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과 새와 관 짜는 노인
마틸다 우즈 지음, 아누스카 아예푸스 그림, 김래경 옮김 / 양철북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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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대부분이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지내는 코로나 시대, 어른들의 슬픈 마음과 어린이들의 무겁고 답답한 마음에 큰 위로가 될 만한 이야기. 초등학교 고학년용 책이라고 되어 있지만 청소년소설로도 무리가 없고, 저와 같은 성인이 읽어도 될 만큼 완성도가 뛰어난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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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은 자연사
탁수정 지음 / Lik-it(라이킷)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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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감히 하지 못하는 말을 하는 사람. 아무도 선뜻 가려 하지 않는 곳에 가장 먼저 달려가 피해자들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과 함께하는 사람. 트위터에서 본 그는 단단한 투사였다. 그런 그에게 이렇게 아기자기, 알콩달콩한 면이 있었다니 놀랍고, 읽는 동안 내내 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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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부수는 문학들 -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읽는 한국 현대문학사
권보드래 외 12인 지음 / 민음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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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토대가 되는 기획강의를 꼭 듣고 싶었는데 듣지 못했다가 이번에 책으로 만나게 되었다.


그러니까, 2016년쯤이었던 것 같다. 페미니즘 리부트가 이루어지고, 각성한 여성독자들이 한창 '페미니즘+문학'에 목말라 있었을 때. 여성작가들이 새로운 여성서사를 막 내놓기 시작했을 때. 주위에선 '그러면 지금까지 한국문학의 이런 남성중심성에 대한 비판은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가. 페미니즘 비평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궁금증의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새로운 여성주의 시각으로 각성은 했는데, 문학 전공자도 아니고 아무래도 비평보다는 창작물을 먼저 찾아 읽어왔던 친구들이 페미니즘 비평에 대한 목마름을 표시했던 것이다. '글쎄, 있었겠지. 없었을 리가 있나. 우리가 무지해서겠지' 했지만 연구자도 학생도 아닌 터라 무엇을 어디서부터 찾아 읽어야 할지 몰랐던 건 나나 친구들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책을 펼쳐보니 역시, 있었다. 반갑고 간절한 마음으로 나의 무지를 깨달아 새로고침한다.


대충은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책의 여러 부분이 충격적이었다. 심진경의 글에 나오는 '모델소설'이라는 장르의 존재를 작년에 처음으로 알게 되었을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에 휩싸였었다. 문단의 여성 작가들을 폄하하다 못해 그들의 성폭력 경험을 왜곡한 서사를 아예 장르로 만들어버리다니. 그야말로 글로 하는 2차 가해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그게 다름아닌 문단에서 일어난 일이라니. 너무나 기막힌 일인데, 지금까지의 문단을 생각해보면 딱히 놀랄 일도 아니다 싶었다. 그런데 이 책의 곳곳에 드러난 자료들이 여성과 여성 작가의 문학들을 둘러싼 문학계 안팎의 혐오의 시선들을 또 다시 너무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김승옥과 조세희의 '정전'들이 남성의 각성과 그들이 추구하는 대의를 표현하기 위해 어떻게 여성을 희생제물로 삼았는가, '문학소녀'로 일컬어졌던 여성들에 대한 지독한 비하의 시선은 어떻게 남성들을 넘어 여성들 자신에게까지 내면화되었는가.


