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담 & 싱어 : 매사에 공평하라 지식인마을 16
최훈 지음 / 김영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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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레미 벤담과 피터  싱어. 두 사람 모두 윤리학에 있어선 매우 중요한 사람들이고 그만큼 많이 이름이 알려져있다. 벤담은 밀과 함께 공리주의의 아버지로 여겨지고, 피터 싱어는 현재 살아있는 영향력있는 윤리학자 중 한명이다. "벤담과 싱어는 이익들에 대한 평등 고려 원칙을 가지고 차별을 반대한다. 이익은 누구의 것이든 똑같이 고려해야 하므로 성별이나 피부색에 따른 차별은 옹호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이 원칙을 일관성 있게 밀고 나가면 동물에 대한 차별도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 음식으로 동물을 먹거나 실험 도구로 이용하는 일이 일상적이고, 그것이 반성의 대상이 된다는 것 자체가 고려된 적 없는 세상에서는 그들의 동물 해방론이 생뚱맞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보기에 그런 낯섦은 여성 차별을 당연시하던 시기에 여성 해방을 부르짖거나 인종차별이 의심받지 않던 시기에 흑인 해방을 외치던 사람들이 받던 시선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이 책은 이 두 사람을 소개하고 그들의 이론을 비교하며 공통점과 차이점을 말해준다. 보통 벤담을 밀과 비교하는 것이 더 익숙한데, 벤담은 양적 공리주의자, 밀은 질적 공리주의자 정도로 알고 있다. 벤담의 양적 공리주의의 한계를 밀이 극복했다고 알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주장하기는 하나 벤담은 자신의 행위를 통해 쾌락의 양을 최대한 늘이고 고통의 양을 최대한 줄임으로써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고 했고, 이때의 쾌락은 측정가능하고 양적인 것이다. 행위가 산출하는 쾌락과 고통의 양을 판정할 수 있고, 이로부터 최대한의 쾌락을 산출해낸다. 하지만, 같은 돈이라 할지라도 거지에게 주는 만원과 백만장자에게 주는 만원은 엄연히 다르다. 동일한 양이 동일한 쾌락을 산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밀의 공리주의다.

  여기서는 밀은 다루지 않는다. 벤담과 밀을 비교하기보닫는 고전적 공리주의와 싱어의 공리주의를 비교하는 구도를 형성한다. 벤담의 원칙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었다면, 싱어의 원칙은 다음과 같다.

  "나는 이제, 나 자신의 이익 대신에, 나의 결정에 의해서 영향을 받을 모든 사람들의 이익을 고려해야만 한다. 이러한 고려는 나에게 모든 이익들을 측정해서 영향받는  사람들의 이익을 최대화할 것으로 보이는 행동을 요구한다. 그래서 적어도 어떤 수준에서 도덕적인 추리를 할 때, 나는 영향받는 모든 사람들에게 최선의 결과를 가져올 행동을 선택해야만 한다." (실천윤리학, 33-34쪽)

  이러한 싱어의 '고려'는 인간뿐 아니라 동물에게까지 확장된다. 싱어는 윤리의 기본전제인 공평함을 나에서부터, 혈연, 아는 사람들, 민족과 국가, 인종을 넘어 전 인류로 확장시킨다. 우리는 지금까지 윤리의 범위를 인간에게만 한정지었으나, 싱어의 사고는 그것을 넘어선다. "이익들에 대한 평등한 고려원칙". 이것은 "이익을 측정할 때 나의 이익을 다른 사람들의 것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국가와 인종, 민족을 넘어서 모든 것을 같은 선상에 놓고 바라본다. 벤담도 일찍이 이와 비슷한 말을 했다. "모든 사람은 하나로 계산되며 어느 누구도 하나 이상으로 계산되지 않는다."

  싱어가 말하는 '이익'이란 개념은 누구나 추구할 공통적인 것, 인간 다운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것을 지칭하는데, 벤담은 이익을 말하지 않았을 뿐 이미 싱어와 같은 논리를 펼친 바 있다. 다만 두 사람의 다른 점은, 벤담은 이익을 평등하게 '대우'하라는 것이고, 싱어는 이익을 평등하게 '고려'하라는 것이다. '대우와 '고려'는 다르다. '대우'는 그야말로 양적으로 평등하게 다루라는 것이고, '고려'는 질적인 차이를 염두에 두고 있다. '고려'는 밀의 질적 공리주의와 닿아있다. 하지만 좀 더 엄격하게 따지고 들어갔을 때 밀 또한 싱어와 다르다.

  저자 최훈은 책에서 이런 예를 든다. A. 아무도 행복하지 않지만 아무도 고통을 받지 않는다. B. 아무도 행복하지 않지만 극심한 고통을 받는 사람이 몇 명 있다. C. 아주 행복한 사람도 몇 명 있고 극심한 고통을 받는 사람도 몇 명 있다. 그런데 행복의 양이 고통의 양보다 더 크다. 이런 상황에서 벤담과 밀은 A가 B보다는 더 낫다. 하지만 A와 C를 비교했을 때는 C가 행복이 더 크므로 C가 더 낫다고 한다. 하지만 싱어는 다르다. 싱어는 고통의 양을 최대한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고로 그는 A가 더 낫다고 할 것이다. 이런 점이 벤담, 밀과 싱어의 다른 점이다.

