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BL] 해피 엔드(HAPPY END) 1 [BL] 해피 엔드 1
안온 지음 / B&M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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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문장으로 리뷰를 시작해야 할까요. 꺼내고 싶은 말은 한가득인데 이리저리 뒤엉켜버려서 한 가닥 꺼내기도 힘드네요.


어디선가 달칵 멈춰 서 눈이라도 마주칠 수 있도록. 시간에 못을 박아 걸어 놓아요, 내 사랑.


해피 엔드에서 가장 인상 깊고도 사랑이 가득한 부분을 고르라면 역시 저 문장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원이를 향한 재연이의 운명도, 인연도 뛰어넘은 사랑이 버겁게 들어찬 문장이에요. 이미 사라져,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든 멈춰 서서 기다려준다던 약속을 지키러 와 준 재연이. 이미 윤회의 굴레에 섞여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사랑을 잊지 못하는 원이. 둘은 이제 서로를 영영 볼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지만 그럼에도 언제든 서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새드엔딩이라고도 말 할 수 있는 결말이 꽉 닫힌 해피 엔딩으로밖에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역시 재연이와 이원이의 사랑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확고하고 단단하기 때문일까요.


안온 작가님의 해피 엔드 는 외전에서부터 시작하고 외전에서 끝납니다. 외전이 중요하다는 관용구로써 이해해도 괜찮지만, 문장 그대로 이원이의 시작과 끝이 전부 외전에 담겨있다는 말씀도 드리고 싶어요. 책을 사기 전에 두엇 읽어본 리뷰들이 모두 외전을 위한 소설이라고 설명하던데 완독한 지금에서야 그 의미를 깨닫네요. 이원이의 전생의 전생의 전생의…둘의 사랑이 시작된 어느 한 순간과, 모든 역경을 딛고 일어서 결국은 서로를 끌어 안은 현생의 어느 날과, 이제는 완전히 헤어져버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제가 되어 서로를 만날 수 있는 내세의 어느 날. 시간과 공간은 물론 존재 자체도 뛰어넘어 서로를 사랑하는 둘 이상으로 진실한 참사랑을 제가 살면서 다시 볼 수 있을까요.


사실 외전을 읽으면서는 어느정도 화가 나기도 했어요. 재연이와 이원이는 사랑을 하지만 그러한 재연이의 근원은 미숙하고도 어리숙한 한 신의 감정이니까요. 영보천존, 이명으로는 상청을 가진 최고신. 이 모든 고통과 절망과, 사랑과, 희망의 밑바탕이 된 존재는 인간을 싫어했지만 동시에 인간을 닮았습니다. 자신밖에 알지 못하고 이기적이면서도 잔인합니다. 아집으로 똘똘 뭉쳐 자신을 관조하기는커녕 모르는 척만 하다가, 뒤늦게 후회한 주제에 또다시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그 결과물에게 질투와 증오를 쏟아냅니다. 물론 누구나 처음부터 완전할 수는 없지요. 시행착오도 거치고 실패의 고배도 맛보면서 점차 완성되어가는 게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그러한 과정이 「신이란 완전하여, 타인이 그리 필요치 않은 법이지.」라며 스스로를 서술한 존재에게도 적용된다면. 이 이상으로 우습고 멍청한 자만심이 또 어디 있을까요.


기저에 이러한 배경이 있음을 떠올릴 때 저는 재연이와 이원이의 모든 고통이 어리석은 한 신의 과오에서부터 시작되었음에 무척이나 분노했지만 동시에 그러한 과오가 있었기에 둘은 사랑할 수 있었음을 생각하며 안도를 했습니다. 존엄하지만 동시에 우둔한 신이 자신의 감정을 도려내어 인세에 버렸기에 재연이는 태어나고, 이원이를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연인을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니. 안타까운 동시에 얼마나 낭만적인지.


