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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책 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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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당신은 자기 자신이 되는 일이 어렵습니까?"

"오로지 자기 자신일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지난 해 『내 이름은 빨강』에 이어 오르한 파묵의 책은 두 번째다.오르한 파묵의 책을 읽고 있으면 터키사람들의 정신세계가 궁금해진다.정말 이렇게나 복잡하게 생각하고 있을까?오르한 파묵의 책은   동서양의 가운데 있는
나라 터키인들도 오랜 세월 '정체성'때문에 혼란스러운 모양이라고 미루어 짐작하게 만든다. 자기 자신이 되지 못해 다른 부족을 모방하고,자신의 삶을 살지 못해 결국엔 잊혀진 미지의 땅의 국민들처럼 '터키인'들은 동양과 서양의 중간사이에 있으면서 이들 중 어느곳에도 자기들의 정체성의 적을 두기 어렵게 된 묘한 모양새를 갖게 됐고, 그들만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면 몰락한 부족이나 잊혀진 국민들의 운명을 답습하게 될 것임을 알기에 술탄이 되기 전에  자기 자신이 되기위해 십수년을 보낸 왕자 오스만 제랄레딘 에펜디의 이야기는 이 책의 주제와 잇닿아 있다.

 

 

스웨덴 한림원은 2006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발표하면서 " 파묵은 고향인 이스탄불의 음울한 영혼을 탐색해 나가는 과정에서 문화간 충돌과 복잡함에 대한 새로운 상징들을 발견해 냈다."라고 선정 이유를 밝힌 바 있는데, 번역자의 생각으로 그의 모든 작품 가운데이 말에 가장 어울리는 소설이 바로 『검은 책』이라고 한다. 『검은 책』은 역자 말대로 이스탄불의 음울한 1980년대를 배경으로 정치적인 혼란과 가난으로 휩싸인 이스탄불의 거리 곳곳을 사라져버린 아내와 사촌형의 행방을 좆는 갈립이라는 남자의 이야기와  수십년간 밀리예트라는 일간지에 칼럼을 기고한 제랄의 칼럼이 교차편집되는 형식으로 구성이 되어 있고,그들의 행방을 따라가는 동안 제랄의 과거칼럼과 연계한  터키 역사의 여러사건들,이스탄불의 우울한 거리와 그들의 삶,비밀스러운 기관들,음모,터키와 유럽의 관계설정 및 서양과 비교되는 국가 정체성과 같은 무거운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사랑하는 아내(사촌지간 사이에서 부부가 됨)뤼야와 친구이자 사촌형인 제랄의 행방을 추적하는 동안  그가 제랄의 칼럼에서 얻어낸 실마리는'나는 나 자신이 되어야 한다'이고 신비주의인 후루피주의(14세기 말경에도 또 다른 과격 쉬아 소수파가 아스타라바드의 파들 알라(1398년 사망)의 영도하에 생겨났다. 이들은 알파벳과 연관된 그들의 독특한 가르침에 중심교리를 두었기 때문에 후루피파라고 불렀는데, 이들은 글자들의 숫자적 가치와 다양한 결합, 조합, 조화 위에 여러 신비롭고 비교주의적인 교리를 세웠다. 파들 알라는 우주 속의 삼라만상을 숫자와 문자의 표현으로 간주했다. )의 글자속에 숨겨진 의미들을 찾아내는 과정 속에 일련의 답을 구한다.결국 주인공 갈립은 자신이 숭배하고 선망했던 칼럼 작가 제랄을 대신하여 그의 칼럼에 글을 쓰기 시작하여 이후 점점 그와 합치되게 되는데,이는신비주의에서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되는' 소망이 가져온 갈등이 '자아 완성으로,다른 사람이 되는 것으로' 해소된 것이라고 후루피주의라고 하는 시아파의 일종인 신비주의에서는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되는'소망이 가져온 갈등이 '자아 완성으로 ,다른 사람이 되는 것으로 해소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나 역시 언제나 무언가를 선망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원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결국 '나는 나 자신이고나는 나의 방식대로 살아야한다'는 결론에 이르곤 한다. 요즘의 수많은 자살을 비롯한 수많은 무너짐과 사라짐도 결국 같은 이치가 아닐까? 라고 생각하면 두 달에 걸쳐 읽은 이 책과의 안녕을 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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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내 것이 아니지만, 곧 내 서가에 꽂힐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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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극본 쓰기- 엄인희 작품 모음 2
엄인희 지음 / 북스토리 / 2002년 2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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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즐거운 그림책 읽기
엄혜숙 지음 / 창비 / 2005년 1월
18,000원 → 17,100원(5%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4월 28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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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생각하는 그림들
이주헌 지음 / 예담 / 2004년 12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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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다나베 세이코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0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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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말로 좋은 날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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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집에 <참말로 좋은 날>이라는 단편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소설집의 내용도 '참말로 좋은 날' 같은 날은 없다.

