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고대 - 아시아연대총서 5
이성시 지음, 박경희 옮김 / 삼인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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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현재 민족주의라는 상징기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 땅에서 '우리' 겨레의 부모에게서 '우리' 의 핏줄을 이어받은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우리' 에 속한다고 상식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또 학교에서 국사교육을 철저히 받고, 텔레비전에서 사극을 보는 '우리' 는 하얀 옷을 입고 점잖은 옛날 말을 쓰던 '그 때 그 사람들' 을 '우리' 가 당연히 계승하고 있다고 의식한다.'우리' 의 상상 속에서 그들과 '우리' 는 시간을 초월하여 하나의 '우리' 의 영역을 이룬다. 하지만 이 같은 우리의 상식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자의적인 판단에 의한 허구에 불과하다. 다만 우리의 머릿 속에 너무나도 강하게 박혀 있어 한 번도 도마에 올려 의심을 해 보지 못한 것 뿐이다. 이처럼 우리를 상징적 수단으로 묶어주는 '민족주의' 는 원래부터 있어온 것도, 밑에서부터 우러나온 새로운 개념도 아니다. 식민지 시대의 민족주의 지식인 그룹에 의해, 또는 분단 이후의 남북한 정권에 의해 교육제도나 매체를 통해 주입되어 온 것들이다. 이 때문에 이같은 민족주의적인 담론은 민족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한 때인 우리나라의 고대사를 민족, 민족주의일색으로 페인트칠 해버린다. 더구나 고대사의 문제는 우리가 과거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 어려운 만큼 '민족주의화'하기에 매우 적합한 소재다.

재일한국인 2세이자, 고대 동아시아사 전문가인 이성시교수는 바로 이같은 점에 주목했다. 그는 동아시아 각국이 자신의 근대 민족국가의 국민을 형성하기 위한 정치적 의지를 고대사에 투사하고 있고 이것은 고대사에 대한 왜곡된 이해를 낳게 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각국의 역사가들은 자기 나라들이 현재 처한 상황을 고대사에 투사하여 그것을 특정한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알고 있는 '민족'이라는 것의 실체가 실은 근대 이후에 비로소 정립되었다는 점에서 현재 한국사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사의 여러 부분이 매우 근대적인 성격을 띠고 있음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저자는 서두에서 일본의 역사는 서양인을 의식해 존재해왔고 우리나라의 역사는 일본을 의식하면서 존재해왔다고 이야기한다. 일본의 최초 교과서인 국사안의 원형이 파리박람회의 요청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우리나라의 역사 또한 일본 민족에 대한 한민족의 우월성을 고대사 속에서 찾는 것으로 역사연구가 이루어져 왔다. 이렇게 출발한 근대 동아시아의 역사는 '만들어진 고대'의 발단이 되어 온 것이다. 그것은 자국의 민족사 개념을 뛰어넘는, 만들어진 일국사를 뛰어넘는'대동아시아 세계'의 구상이다. 중국과 한국, 베트남, 일본은 한자, 유교 등을 공유하면서 동일한 세계를 형성하여 왔으므로 이를 한 범주로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대동아공영권과 같은 일본 중심의 세계관이나 책봉, 조공관계와 같은 중국 중심의 세계관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하나의 세계이면서도 각자의 독자성이 강조되는 역사관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결론은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식의 따분한 결론에 다름 아니다. 저자는 서술 초기부터 계속 재일 한국인 2세로서의 중립적인 태도, 역사학자로서의 비교적 상식적이고 객관적인 모습을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대의 본 모습을 제대로 밝혀내지는 못한다. 단순히 현재 그러한 각국의 역사해석방법을 나열식으로 제시하는데에만 그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또한 저자는 일국사의 민족주의적 역사서술에서 벗어나야 '진실'을 볼 수 있다는 다소 당연하다 볼 수 있는 입장에서 담담히 글을 써내려가고 있다. 때문에 이 책의 내용이 신선하게 다가오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지금까지 우리가 가졌던 민족주의적 역사 인식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도와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여러 견해와 학설들을 통해 우리가 중고등학교에서 배워온 역사가 한쪽으로 치우친 것임을 느끼게 해주고 새로운 역사 인식의 필요성을 주지시켜 주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상반된 역사해석으로 외교마찰이 심화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다시금 곱씹어 볼 문제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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