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정치 디알로고스총서 5
브라이언 마수미 지음, 조성훈 옮김 / 갈무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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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무리에서 출간(2018)한 브라이언 마수미(Brian Massumi)의 "정동정치"(Politics of Affect, 2015)를 읽기 시작하였다. 전체적인 서평은 마지막 쪽까지 다 읽은 다음에 하기로 하고 우선 서문에서 맞닥뜨린 오역 가능성이 있는 문장 하나를 살펴보고 싶다.


역서 - "그것[진행 중인 변형의 과정으로서의 세계]는(sic) 사물들(things)과는 ― 물론 '그 자체로서' ― 무관하며, 제임스의 유명한 구절이 말하듯이, 형성-중-인-사물(sic)과도 관계가 없다"(11).
원서 - "It is not concerned with things―certainly not 'in themselves'―so much as with things-in-the-making, in James’s famous phrase"(viii).

오역이 의심되는 부분은 두 군데이다.

1. not A so much as B 구문: 이 구문은 'B만큼 A는 아닌'으로 번역하는 게 맞다고 본다. 따라서 위 문장에서 B에 해당하는 부분(with things-in-the-making)을 부정으로 번역한 것은 잘못이다. "그것은 형성-중인-사물들만큼 사물들과 관계가 있지 않다"로 번역하는 게 맞다. 한편 not only A but also B 구문에서와 같이 A에 해당하는 부분도 완전히 부정되는 게 아니다. B만큼은 아니지만 A도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다. 그 증거는 다음 오역 의심 부분에서 다룬다. 

2. in themselves: 역서에서는 이 구절을 '그 자체로서'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올바른 이해는 things-in-the-making과의 대구에서 볼 때 찾아질 수 있다. 이 문장에서 대구를 이루는 것은 things-in-themselves와 things-in-the-making이다. 즉, 앞부분은 칸트가 말하는 물자체(thing-in-itself)의 복수형으로 읽어야 한다. 따라서 관련성을 놓고 볼 때 확신히(certainly) 관련이 없는 것은 칸트 개념인 사물 자체(things-in-themselves), 관련이 있지만 개념적으로 관련이 크다고 보기 어려운 것은 사물(things, 포괄적 개념인 동시에, 일반적으로 고정된 실체로 이해되기 때문에), 관련이 있는 것은 형성-중인-사물(things-in-the-formation)로 이해하는 게 옳다고 본다.

3. thing-in-the-making이 긍정으로 읽어야 하는 근거는 이 문장 바로 위에도 나온다. 이 표현의 출처인 '제임스'는 바로 위에서 "논의 중에 우리가 정기적으로 되돌아가 언급하는 사상가들" 중 한 명인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이다. 즉, things-in-the-making은 이 책의 이론적 바탕이 되는 과정철학(process philosophy)의 개념이다. [여기서 추구하는 접근 각도는 넓은 의미에서 보면 과정철학의 그것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11).] 그렇다면 논리적으로 '진행 중인 변형의 과정으로서의 세계'가 '형성-중인-사물'과 관련이 없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책의 서두에서부터 오역이 의심되는 부분을 맞닥뜨리게 되어 아쉽기는 하지만 어려운 개념인 정동(affect)의 이해를 도와줄 수 있는 좋은 책이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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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18-07-10 01: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It is not concerned with things – certainly not ‘in themselves’ – so much as with things-in-the-making, in James’s famous phrase.
― Brian Massumi,『Politics of Affect』(Polity, 2015), p. viii

그것[진행 중인 변형의 과정으로서의 세계]는 사물들things과는 ― 물론 ‘그 자체로서’ ― 무관하며, 제임스의 유명한 구절이 말하듯이, 형성-중-인-사물과도 관계가 없다.
― 『정동정치』(조성훈 옮김, 갈무리, 2018), 11쪽

→ 위 번역은 Aidan 님께서 올바로 지적하셨듯이 완전한 오역이 맞다고 봅니다. 브라이언 마수미(Brian Massumi)와 정동(affect) 개념 전문가가 저런 오역을 했다니 믿기지 않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번역가도 실수하지 않을 수 없긴 합니다만, 위와 같은 비교적 평이한 문장을 오독하고 오역하다니 좀 충격적인 건 사실입니다.

