들(윤리적, 미학적, 종교적 가치들)의 철학의 유심론적(spiritualist) 경향에 지배되고 있는 프상스의 철학적 전통에 반대하면서, 바슐라르는 인식론에도 가치들을 다룰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 P12

과학들의 운명 속에서 합리적 가치들은 부여된다. 그것들은 역사적으로 부여된다. 과학사는 일종의 자율적 필연성에 의해서 나아간다. - P13

과학적 진리의 진리성은 저절로 ‘부여된다‘. 스피노자식으로 말하면, ‘veritas norma sui‘(진리는 그 자신의 척도이다). - P14

인식론적 ‘가치‘는 현재적이지 않은 것(what it is not), 즉 현재적인 것의 이전 것이거나 외부에 존재하는 것을 가치절하한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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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dos 2022-07-19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연적 가치들로부터 격리된 개념들의 합리적 조직으로서의 관념론적 철학에 반하여, 실증주의와 상대주의/회의주의 모두에 대항하여, ‘인식론적 가치‘(epistemological value)들의 점진적인 출현과 항구적인 재조직으로서의 과학사를 드러내기 위해, 역사적으로 부여되는 자율적 필연성에 따르는 과학사로부터 현재적이지 않은 것(what it is not)의 가치를 판단하여 과거의 잔존물의 자격을 박탈함으로써 경계 설정이라는 비판적 효과를 갖는 유물론적 변증법을 제안한다.
2013년에 <영역판 서문>만 읽었나 본데, 밑줄을 보니 지금보다 얼마나 감이 없었는지 알겠고, 메모를 보니, 참 무척 애를 쓰셨구만.
푸코 싫은데, 내가 푸코를 쓸 수밖에 없었던 지점이 (알튀세르를 통한) 정확히 바슐라르로부터의 유산이었음을 알게 되어 기쁘다. 비록 유물론은 질색이라 전적으로 입적할 수는 없지만. 태생적으로 포퍼 쪽이고.
과학을 활동으로 보는 한, (쿤과는 무관하게. 쿤은 이미 고딩 때 바로 버린 바 있음.) 야니히나 바슐라르나 참고가 될 수밖에.

 


원서: Herbert Spiegelberg (1982, 3/e) The Phenomenological Movement, pp.423-650:   

Part Three. The French phase of the movement

https://doi.org/10.1007/978-94-009-7491-3_9




저자: https://en.wikipedia.org/wiki/Herbert_Spiegelberg%20 (1904-1990)



제3부: 현상학적 운동의 프랑스적 단계 (11-231쪽) 


들어가는 말 (11-13쪽) 


"1930년대 초반 이후로 현상학적 운동의 중심이 프랑스 철학계로 옮겨갔다는 데에는 거의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11] "그러나 현상학을 주요 철학적 도구로 채택했던 이러한 모임들에 참석했던 프랑스 철학자들의 어느 누구도 그들 자신을 현상학자라 불렀는지 혹은 현상학적 운동의 성원으로서 간주되기를 원했는지에 대해서는 의심스럽다." [11-12] "아마도 프랑스의 참석자들은 [...] 그들이 사용하는 방법에 따라서가 아니라 그들이 갖고 있는 주요 관심과 결론에 따라서, 즉 실존주의자로서(싸르트르와 메를로-뽕띠) 분류되기를 원했을 것이다." [12] "그렇지만 실존주의마저도 결코 조직화된 운동이 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프랑스 철학은 그러한 집단성으로 불리어지기에 적합한 것이 아니었다." [12] 