따지고 본다면 사랑의 시초에는 원시천존의 개입이 있었으니 원이는 그저 피해자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저는 그닥 동의하지 않습니다. 신계에서 살아갈 때 수많은 신들이 둘을 말렸으나 후회할 것을 앎에도 자비에 기대겠다, 저만을 사랑해 줄 사람을 찾겠다, 그리 말한 것은 원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보다도 사랑에 목마른 존재예요. 외로움에 사랑을 갈구하였기에 원시천존을 사랑했고, 천존에게 상처받아 소멸할 때에도 "그깟 하늘의 연따위 무시하고 목숨을 바쳐 저를 사랑해 주는 자를 만날 것입니다. 사랑에 미쳐 천륜도 인덕과 규율도 모두 어기는 자를 선택하겠습니다." 라는 소망을 말했겠지요.


작품 내내 보이는 재연이의 비정상적일 만큼 맹목적인 사랑은 그러한 이원이의 기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청의 일부분인 재연이가 원이의 소망을 기억해내었든, 아니면 유일하게 하나 있었던 정인의 기원이 상청의 영혼까지 스며들어 본능적으로 그리 하였든 말이에요. 실제로 재연이는 모든 복록, 천륜, 규율과 그 자신까지 불태워 이원이를 사랑합니다. 시간을 돌리고 또 돌려가여 이원이를 사랑합니다. 몇 번이고 다시 연소하는 불꽃이라 하여 재연이라고 했습니다. 이보다 더 어울리는 이름이 있을까요.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을 어느 정도 말했으니 이제는 작품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요. 저는 오컬트와 고어, 호러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해피 엔드를 몹시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본문에서 얼핏 드러나는 교도소의 생활과 조폭과 같이 음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물론이요, 그저 귀신이 나온다, 정도의 가벼운 비중이 아닌, 신들의 세계를 본위에 둔 현대판타지 BL이 또 얼마나 있을까요. 십이지신이 등장하고, 기괴하게 일그러진 귀신들이 등장하고, 중국 신화의 괴물들, 불교의 신앙과 경전, 반야심경과 논어와 시경에서 인용한 구절까지. 문장마다 상세하고 다채롭게 배어나오는 도교색을 바라보며 작가님께서 얼마나 작품에 애정을 쏟으며 준비하고 집필히셨는지 엿보는 기분에 몇 번이고 설렜습니다. 정말이에요. 제가 이런 칭찬을 자주 사용하기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고증에 충실하고 노력을 쏟아부은 작품은 한 손 안에 듭니다. 특히나 이런 분야는 평범한 사람들이 알기 힘든 분야니까, 노력이 더더욱 도드라져요.


이런 실지 같은 용어와 배경에 음울한 분위기의 문체까지 더해지니 독자는 속절없이 빠져들 수밖에 없습니다. 아, 제가 감히 무슨 말을 덧붙여야 할까요? 작품 속에 녹아든 작가님의 철학을 논할까요. 아니면, 아주 오래 전, 상청으로서 이원이를 사랑하던 때 저질렀던 잘못을 재연이가 되어 일일이 속죄하던 부분을 구구절절 늘어놓을까요. 누가 어떻게 바라보든 이원이와 재연이는 지극히 아름답고도 고통스러운 사랑을 하고 있으며, 새드 엔딩과 해피 엔딩을 좋아하는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내용과 결말을 가집니다. 작품의 토대이자 살을 이루는 도교를 받아들일 여유만 있다면 절대 실패하지 않을 소설이에요.



"그럼 형은 다음 생에도, 그 다음 생에도 나를 사랑하려고 할 걸요. 나는 형의 다름 생에도, 그 다음 생에도 없을 텐데…."


이런 말을 하면서 이원이가 자신을 사랑할 수조차 없게 만들어 버린 재연이를, 그러한 모든 방해와 장애물을 전부 뛰어넘어 결국 재연이를 사랑해낸 이원이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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