허윤의 글은 염상섭과 손창섭의 작품들을 '건실한 남성 가부장'의 역할에서 벗어난 '퀴어한 남성 서사'로 읽는다는 점이 새롭고 흥미로웠다. 그리고 이것이 현재 한국 남성들의 지배적인 특징인 '식민지 남성성'과 어떤 점에서 같고 또 다른지에 대한 부가적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루이제 린저에 관한 김미정의 글은 읽으면서 너무도 마음이 복잡했다. 독자들이 폭발적으로 지지를 하니 방한까지 청해 루이제 린저를 데려와놓고 그에 대한 언급을 일부러 쏙 뺀 독일문학사 연구 발표를 하고, 거기에 더해 한국문학계에서 언급하기엔 너무 위험하고 급진적이었던 그녀의 문학에서 '여성'이라는 말을 지우고 애써 '인간' '휴머니즘'으로 포장한다. 1990년대 여성작가들의 후일담 문학을 다룬 김은하의 글도 읽으면서 심란하기는 마찬가지였더랬다. 80년대, 진보적 문학의 대의를 만나 자신의 여성으로서의 일상성과 욕망을 자의든 타의든 포기하거나 은폐하고 삭제해야 했던 여성 작가들이 훗날 그 시절을 소환하며 한없이 고통스러운 진정성의 자학을 계속하거나, 반대로 기이한 권태에 빠진 내면을 그대로 자신의 작품에 드러냈다는 것, 시대에 봉사하기 위해 여성을 지우라는 사회의 압력 속에 문학과 글쓰기 자체도 포함되어 겹겹의 검열과 고통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는 이야기에 생각이 많아졌다. 글쓰기가 여성에게 자유와 해방을 가져다줄 수 있는 한 가지 중요한 방법이라 생각했는데, 그것이 도리어 족쇄가 되어 여성성을 짓누른다면 우리는 어떻게 글을 쓰고 또 우리 자신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결코 여성이 그 자신으로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탐탁지 않아했던 문학계의 분위기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흔히 '젊다'고 표현되는 남성 작가들은 자신들의 무능함과 권태와 찌질함과 타락과 방종과 심지어는 폭력까지도 서슴지 않고 작품에 표현하고 승인받는데, 여성 작가들은 어떤가. 게으르고 더럽고 무능하고 비열하며 고민도 없고 폭력적인 욕망을 지닌 여성 인물들이 여성 작가들의 작품에 등장한 적 자체가 지금껏 드물지 않은가. 


책을 읽으며 내내 '이 부분을 하나하나 따로따로 깊이 공부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신여성이 등장한 시대부터의 '여성-한국문학-비평'의 계보가 차근차근 정리되는 느낌이었고, 말미에는 이 기획강좌와 책을 가능하게 했던 기획자 오혜진 평론가의 힘있는 글이 만만찮은 울림을 준다. 페미니즘 리부트와 함께 여성주의와 퀴어문학이 새로운 흐름으로 등장하자, 문단의 남성 평론가들이 일제히 '문학은 정치적 올바름을 자랑하는 트위터가 아니다', '페미니즘과 퀴어문학은 내용은 새로울지언정 형식적으로는 퇴보다. 그동안 한국문학이 그토록 공들여 해왔던 서사에서의 낯설게 하기 전략을 완전히 무용지물로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며 비평 안팎에서 못마땅해 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을 보며, 적잖이 징후적이라고 생각했다. 여성이 여성 자신의 이야기를 하겠다는데 그것을 애써 윤리적 강박이자 문학적으로 덜 떨어진 무언가로 치부하며, 생활의 구석구석까지 스며든 남성사회의 폭력을 도저히 괄호 치거나 없는 셈 칠 수 없어 작품에 자연히 스며나오는 것을 '피해자 코스프레'이자 도덕적 우월성을 확보하기 위한 값싼 전략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을, 나는 보았고 지금도 보고 있다. 이런 상황을 지적하고 넘어가는 여성 연구자/평론가들이 있어 참으로 고맙고 다행스러운 마음이다. 한편으론 이런 시대에 '형식상의 새롭지 않음' 정도를 굳이 지적할 수 있는 남성들의 한가한 권력이 참 부럽기도 하지만, 여성 작가와 독자들이 앞으로는 이런 목소리에 굳이 신경쓰지 않고 내고 싶은 목소리를 마음껏 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여성들이 여성으로 다시 태어나 새로운 서사를 쓰는 것을 그렇게 폄하하고 싶은가. 마음대로 하라. 당신들에게 이것은 그저 '한때의 유행'이자 '정신 나간 도덕적 강박'에 불과할지 모른다. 새로운 여성 서사들이 미학적으로 완벽하지 않다고, 속도가 느리다고 흠집을 잡고 싶은가. 그렇다면 그렇게 하라. 그러나 우리에게 이것은 환골탈태다. 여성 작가와 독자들은 뼈를 갈고 피를 새로운 것으로 만들어내고 전혀 다른 욕망을 탐구하면서 몸의 근본부터 바꾸는 싸움을 하고 있다. 이것은 단지 소재를 갈고 시대에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시대와 정면으로 맞부딪치면서 미학의 기준 자체를 바꾸는 싸움이다. 우리에게 당신들의 평가와 만족과 승인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이 책이 세상에 나왔다는 사실이 무척 기쁘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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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셔의 손 - 2017년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
김백상 지음 / 허블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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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랜만에 sf를 읽어선지 촉촉하면서도 계속 머리를 쓰게 만드는 특유의 감각으로 젖어 읽는 내내 즐거웠다.