그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이,'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등장인물들이 성석제 소설에 나오는 특유의 인물군인 건 여전하지만,

그들을 풀어내는 이야기의 형식과 시선은 예전과는 다르다.

너무나 건조해서,고발 프로그램을 보고있는 건 아닌가 싶다.

고발 프로그램 같은 삶의 적나라함이 드러난 작품은

<아무것도 아니었다>와 <저만치 떨어져 피어 있네>.

 

그런데도 예전의 향수가 느껴지는 작품들이 여전히 있다.

그렇다고 이게 예전의 지하철에서 읽다가 미친듯이 키득거리거나,

서서 읽다가,무릎이 꺾이는 기쁨을 주는 작품은 전혀 아니지만,

<고욤>(왠지 나는 협죽도 그늘 아래가 그리워진다),

<고귀한 신세>(성석제 아저씨는 웰빙라이프에 관심이 많다.

초기 엽편 소설들 중에 등장하는 정수기장사등이 좀 생각나더라)

<악어는 말했다>- 이거 진짜 웃긴다..왜 당사자들도 아닌 다른 넘이 끼어서

지들 사이를 망치는데도 그 놈한테는 화를 안내냐고...

<집필자는 나오라>(『인간의 힘』이 생각나지만,최동구같은 희화화된 인물은 아니라는 거)

 

책을 다 읽고서 책 뒤에 실린 평론을 읽다가 고개를 주억거렸던 것은,

'말이 말이 아니고, 법이 법이 아니며, 인간이 인간이 아닌 지금을,또 어제를.

그러나 내일은 아니어야 할 그 시간을.그 모든 분할 기계 자체를.'이라는 말에 공감.

성석제는 법학을 전공한 사람이다.

(법학을 전공한 사람중에 비문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가장 문법적으로 건조하게 글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이 어쩌면 법학전공자일지도...)

이 소설에는 다른 어느때보다도  경제적 파산으로 인해 법의 지배를 받아야만 하는,

정상적이지 않은 해결책을 도모하다가,자신과 가족들을 파괴시켜가는 가장들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누군가를 보호하고자 만든 법이 가정을 파괴하고,

인간을 인간이 아니게 만들어버리는 현실을 그린다.

 

그리고선 이 작가,

세상이 바뀌어도 사람은 그대로다.라고 한다...

뭐 그렇지, 한량은 영원한 한량이고,구렁이 담넘듯 남의 덕보고 살던 사람은

끝까지 잘 살 수도 있고,잘 살아보려고 갖은 노력하다가 한 순간에 가는 사람도 있고,

자기가 한 일 끝까지 책임지겠다고 순교자로 나서는 사람도 있을 거고,

자존심을 지키려고 하다가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인간들도...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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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있을 수 있다면 1
안나 가발다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세계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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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가발다의 새 소설 광고를 보자마자 사야겠다고 생각했던 책.

 일단 사랑스러운 등장인물들 소개!

 필리베르 - 본명은 '필리베르 드 라 뒤르벨리에르'로서 프랑스 귀족가문 출신.엄격한 귀족가문의 후손으로서  공립초등학교 등은 보낼 수 없다는 부모님의 의지때문에 초등교육은 어머니로부터 받았고, 이후 기숙학교에 들어가 동료학생들로부터 호된 놀림거리의 대상이 된다. 가정 분위기,학교생활등의 영향으로 키가 크고 구부정한 그는  언제나 말을 더듬고,사람들앞에 나서지 못해,   박식한 인문학적 소양에도 불구하고,미술관에서 엽서파는 일을 하며,집안의 유산으로 상속문제에 휩싸인,파리시내의 고택을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함.