한데 ‘not A so much as B’ 구문은 Aidan 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B만큼 A는 아니다’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런 식으로 번역할 경우 직역투라서 좀 부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죠. 해서 우리가 중고딩 시절에 배웠듯이 ‘A라기보다는 오히려 B다’라는 식으로 번역해야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죠. 그렇다면 위 인용문은 다음과 같이 옮겨야 올바르고 자연스러울 것 같습니다.

그것[진행 중인 변형의 과정으로서의 세계]은 사물들things보다는 ― 즉 ‘사물들 자체’보다는 ― 오히려 제임스의 유명한 구절에 나오는, 형성-중인-사물들과 관계가 있다.

위와 같은 뉘앙스 외에 Aidan 님께서 지적한 추가 사항들 관해선 모두 동의합니다. 눈썰미 뛰어난 지적과 분석이라고 봅니다. 특히 사물들 자체(things-in-themselves)는 칸트의 용어 물자체(thing-in-itself)의 복수형으로 읽어야 한다는 지적과, 그것은 형성-중인-사물들(things-in-the-making; things-in-the-formation)과 대구적으로 쓰였다는 지적은 독자들한테 참신한 깨달음을 주는 지적이라고 봅니다.

한데 조성훈 번역가가 ‘things-in-the-making’을 ‘형성-중-인-사물’로 옮겼는데요.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단어들을 이어주는 하이픈(이음표, 붙임표)을 우리말 표기 방식이나 조어법에 맞지 않게 썼다는 것입니다. 즉 ‘things-in-the-making’은 서양 철학자들의 철학 용어 조어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하이픈 연결형 철학어/개념어’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런 걸 우리말로 번역·표기할 때 서양식 혹은 영어식 형태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분명히 있지만 일단 여기에선 논외로 하겠습니다만, ‘things-in-the-making’을 하이픈 없이 옮기면 ‘형성 중인 사물들’인데, 이걸 하이픈 개수를 곧이곧대로 반영해 ‘형성-중-인-사물’로 옮긴 것은 굴절어인 영어와 교착어(첨가어)인 우리말의 차이점을 고려하지 못한 잘못된 번역·표기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in-’은 ‘-중인-’으로 번역·표기해야 우리말 조어법에 맞지 ‘-중-인-’으로 하면 전혀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관형사형 어미라 할 수 있는 ‘-인’은 교착어인 우리말에서는 단독으로 쓰이지 않기 때문에(쓰일 수 없기 때문에) ‘-in-’에 해당하는 ‘-중인-’을 ‘-중-인-’으로 분리해 번역·표기하는 것은 적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하이픈 연결형 철학어/개념어인 ‘things-in-the-making’을 영어식 형태를 반영해 번역·표기할 경우엔 ‘형성-중인-사물들’ 혹은 ‘형성-중-사물들’로 해야 그나마 우리말 조어법에 맞는다는 것입니다.

Aidan 님께서도 이 점을 인식하셨는지는 몰라도 위 비판글에서 ‘things-in-the-making’을 번역서와는 다르게 ‘형성-중인-사물’로 표기하셨네요. 평소에 하이픈 연결형 서양 철학 용어들의 적절한 번역에 비판적 관심이 있어서 한번 말씀드려 보았습니다. 아무튼 Aidan 님의 위 번역 비판글 덕분에 좋은 생각의 기회를 나눌 수 있었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이 댓글은 원래 ‘not A so much as B’ 구문의 오역에 대해서만 짧게 쓰려고 했던 것인데요. 쓰다 보니 길어져서 먼댓글 형태로 제 알라딘 블로그와 페이스북에도 올립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처음 올린 시각 : 2018-07-09 20:56]
[오타 수정해 다시 올린 시각 : 2018-07-10 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