"분명한 것은 많은 독일인들의 현상학 작업에 있어서의 너무도 흔한 단조로운 양식과 비교해 볼 때 그들은 훨씬 더 문학적인 기질로 글을 썼다는 것이다. 그들은 때때로 어쩔 수 없이 신조어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용어적인 혁신을 강조하지는 않았다. 때때로 그들은 현상학적인 논술에 있어서 예전에는 사용되지 않았던 문학적 매체들을 이용했다. 일례로 일기를 들 수 있는데 이것은 마르셀에 의해 직접적으로, 그리고 중요한 양식으로 받아들여졌으며 싸르트르에 의해서는 그의 소설 [구토] 속에서 간접적으로, 그리고 대담한 양식으로 채택되어졌다. 그러나 독일적인 양식의 현상학적인 저술에 익숙한 독자는 심지어 제목에서 현상학적 기술을 예고하고 있을 때조차도 단순한 현상학적 기술마저 결여되어 있는 것을 보고는 충격을 받을 것이다. 그들의 현상학적 저술의 일반적인 경향은 직관의 절차를 통해 얻는 발견물들을 단순히 진술하기보다는 어떤 문제점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논의하는 것이다." [12] 



VIII. 프랑스 현상학의 시초 (15-33쪽)


1. 토양 (15-18쪽)


> 현상학의 프랑스로의 이동/동화의 요인

(1) 베르그손주의와의 유사성 

- '의식의 직접적인 소여'에 관심을 두고 있는 베르그손의 직관철학과 주어진 것에 대한 충실한 기술이 제1의 관심인 괴팅엔 학파 사이의 유사성 

- 끊임없이 이어지는 연속으로서의 내적 시간의식과 같은 공통의 관심

> 차별성

- 직관에 의한 베르그손의 창조적 진화의 형이상학 

- 베르그손의 반지성주의와 수학에 대한 비난 등 분석적인 접근방식에 대한 적대감 

- 플라톤주의와 유사한 일반적 본질에 대한 어떤 직관에 대한 배척 

=> 현상학은 "느슨한 베르그송주의로 통할 수 있었다."

(2) 반베르그손주의적 고전적 프랑스 전통으로부터의 환심 

- 1929, 후설, 소르본 대학 강연, 현상학을 '신 데카르트주의'라고 소개 

- 베르그손의 직관주의적 형이상학에 반대한 브렁쉬비크 등의 후설의 관념론에 대한 호의

(3) 프랑스 가톨릭 철학과의 친밀성

- 신토마스주의의 추천: 현상학에서의 일반적 본질에 대한 복권, 반심리학주의적 논리학적 접근 

- 비토마스적 가톨릭주의에 호소: 지향성 개념에 대한 스콜라 철학적 이해, 현상학의 아우구스티누스-스코투스적 특성 

(4) 프랑스의 프로테스탄적 종교철학에 기여 기대 

- 감정의 지향적 상관자까지 미치는 종교의식의 개념을 제공함으로써 현상학이 보다 넓은 종교현상에 접근할 수 있는 타당성 문제를 해결해 줄 것으로 기대 

(5) 인간주의적 초기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탐구심 

- 헤겔의 [정신 현상학]과 후설의 현상학을 혼동 

- 변증법적인 유물론을 배제하고 마르크스의 사회이론과 역사이론을 정당화하는 방법의 대안으로 부상 

(6) 1920년대 후반, 새로운 세대의 욕구 

- 브렁쉬비크의 관념론적 합리론으로 대표되는 프랑스 학문 전통에 대한 반발

- 감각적인 비철학적 저작물(키에르케고르, 카프카, 프루스트, 지드)

- 실존적 문제를 다루는 하이데거의 명료하고 엄밀한 방식에 대한 추구로 인해 후설의 현상학에로 회귀 



2. 수용적인 단계 (18-23쪽)


"따라서 후설적인 근거에서 현상학을 받아들이고 활성화시킨 주요 공적은 싸르트르에게 돌아가야 할 것 같다. 특히 1936년의 [철학연구] 지에 실린 그의 첫 번째 논문과 1936년과 1940년 사이에 상상력과 감정에 대한 책자 크기의 연구들을 고려할 때 그러하다." [21] 