 카미유 - 이 책의 주인공으로서, 천재적인 화가로서의 재능을 지녔으나,어떤 사건을 계기로 다시는 그림을 그릴 수 없을 것으로 여기고, 자기의 재능과는 전혀 상관없는 한밤중에 사무실 청소를 하는 청소부로 취직한다.어릴적 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는 자학적인 어머니를 둔 탓에,식욕을 잃고,큰 키에 깡마르고 죽지 않으려고 먹는 수준으로 먹고,주로 술과 담배로만 산다.자기 안의 상처를 마음속에 꼭꼭 가두고,꺼내려고 하지 않는 그녀.

프랑크 - 필리베르의 집에서 기거하는 요리사.어머니로부터 버림받은 이 사내는, 혈육이라곤 할머니 한 분 뿐...오토바이광이자,거친 말을 입에 달고 산다.사귀는 여자(살을 섞는 여자)들은 거의 싸구려티 나는 여인들이지만,  요리는 끝내주게 잘함.

 폴레트 - 프랑크의 할머니.사랑스러운 여인.남편이 죽은 프랑스의 어느 시골집에서 10년 전 집을 나가 거의 연락이 되지 않는 손자를 기다리며,혼자 시간을 보낸다. 원래는 정원일을 좋아하고, 동물들을 사랑했으나,약간의 치매와,곧잘 넘어지는 증상으로,자신의 그런 증상을 알게되면 양로원으로 보내질 것을 염려하여,푸른 멍을 감추기 위해 온 몸을 옷으로 감싸고 살던 할매.

 뱅상 - 뱅상을 다르게 발음하면 빈센트가 된다고 한다.카미유가 청소하던 사무실 청소함 뒤편에 몰래 살던 그는 마약중독자.어느날 카미유에게 자신의 존재를 들키고,카미유는 그를 자신이 살던 8층 옥탑방에 살도록 해준다. 그는 거기서 빈센트가 테오에게 보냈던 편지들로 구성된 카미유가 갖고 있던  책을 읽게 된다.

 굳이 이렇게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이유는,이들은 모두들 자신들을 사람들로부터 격리시킨,세상 속에 있지만,실상 그들과는 다른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사는 폐인들이었다는 걸 말하고 싶어서일거야.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고,망가져가는,될대로 되라는,바닥으로 꺼지고 있는 사람들이랄까.

 "내가 읽은 건,사람들 속에 들어가지 않으면,사람들이 나한테서 기대하는  존재가 되지 못하면고통을 받는다는 거예요.지독하게 고통을 겪다가 결국은 죽게 된다는 것이지요.그러면 안 되죠.난 그러게 죽지 않을 거예요.고흐에 대한 우정과 형제애를 생각해서라도 나는 죽지 않을 거예요……그러고 싶지 않아요."

어느날 카미유가 뱅상으로부터 들었던 말인데,이들은 어쩌면 직업적인,의무적인 기대 외에 자신에게 무언가를 기대할 사랑할 사람들을 갖고 있지 못하고 생각했던,그래서 죽어가던 인물이 이들이 아닌가 싶다.그런 사람들이 조금씩 손을 내밀고,같은 공간에 살면서,가족이 되는 것.필리베르,카미유,프랑크의 동거에서 시작해서,폴레트 할머니와의 합류...

'어찌 보면 이들이 이루고 있는 가족은 진짜 가족보다 나았다.자기들이 원해서 스스로 선택한 가족이기 때문이었다.그들은 이 가족을위해 고난을 무릅썼고,그 대가라고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오로지 함께 행복해지는 것뿐이었다.아니,행복한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그들은 이제 그렇게 까다롭지 않았다.함께 있을 수 있다면,그것만으로 족했다.함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감지덕지한 일이었다.'

 그들이 만남이 가져다 준것은 '무엇을 그리든 생생하게 살아 있는 모습으로 그리게 되리라'는 것처럼,서로에게 생생함,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존재들로 변모시킨다는 것이다.그리고 서로의 살아있는 그 사람만의 모습을 발견해 주는 것.

 결혼기념일을 맞은  사람에게 했던 말이 있다.

"예전에는 결혼기념일이 왜 중요한 줄 몰랐는데,이젠 알 것 같아요.그건 스스로 선택해서 만들어진 가정을 자축하는 거잖아."라고...

 혈연에 의한 가족이 아닌 함께있고 싶어서 만들어진 가족의 따뜻함을 안나 가발다는 그녀답게 잘 만들어냈다.카미유의 수많은 스케치들과 프랑크의 맛난 요리들처럼.

 "내가 너에게 온 것은 거기에서 훔쳐온 모든 것을 너에게 도둑맞기 위해서야."라고 합창하던 그들,너무나 행복해보이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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