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BL] 눈가리기 [BL] 눈가리기 1
이미누 지음 / 시크노블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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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지 않은 둘이서 평범하지 않은 사랑을 하는 게 좋아요

이미누 작가님은 종종 아픈 채로 사는 게 뭐 어떤가. 형태가 무엇이든 본인이 만족하면 그만. 과 같은 의미를 보여주시는데 그런 점이 좋아요. 메리배드엔딩이라던가.사실 당사자들만 좋다면 타인의 시선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니까.

작가님깨서는 어딘가 비틀려있는 인물을 너무 잘 사용하셔요. 그것이 세계든, 사람 자체든, 무엇이든요. 무척이나 매력적이야. 물론 다른 인물 또한 흠잡을 데 없지만 작가님께서 그리는 결함있는 인물이 너무도 압도적이어서 그쪽이 상대적으로 두드러지는 건 어쩔 수 없네요....예전에 만화랑 소설로 연재하셨던 작품의 미누(작가님 아님)도 그렇고, 우평인의 민욱이도 그렇고, 청춘만가의 창현이도, 어용트의 노원이와 데미안도. 특히 눈가리기는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 셋이 전부 어딘가 망가져있는데, 누구 하나가 너무 도드라지는 일 없이 중심을 잘 잡아주셔서 읽는데 불편하지도 않았고 스토리도 깔끔하게 흘러갔어요.

그리고 특히나 더 좋은 게, 두 번째 문단에서도 한 번 언급한 내용이지만. 작가님께서든 망가져버린 사람이 천천히 느리지만 자신의 상처를 고쳐나가는 인물도 보여주시지만 동시에 조금 이상하면 어때. 나는 이 상태가 좋은걸. 하는 인물들도 보여주시거든요. 저로서는 그게 너무나도 좋아요. 솔직히 거의 대다수의 소설들이 인물에게 상처를 주고, 그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그려내잖아요? 이렇게 등장인물이 자신의 상태에 대해 속속들이 다 알면서도(해원:잠깐의 불안장애일 뿐이야/경험상 여기가 제일 외지더라고) 그저 현상유지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워 하는 내용은 찾기 어렵고요. 현실의 사람들은 상처를 치유하는데 성공하는 경우가 더 드무니까, 그래서 더욱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비극적인 상황 묘사를 너무 잘 하셔서 좋아요. 아, 좋은 점이 너무 많아서 큰일이다. 눈가리기에서 또한 작가님의 장점이 두드러지는데, 예를 하나 들어보자면. 정윤이의 눈 앞에서, 텔레비전 속에서는 정윤이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늘어놓는 가혹한 추측들이 오가고 있는데, 정작 본인만이 알아듣지 못하고 있는 장면이 얼마나 가슴아픈지. 해원이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가소롭다는 듯이 자신을 서술하고 아주 자연스럽게 말로 자학을 하거든요. 당사자도 작가님도 별 거 아닌 사소한 일인 양 아주 간소한 관심만 얹어놓았다가 지나쳐버리는데 반면에 독자는 그러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그 짧은 장면에서 북받혀오르는 감정에 목이 매여요. 몇 자 되지 않는, 이북 두 페이지도 겨우 채울만한 분량으로 그런 느낌을 만들어내기가 얼마나 어려울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데, 작가님께서는 그걸 해내셔서.

그리고 작가님은 그저 대사만으로도 캐릭터성을 잘 살리셔요.

정신이 온전치 못한 인물은 어찌 보면 쓰기 쉽다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그러한 사람들이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반응할지 짐작하기가 쉽지 않으니 다루기 용이하지 않거든요. 동시에 그 인물의 시점을 보여줄 수도 없으니 오로지 외부에서 바라보는 모습만을 보여줄 수 있는데 말이에요. 정윤이가 과거에 어떤 상처를 받아왔는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는지 고작 어린아이 수준의 언어구사력을 통해 표현해내다니 정말 대단했어요.