  싱어는 이것을 <동물해방 >이라는 책을 통해서, 동물에게까지 적용하며 "어떤 존재가 어느 동물 집단에 속하느냐에 따라 그 존재의 이익을 다르게 고려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인간이 인종에 따라 차별하는 것이 잘못되었듯이, 우리가 인간이고 저들이 짐승이라하여 저들을 차별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씹는 고기맛을 즐기기 위해서 함부로 죽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결국 이와 같은 주장은 채식주의로까지 나아간다. 인종차별과 성차별 나아가 종차별을 이야기한다. 인간이 죽음에 고통을 받는 만큼 동물도 고통을 받는가를 따져묻고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을 인간과 달리 대우해서는 안된다. 논의가 깊어짐에 따라 '인간 대 비인간'의 대결구도는 이후에 '인격 대 비인격체'에 대한 대결구도로 나아간다. 종의 문제가 아니라 고통을 느끼는 정도에 따라 인격과 비인격체로 나눈 것이다. 삶의 질을 따져묻는 것이다.

  싱어의 주장에 우리가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그의 주장은 나름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싱어의 책을 읽고 싶어졌고, 평소 아무렇지 않게 씹고 있는 고기덩이들에 대해서도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근무하는 학교에 아일랜드 원어민 교사가 있는데, 그녀는 채식주의자다. 이 책의 채식주의 분류에 따르면, 그녀는 '비건(vegan)'까지 나아갔다. 채식주의도 정도에 따라서 비덩주의-준채식주의-페스코-락토오보-락토-비건 으로 나뉘는데, 그녀는 모든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하지 않는 비건인 것이다. 새삼 그녀가 존경스러워졌고, 한국 땅에서 채식주의는 힘들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해봤다. 단체와 집단의 문화를 중시하는 우리는 튀는 개인을 좋아하지 않는다. 회식자리에서 나는 비건이니 샐러드만 먹겠다고 했을 때 이를 존중해주고 받아들여줄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내가 싱어의 주장에 100% 공감하고, 채식주의자가 되겠다는건 아니다. 하지만 설렁 그런 결정을 한다고 하더라도 한국 땅에선 힘들지 않나 생각해본다. 다름보다는 같음을 지향하는 사람들이므로.  

 

*  이 책을 읽고 관심갖게 된 책 ( 다수는 이 책 '깊이 읽기'에 소개된 책들 )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 
   피터 싱어의 <생명윤리학> 
   피터 싱어의 <삶과 죽음> 
   피터 싱어의 <사회생물학과 윤리> 
   피터 싱어의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
   임종식의 <개고기를 먹든 말든> 
   주강현의 <개고기와 문화제국주의>
   남유철의 <개를 위한 변명>
   제레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
   하워드 F 리먼의 <나는 왜 채식주의자가 되었는가>
   마크 롤랜즈 <동물의 역습>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주의> 
   제임스 레이첼스 <도덕철학의 기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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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5-18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름보다는 같음을 지향하는 사람들이므로."
오.. 아프락사스님의 언명이 갈수록 사안의 핵심을 찌릅니다.

오래 전의 TV극 'V'시리즈에서 보듯이
식인을 즐겨하는, 지구인보다 문명이 발달한 파충류계열의 외계인들이
지구를 점령하고 지구인을 '식량'으로 삼는다면 그들에게 어떤 논리로
항변할 것인가? 그런류의 얘기도 싱어가 했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에게 먹히는.. 고통을 느끼고 그걸 의식하는 동물의 입장에서
육식을 고려해야할 그런 시대가 되지않았나 생각합니다.


마늘빵 2007-05-18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어릴 적 V시리즈를 본 적이 있는데, 그땐 그런 생각을 못했었어요. 아는 만큼, 생각하는 만큼 보이는 거니까요. 그땐 꼬맹이였고, 그저 재밌기만 했고. 쥐잡아먹는 장면이 기억에 나는군요. 싱어의 생각이 궁금해졌습니다. 그의 책들을 읽어봐야겠어요. 어제 숭실대 베어드홀에서 강연회있었던거 같은데 직장인인지라 가고팠는데 못갔습니다. 흠. 마침 또 이렇게 이 책을 읽었을 때 싱어가 내한을 했는지라.

비로그인 2007-05-18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를테면 삼겹살의 공여자인 '돼지'는 결코 돼지같지 않고
개만큼 영리하답니다..

마늘빵 2007-05-18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어디선가 저도 본거 같습니다. 아마도 요 책에서 본거 같은데. 그래서 인간 대 동물의 구도가 아니라, 싱어는 인격체 대 비인격체의 구분을 시도하죠. 돼지는 상대적으로 인격체로 분류가 되고, 식물인간, 뇌사상태인 인간은 비인격체로 분류가 되죠. 이 때문에 피터 싱어가 욕을 먹는 듯 합니다. 일부 인간을 돼지보다 못한 쪽에 분류를 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