전뇌라는 건 sf 팬이나 창작을 꿈꾸는 이라면 한번쯤 창작의 모티프로 삼아보고 싶을 만한 소재다. 특히 나의 뇌가 타인의 전뇌와 연결되었을 때 어떤 식으로 동기화가 이루어지는가.. 를 나도 나 나름대로 시각화해 상상해 본 적이 있다. 아주 옛날, 아이팟을 pc에 연결해 아이튠즈 음악을 동기화할 때처럼 이쪽과 저쪽의 균형이 맞춰지며 동기화가 이루어지는 모습을 그려보긴 했지만 구체적으로 그걸 이야기로 상상해 본 적은 없는데, 이 작품에선 그 장면의 이미지화에 기이한 천재 화가 m.c. 에셔의 그림이 전면으로 쓰인다. sf와 에셔라니, 참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그리고 에셔의 거의 모든 작품에서 드러나는 폐쇄적이면서도 마술적인 이미지처럼, 이 작품은 구조 전체가 여러 갈래의 서사들이 서로를 참조하고 맞물리면서 닮아가는 독특한 형태로 짜여 있다. 작품 전반에 쓰인 논리와 사유와 연구의 밀도도 상당히 높다. 이를테면 의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식욕과 성욕에 대해 다소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기 때문에 머리와 몸통 부분만 빼고 팔다리를 의체로 바꾸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경우 인간은 어떤 형태의 음식을 먹게 될 것인가에 대한 고찰이라든가, 팔다리가 높은 출력을 내면 척추가 지탱하기 어려워 척추보호용 외골격을 사용해야 한다는 설정 같은 것은 제법 현실감이 있었다. 

다만 여러 독자들이 지적한 대로, 여러 인물들이 모두 1인칭으로 제각기 서사를 펼치는 까닭에 다소 혼란스러운 감이 있다. 결말 부분에서 서사가 급하게 진행되어 대체 문제가 어떻게 해결된 것인지를 한번에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사건의 흥미로움에 비해 ('수연'을 제외하고) 인물들의 인간적 동기와 배경이 다소 약한 느낌이다. 이를테면, 김진은 대체 왜...? 마리는 대체 어째서...? 그리고 가장 수수께끼에 둘러싸여 있는 '섭리'는 대체 어떤 삶을 살아왔기에...? 이런 궁금증들이 여전히 남는데, 이건 그리 작은 의문들은 아닌 것 같다.

어째서 사건의 핵심에 등장하는 시가 이육사의 시인 것일까, 의식의 지평선을 넘어가버린다는 것은 무의식이 옮아버린다는 것을 뜻할 텐데, 그것은 혼돈 이상의 심각한 의미가 있는 일 아닐까, 인간이 타인의 무의식에 감염된다는 것은 말이다. 또한 가장 궁극적으로, 지우는 손은 왜, 기억을 지우는가...... 어떤 의도로? 이런 궁금함. 빠르게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니 조금씩 더 깊이 건드려줄 수 있는 부분들을 급하게 지나가버린 것 같아 약간 아쉽다. 

물론, 인간의 싱싱한 뇌가 가방에 담겨 바닥에 놓여 있고, 몇 페이지가 지나면 그 뇌의 주인이 곧바로 등장해 유쾌한 대화를 이어가는 식의 박진감 있는 전개를 한국 소설에서 찾아보기에는 정말 어렵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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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나라 - 오래된 미래에서 페미니스트의 안식처를 찾다
추 와이홍 지음, 이민경 옮김 / 흐름출판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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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전적으로 번역자인 이민경 작가님 때문이었다. "가부장제의 바깥을 들여와 소개하겠다"는 작가님의 말씀을 어딘가에서 읽었고 그게 바로 이 책이란 걸 알게 되었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흥미롭고 신기했다. 그리고 더 많은 질문들이 남았다.

나는 사실, 가모장제가 가부장제의 문제점에 대한 궁극적 해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남성이 여성으로 성별이 바뀌어도 여전히 가모'장'이라는 가족의 중심점이자 권력의 집중점은 있기 때문. 그리고 나는 억압이나 권력의 남용 같은 온갖 문제들의 근원이 '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아무런 '장'도 없이 모든 구성원이 평등하게 존중받는 가족은 있을 수 없는 것인가 하는 궁금함. 그리고 핏줄로 이어진 관계에서 생기기 마련인, 애정을 위시한 소유욕과 집착, 관심을 빙자한 통제욕구와 간섭 같은 문제들이 가부장에서 가모장제로 바뀐다고 해결될까? 하는 궁금증도 있었다. 이를테면, 현재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딸들이 (여전히) 부모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결혼이라는 차악을 택하는가.