"이 단계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철학연구] 지라는 새로운 연보로서 그 제목은 후설의 [연보] -- 이미 1930년 이후에는 나오지 않았다 --를 생각나게 한다." [21] 제2권부터 연보는 '현상학'이란 특별한 절을 만들어 그 분야의 새로운 문헌에 대한 비판적인 논평을 싣고 있다. 세 번째 이후의 책들은 몇 편의 민코프스키의 [현상학적인 스케치]를 싣고 있으며 마르셀은 그의 [소유의 현상학]과 [상황 속의 존재에 대한 현상학적 고찰]을 기고하였다. 마지막 책에는 처음으로 싸르트르의 논문 [현상학적 기술]([자아의 초월성])이 실려 있는데 그것은 새로운 프랑스 현상학을 후설의 기획과 연결시킬 뿐만 아니라 동시에 싸르트르의 독자적인 경지의 시작을 나타내기도 한다." [22] 

  

"일반적으로 프랑스 인들은 [...] 독일 현상학에 있어서의 통일성을 찾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후설과 하이데거 그리고 쉘러 사이의 불일치는 보통 간과된다. 후설은 대개 독일에서는 영향을 별로 주지 못했던 그의 후기 저서들을 통해 알려지게 됐으며 그의 초기 현상학적인, 혹은 전(前)현상학적인 저작물들은 거의 무시되고 있다." [22] 


"후설 철학에 대한 가장 훌륭하고 가장 영향력 있는 해석 중의 하나를 제시한, 그렇지만 또한 그것을 넘어서 상당한 독창성을 보여준 베르(Gaston Berger, 1896-1960)"[22]는 "프랑스에서의 현상학적 철학의 지위를 높여주었다." [23] 


"후설 사상의 해석자로서 그는 코기토의 사상을 중심으로 하고서 후설 사상 발달에 있어서의 통일성을 보여주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그는 또한 후설의 사상과 흄의 사상의 관련성을 강조했다. 프랑스에서의 베르는 아마도 후설의 고유한 위치에 대한 확고한 지지자였다. 그는 선험적 환원의 필수불가결성을 주장했다. 그렇지만 베르가 후설을 변호했다고 해서 그의 자아개념에까지 무비판적인 것은 아니었다. 또한 그의 [인식의 조건들에 대한 탐구](1942)에서 그는 지향적 분석에 기초한 그 자신의 현상학적 인식론을 제시했다. 이 속에서 그는 나의 선험적 자아가 타자의 선험적 자아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을 거부하고 둘이 동등하다고 주장했다. '프랑스 철학회'에서 발표한 [시간에 대한 몇몇의 현상학적인 양상들]에 관한 그의 후기의 독자적인 성찰은 비상하리만큼 많은 주석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또한 성격학의 분야에서도 대단히 활동적이었다. 그는 현상학의 주요 과업을 현재의 철학적인 상황에 기여하는 선험적인 주지주의에 대한 탐구 그리고 구성 개념의 해명, 특히 주관 속에서의 '형식'의 구성을 해명하는 데에다 두었다." [23] 



3. 현상학과 실존주의 (23-27쪽)


['실존주의'라는 용어는] "1920년대 이래로 프랑스와 독일 그리고 가장 일찍 일어난 것으로 알려진 이탈리아에서 단지 이따금씩 모습을 나타냈고, 대개는 새로운 사유방식에 대해 반대하는 자들 사이에서 사용되었다. 그 말은 창시자로 아려진 야스퍼스와 하이데거에 의해 일관적으로 거부되어 왔다. 야스퍼스는 단지 [실존철학]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뿐이고 하이데거는 '실존적인 분석학' 혹은 '기초 존재론'만을 이야기할 뿐이었다." [24] 

 

"이미 1935년에 Vernunft und Exisenz 속에서 그 용어를 사용했던 야스퍼스는 'Existenzialismus'가 'Existenzerhellung(실존해명)'의 객관화된 왜곡이라 하여 거부했다." [24: f9] 


"하이데거는 적어도 [존재와 시간]의 단계에서는 그의 실존분석학이 현상학이라는 것을 주장한다." [25] "그러나 이러한 연관도 후설이 실존철학과 함께 하이데거의 기획을 비난하기 시작했을 때, 그리하여 하이데거 자신이 현상학에 대해 말하기를 중단했을 때 끊어져버렸다." [25] 