그리고 속된 말로 돌려깐다고 해야하나....작품에서 완전히 악인으로 나온 준석이를 생각해볼까요. 준석에 대한 서술도 전체적으로 부정적이고 냉소적인데 추가해 준석이 하는 말 자체도 우스꽝스러워서. 돌려깐다기보다는 그냥 대놓고 비판....아니 비난하고 희화화한다고 하는 게 어울리겠네요. 쏟아내는 대사마다 죄 모순만이 가득하고. 정윤이를 위한다는 알량한 변명의 기저에 어떤 심리가 깔려있는지. 너무 낱낱이 드러내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숨김없이 보여주셔서 오히려 더더욱 비웃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우리 해원이는 말 하나, 생각 하나 모두 상처입었던
과거에 붙잡혀있는데 그러한 사실을 그 본인 또한 자각하고 있으며 당사자가 선택한 삶이라는 게 너무나 뚜렷하게 보여요. 침대맡 탁자에 있는 액자도 그렇고, 아직도 왜 좋은지 이해하지조차 못하면서 브레스 컨트롤을 당하는 면도 그렇고. 불안 증세와 호흡곤란이 온다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먼저 차에 타는 것까지. 또한 자기혐오와 자기학대가 숨쉬듯이 익숙한 사람이지요. 뭐든지 가능하면 자신의 상처와 연결짓고, 당연하리만치 이전에 가해자들이 자신에게 저지른 폭행과 관련짓는. 신기한 동시에 안타까우며 또한 만족스러웠어요. 해원이와 같은 인물은 잘 없는데다가, 제가 그런 인물을 좋아하는 게 죄는 아니니까요. 보통 이런 인물은 자기연민에 빠지기 쉬운데 해원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객관적인 시선과 말투를 유지했거든요. 울어야 할 상황에서 당사자가
울지 않으니 그 모습을 본 독자가 울어버린다고 설명해야하나...정말 대사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말씀드리고 공감받고 싶은데 그러질 못해서 너무 아쉽네요.

“과거를 극복하고, 스스로를 인정하고, 사랑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그런 건 여건이 되는 사람들이나 하면 돼. 그게 안 되는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살아가면 충분해.”
해원이가 한 말인데 몹사도 인상깊었어요. 세상에, 제가 이런 뉘앙스의 말을 이 짧은 리뷰에서 대체 몇 번을 하는지 모르겠네요. 어쩌면 제게 위안이 되어주었기 때문일지도.



작가님께서 [눈가리기]를 제목으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해원이는 정윤이가, 자신과는 달리 모른 척 상처를 외면할 수 있다고 말했어요. 정윤이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안도를 했으며 정윤이가 눈앞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자해 없이 자신이 망가져있음을 인지할 수 있다고 했어요. 그런 사람에게 있어, 9챕터에서 단 하나 있는 안대로 정윤이의 눈을 가려, 상처가 사라져 평온을 되찾은 정윤이의 모습은 어떤 위안으로 다가왔을까요.
근본적인 치유는 될 수 없지만 증상 정도는 완화되는 대리만족 정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반드시 앞으로 나아가고 원래대로 돌아와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니 알량하지만 충분한 `눈가리기` 가 해원이에게는 만족스러운 결말이 되겠네요. 비록 자신의 눈이 아닌 정윤이의 눈을 가렸을지라도요.
정윤이에게도 만족스러운 엔딩이 될 거예요. 사실 정윤이는 자신의 눈이 가려졌는지 안 가려졌는지 분간조차 하지 못할 것 같지만...해원이의 기분이 좋고, 함께 있고싶은 사람인 해원이의 곁에 있을 수 있다면 뭐든 괜찮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둘의 종착지는 끝까지 구원이 아닌 현상유지겠지만, 동시에 둘 모두 만족하는 해피엔딩이 되겠네요. 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좋아. 덧붙여 이 책은 제목부터가 무척이나 뚜렷한 스포인 것도 깨알같이 웃겨요. 비록 끝까지 읽어야 눈치채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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