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숨나기 작가님을 [누군가 그 바늘의 행방을 알거든] 으로 처음 접했어요. 그래서인지, 바늘의 행방 정로도 피폐한 것 같으면서도 그 이상으로 절절한 사랑이 담긴 르웰린 씨와 셰본의 이야기를 부담 없이, 막히는 부분 없이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커뮤니티 등지에서 무척 유명하고 호평을 받는 소설임을 떠나서도, 숨나기 작가님의 글이라는 것만으로도 살인마 르웰린 씨와 만날 이유는 충분하지요. 충분히 주어지지 않은 정보를 가지고 갈등하고 긴장하며 발버둥치는 셰본와, 그런 셰본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자신의 의지대로 유인해오는 르웰린의 관계가 일품인 소설입니다. 물론 르웰린은 이미 처음부터, 과거의 과거에서부터 셰본을 사랑해왔고, 그것은 셰본 또한 마찬가지랍니다.
초반부가, 지루하거나 안 맞을 수 있어요. 셰본에게서 매력을 느끼지 못해 중도에 하차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몹시도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게 읽은 제 입장에서는 단 한 번만이라도 다시 시도해보시라고 뜯어말리고 싶어요. 미스테리와 서스펜스로 촘촘히 짜여진 숨나기 작가님의 글인데, 어떻게 초반부의 모습만을 보고서 인물을 판단할 수 있을까요. 차마 제 입으로는 꺼내지 못할 반전이 셰본의 안에 잠들어 있답니다. '누구보다' 라는 표현은 감히 사용하지 못하겠지만, 이미 충분히 정의롭고, 다정하며, 사려깊은데다, 인간적이고, 굳센 사람임을 부디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3권의 외전까지 직접 읽으시면서요.
제가 대체 어디까지 말해야 스포이고 스포가 아닐까요. 르웰린 씨는 정말 서스펜스 스릴러 로맨스인 만큼 스포를 보시면 안돼요. 진심으로요. 전말을 다 알고 읽는 셜록 홈즈만큼 지루한 게 없는 것처럼요. 르웰린 씨가 셰본을 사랑한다는 명제는 스포가 아닌데, 르웰린의 모든 게 셰본이라는 사실은 안타깝게도 스포가 되어버리네요ㅠ 물론 제 글을 보실 예비 독자님께선 당장은 이해하지 못하시겠지만요. 그래도, 제 욕심일지도 모르지만 예비 독자님께서 이후에 [살인마 르웰린씨의 낭만적인 정찬]을 읽는 데 있어 조금이라도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직접 르웰린의 모든 행동과, 기억과, 트라우마를 돌이켜보며 이후 천천히 밝혀질 진실과 직접 대조해보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그래도 너무...어떻게든 설명해드리고 싶으니까 두루뭉실하게 말을 꺼내볼게요. 초반부의 셰본은 어째서 르웰린을 좋아하냐는 물음에 "좋아할 만 해서요." 라는 대답을 꺼내놓습니다. 르웰린은 동일한 질문에 "좋아할 수밖에 없어서요." 라는 대답을 내놓고요. 물론 둘의 감정 사이에는 외부 세력의 불가피하고도 강압적인 간섭이 존재하지만, 어쨌든 둘의 온도가 다른 건 사실이며, [살인마 르웰린 씨의 낭만적인 정찬]은 둘의 감정을 원래대로, 동일한 선상으로 돌려놓는 여정을 그립니다. 빈민가에서 대필 작가로 근근히 먹고살던, 희망과 행복이라고는 알지 못하던 셰본이 '르웰린'이 제 인생의 유일하고도 가장 큰 행복임을 깨달아가는 여정이기도 하고. 살인마 르웰린이 이미 한번 무너져버린 자신의 세상을, 사랑이라는 아교로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나가는 여정이기도 합니다. 둘은 모두 깨지고 부서진, 상처 입은 '사람'이지만 서로를 도닥이고 보듬어주며 구원해줍니다. 둘은, 연인의 존재 자체가 구원이자 희망이며 동시에 행복일 거예요. 왜냐하면 둘은 서로를 위해 아주 많은 것들을 희생하였고, 그에 대해 후회하지 않을 만큼 서로를 사랑하니까요.
리뷰를 마무리짓는 건 언제나 어렵네요. 어떤 말씀을 드려야 예비 독자님의 르웰린의 정찬을 맛볼 용기를 내실까요. 둘은, 서로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굳건하게 닫힌, 온전한 해피엔딩입니다. 이 분명한 진리 하나만을 믿고서 도전해주시면 안될까요. 물론 읽을지 말지는 예비 독자님의 선택이실테지만 이미 읽은 사람으로서는, 조금이라도 더 추천하고 싶은 마음뿐이네요.
;) 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