"그리하여 그[싸르트르]의 <현상학적 존재론의 시론>이 나타난 직후에 자신의 전체적인 기획에 대한 포괄적인 제목으로서 '실존주의'라는 용어를 채택했다는 것은 적어도 대부분의 대표적인 프랑스 현상학자들에 관한 한 현상학과 실존주의의 융합을 의미했다." [25] 


1930년대 초반 이후로 현상학적 운동의 중심이 프랑스 철학계로 옮겨갔다는 데에는 거의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 P11

그러므로 현상학은 쉽게 느슨한 베르그송주의로 통할 수 있었다. - P16

처음에는 후설이 현상학에 대한 프랑스 인의 관심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거의 쉘러와 하이데거에 의해 가려졌기 때문이다. 사실상 프랑스에 현상학이 수용되어지는 역사는 거의 독일 본래의 역사와는 거꾸로 나타난다. - P19

그러므로 후설은 대체로 현상학적 운동의 중심 인물로서가 아니라 시대에 뒤떨어진 창시자로서 나타났다. 분명한 것은 싸르트르가 후설의 저작물로 되돌아갔을 때에야 후설이 그 자체로서 연구되기 시작한 것이다. - P20

아마도 프랑스 현상학의 가장 특성적인 특징은 독일에 있어서는 현상학과 실존주의가 분리되고 심지어 적대관계에 놓여 있는 것과 비교해 볼 때 실존주의와 꼭 일치하지 않는다 해도 밀접한 연관관계에 놓여 있는 것이라 하겠다. - P23

현상학과 실존철학은 독일에서의 두 개의 갈라진 사상이었고 둘 사이의 경쟁에서 현상학은 패배자가 되었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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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란 무엇인가
수잔 K.랭거 지음 / 문예출판사 / 198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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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판/2022년 2쇄. 원제: Problems of Art: Ten Philosophical Lectures (1957). 감사한 번역. 권말 3쪽에 불과한 옮긴이 후기 또한 단순 요약과는 차원이 다른 금쪽 같은 도움을 줍니다. 색인이 누락됐다는 단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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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陰翳礼讃 (In'ei Raisan; In Praise of Shadows

다니자키 준이치로 (谷崎 潤一郞; Jun'ichirō Tanizaki, 1886-1965)


[NHK World] Tanizaki Junichiro on Japanese Aesthetics: In Praise of Shadows 





일본 다다미방의 아름다움은 전적으로 음예의 옅고 짙음에 따라 나타나는 것이며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서양인이 일본의 간소한 다다미방을 보고 단순히 회색 벽만 있고 아무런 장식도 없다면서 놀라워하는 이유는 당연하게도 그들은 음예의 비밀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 P10

특히 간토(関東)의 화장실에는 바닥 쪽에 좁고 긴 창이 있어 처마나 나뭇잎에서 뚝뚝 떨어지는 빗방울이 석등룡 아래를 씻어내고 디딤돌의 이끼를 촉촉이 적시면서 땅에 스며드는 조용한 소리를 더욱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다. 실로 화장실은 벌레 소리에, 새소리에, 달밤에 또한 어울리고 사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정취를 음미하는 데 가장 적합한 공간이며, 아마도 오래전 하이쿠 시인은 이곳에서 무수한 소재를 얻었을 것이다. - P25

다니무라 다이무: ‘음예(陰翳)‘는 음영 가리키기도 하는데, 정확히는 ‘어둑어둑한 그림자‘를 가리킨다. 그리고 다니자키의 <음예예찬>은 지극히 단순하게 말하면 "자신을 포함해 왜 일본인은 어둑어둑한 그림자를 좋아하는가."를 누누이 설명한 글이라 할 수 있다. 독특한 문체로 쓰인 이 수필은 시대를 넘어 일본의 미학을 엿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성서가 되었으며, 국경을 넘어 미국과 유럽의 지식인에게도 깊은 영향을 끼쳤다.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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