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밥보다 여행 - 275일간의 세계 일주, 노마드 모녀여행 ㅣ 밥보다
이상정 지음 / 책밥상 / 2021년 4월
평점 :
여행기지만 사진은 없어요. 그럼?
영화 <80일간의 세계일주>를 보면 주인공이 도대체 어떻게 가능했는지 궁금해하는 귀족 친구들에게 자신의 무용담을 술술 들려주죠.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은 또 어떻구요. 삼십대 중반 이미 유럽 전역에 명성을 떨치던 젊은 문장가는 모든 걸 훌훌 벗어던지고 이탈리아 로마로 훌쩍 떠나는 과정을 유려하게 적어나갑니다.
이 책은 그런 종류의 여행기였습니다. 사진도 정보도 없어서 처음엔 당황했지만 어쩐지 더욱 천천히 읽게 되는… 여행의 주인공이 바로 옆에서 들려주는 듯한 말맛 글맛이 넘치는 책입니다.
‘나는 대단한, 화려한 인생살이보다 사람으로 살아가는 기본적이고도 평범한 방법을 보여주고자 했다.’(63쪽)
아마도 이 문장이 여행의 목적과 상통할 겁니다. 꼭 화려한 것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임을, 세상 어디나 다 사람 사는 곳임을 아이에게, 그리고 독자들에게 들려줍니다.
‘2018년, 러시아보다 소련이라는 이름으로 익숙했던 나라, 선과 경계를 넘을 수 없던 나라, 서울 촌뜨기가 드디어 그 나라의 핵인 모스크바에 왔다.’(201쪽)
글 속 곳곳에 이처럼 여행의 설렘과 충격이 가득합니다. 눈과 귀를 활짝 열고 다닌 여행은 점점 아이에겐 성숙을, 반대로 엄마에겐 젊음을 선사합니다. 물론 아이는 이미 성인이어서 어쩐지 과보호 한다는 느낌도 들지만요.ㅎㅎ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어미의 산에서 아이가 하산할 때가 왔다. 이제 둥지를 박차고 넓은 세상으로 날아가도 무방하겠다. 어미도 어미 앞의 남은 생을 향해 방향타를 다시 조정한다.’(264쪽)
이 책은 여행기이자, 다큰 자녀를 품에서 떠나 보내려는 엄마의 육아일기를 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코로나 시대의 여행이 앞으로 어찌될지 모르지만, 어떤이는 이 책을 덮고 길로 나서고자 할 것 같습니다. 넓은 세상을 보고 싶은 누군가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