모쒀인들은 오직 어머니의 핏줄로만 이어지는 모계 가족을 꾸리며 아이가 태어나도 생물학적 아버지는 가족에 속하지도 않을뿐더러 아무런 의무도 권리도 책임도 갖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은 아이에 대해 여러 선택지를 갖는데 그냥 남처럼 데면데면하게 지낼 수도, 무언가를 정기적으로 챙겨 주며 자식으로 대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머니와 그 아이들, 그 아이들 중에 딸들이 낳은 아이들... 이렇게 이어지며 한 집에 모여 사는 이 모계 가족에서 가족 구성원, 특히 아이들은 행복할까 하는 궁금증도 생겼다. 아이가 성인이 되면 자연스레 독립을 하여 자신만의 공간에서 삶을 꾸려나가고 싶어지는 것이 본성이고 그것이 제대로 된 삶이라고 나는 생각해 왔던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 책에도 명확한 답이 드러나 있지는 않았다. 다만, 모쒀인 공동체에서는 집안의 어른이 어린아이를 대할 때에도 한 사람으로 온전히 존중하며,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동등하게 존중한다는(여성이 공동체의 중심이라 하여 남성들이 차별이나 멸시, 비하를 받지 않는다는 언급이 있었다. 남성들에게는 남성들의 역할이 있고, 가부장제 하에서의 여성들처럼 그렇게 천대받는 것은 아니라고. 그것이 무척 신기하기도 했고, 역시 여성은 남성보다 근본적으로 평등과 민주적인 관계를 지향하는 더 나은 존재들이 아닌가 싶기도.) 언급이 있었다. 이 부분은 무척 바람직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모쒀인 남성들이 대체로 마마보이적인 성향을 보인다는 부분이 흥미로우면서 마음에 걸리기도 했다. 성별을 떠나, 다 큰 어른이 되어도 동반자를 구하고 집중하기보다 어머니의 집에서 어머니의 일을 돕느라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한 인간의 성숙이라는 관점에서는 조금 마이너스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아이를 낳고 키우는 데 드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과 비용을, 대가족 구성원들이 조금씩 나누어 맡아 해결한다니. 그래서 '온몸을 갈아 생활비를 벌어오는 대가로 위세를 부리며 권력을 남용하는 사람'과 '온몸을 갈아 가사와 돌봄노동을 하느라 자기 삶을 희생하며 차별받는 사람'이 없어도 되고, 가족 내에서 모든 것이 평등한 분담으로 해결된다니. 아니 아이를 키우는 데 외할머니, 엄마, 이모들, 외삼촌들, 이렇게만 있어도 된다고? '가장' 노릇을 하는 한 명에게 경제적 부담이 집중되는 일이 없다고...? 그게 어떻게 가능해? 지금 우리 사회에선 부부가 맞벌이를 해서 모든 걸 갈아 넣고 가사와 육아는 돌보미를 써도 모두가 힘들고 모든 것이 너무나 부족한데...? ...너무나 꿈같은 얘기였다. 하지만 어쩌면 그건 모쒀인들이 문명이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인지도 모른다. 소규모의 자급자족 경제 하에서는 가능했으리라. 이미 문명을 체화하고, 살기 위해 막대한 규모의 비용을 필요로 하는 현대인들이 이런 시스템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마 무리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힌트로 가부장제 가족이 아닌 새로운 공동생활 형태에 대한 더 많은 아이디어들이 나오고, 나아가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생긴다면 정말 바람직한 일이 되리라고 생각하기에 이 책은 충분히 가치 있다고 느꼈다. 사실 (모쒀인들이 문명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바람에 이미 전통적 공동체가 파괴되기 시작한 시점에 씌어진 탓인지 더 많고 깊은 질문들을 던지고 고찰할 수 있어 보임에도 끝부분에서 조금은 급하게 마무리된 감이 있는) 책의 본 내용보다, 이민경 작가님의 역자 후기가 내 마음에는 더 오래 남고 끌렸다. 비혼 여성 네 명으로만 이루어진 공동생활이라니. 무척 궁금하고 기대되는데, 그 체험담도 꼭 책으로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많은 새로운 세대의 페미니스트들이 이 책을 시발점으로 해서 가부장제의 대안이 될 만한 공동체에 대한 다양한 실험들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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