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정부는 거짓말을 한다 - 20세기 진보 언론의 영웅 이지 스톤 평전
마이라 맥피어슨 지음, 이광일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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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원서가 쓰여진 건 2006년, 그리고 한국어판이 출간된 건 2012년, I. F. 스톤(이지 스톤)이 세상을 뜬 건 1989년이다. 저자는 이지 스톤이 죽은 이듬해부터 이 평전에 착수했다고 한다. 직접적으로 밝히진 않지만 저자 마이라 맥피어슨 여사는 이지 스톤과 꽤 친분이 두터운 사람이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생전에 인터뷰해놓은 이지의 목소리들이 적절히 끼어든다.

 

평전은 한 인물의 공과를 가감없이 평가하고 그로부터 대중에 계몽을 가져다주는 기능을 한다. 평전이란 저자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이 담기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저자는 평전의 특성을 멋드러지게 구현해, 이지가 지닌 장단점을 드러낸다. 그의 명성이 세간에 자자해진 195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 화려한 한 시절의 연대기에 집착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린 이지의 가정환경에서 그의 말과 생각과 행동이 미국 현대사에 미친 영향, 그를 둘러싼 주변, 시대의 정신적 물질적 분위기, 세상의 급격한 변화를 상세하게 서술한다. 우리는 굽이굽이 진로를 트는 현대사, 20세기 초강대국 미국이 낱낱이 해부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기자 출신 작가의 책답게 전체를 관통하는 저널리즘의 문제 역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맥락을 잃지 않는 선에서 역동적으로 다뤄진다.

 

이 책이 씌어진 발표된 시점과 한국어판이 출간된 시점 사이에 모종의 유사성이 있어 보인다. 원서가 발표됐던 2007년은 아직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집권기였다. 텍사스 갑부, 시장을 위해 전쟁을 감행하면서 온갖 거짓말을 늘어놓던 백인 우파 대통령의 대내외 정책에 미국 국민들이 하나둘씩 염증을 느끼고 있던 시기였다. 그리고 요즘의 한국은, 그 부시 대통령처럼 시장을 위해 국토를 희생시키고 해묵은 냉전 이데올로기를 조장해 남북관계의 경색을 가져오고 민간인 사찰을 감행해 인권을 유린하면서 온갖 거짓말을 늘어놓는 MB 집권 말기에 와 있다. 국민의 피로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부시와 MB의 친연성은 종교에 대한 보수적인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도그마에 사로잡힌 개신교 우월주의에서 진정한 기독(그리스도)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예수는 빈자의 편에 섰던 이다. 부시와 MB의 예수는 그러나 빈자가 아닌 부자의 편에 서 있다. 기독이 모든 이의 구세주가 아니라, 권력자의 구세주가 된 것이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가진 자들에 대한 반대, 그들의 말과 행동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정당한 시민의 권리라는 것이다. 언론이란 뱀처럼 부자들의 입 속에서 갈라진 혀 노릇을 해서는 안 된다는 전언을 이지 스톤의 삶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과거의 부시와 현재의 MB, 이지 스톤 평전을 접하면서 가도 가도 또 그 자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젯적 이야기인데, 아직도 이념의 잣대로 인물을 평가하고 그에게 빨간 딱지를 붙이는가. 이지 스톤 평전이 출간됐을 때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기사를 보니, 이지 스톤은 살아생전 불온한 자, 위험한 자로 찍혀 평생 FBI의 추적을 받더니, 죽어서도 먼 이국땅에서도 여전히 그 딱지를 못 뗐구나 싶어 씁쓸했다. 도무지 책을 읽어보고, 그 인물의 전모를 파악하고 말을 해야지, 까고 싶은 게 그 근거를 철저히 찾아서 해야지, 참 어이없다. 잘 뜯어보면 알겠지만, 이지는 리버럴이다. 골수 미국주의자. 제퍼슨주의자. 그게 못마땅할 수도 있다. 이지 스톤은 삶은 민주주의의 구현이라는 관점에서 올바르게 이해되어야 한다. 언론의 사명이 무엇인지, 참언론인의 표상으로 이지 스톤을 주목했던 하워드 진과 노엄 촘스키가 이 괴짜 언론인에게서 무엇을 봤던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이지 스톤은 권력자들의 얕은 수에 넘어가지 않았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이지 스톤을 추적했던 J. 에드거 후버와 FBI의 코믹함이다. 이지 스톤을 어떻게든 법정에 세워 감옥에 처넣고 싶어 혈안이 된 후버와 그의 똘마니들이 보여주는 행태가 방대한 기밀 문서에 정리돼 있다고 한다. 정보공개법에 따라 열람이 가능한 자료들만 1600페이지, 사실은 그보다 더 많은 자료들이 쌓여 있고, 그 속에는 공개된 것보다 훨씬 더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다고 한다. 후버와 그 따라지들의 코믹성을 보여주는 한 장면을 소개하면 이렇다. 이지 스톤은 귀가 아주 나빴다. 청력이 형편없어서 일찍 보청기를 끼어야 했다. 게다가 그의 캐리커처나 실물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엄청나게 두꺼운 안경을 끼고 있다. 눈이 안 좋다는 말이다. 자, 헌데 미연방수사국 FBI는 이지가 내다버린 쓰레기까지 뒤졌다. 도청은 두말하면 잔소리. 헌데 이지는 귀가 나빠서 대화를 할 때도 아주 큰 목소리로 했다. 전화통화를 엿듣는 정보요원들이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큰소리로 떠들며 전화를 해댔다. 그리고 거기엔 은밀히 엿들어야 할 국가기밀 같은 것은 없었다. 보청기가 말썽이다, 고쳐야겠다, 언제 가면 되느냐 같은 일상이 있을 뿐.

 

책에 보면 FBI 요원들은 이지 스톤의 본명 이사도어 파인슈타인 스톤(Isador Feinstein Stone)을 이사도어 핀클슈타인 스톤(Isador Feinstein Stone)으로 잘못 기록하는가 하면, 자신 본연의 임무인 감시(surveillance)라는 단어도 surveilance로 l자 하나를 빠트리고 기록할 만큼 부주의했다. 이러면서 이지 스톤을 40년 가까이 추적했다. 어제 청와대의 민간인 사찰 티브이 보도의 화면에서 "연예인 사찰"에서 "연예인"이 "옌예인"으로 표기된 것을 보고 슬쩍 웃음이 터져나왔다.

 

정말 이들의 행태는 코믹한 것이다. 헌데 이런 코믹함이 사람의 인생을 망치기도 한다. 아무튼 이지 스톤은 평생 정보기관의 불법 사찰에 시달렸다. 후버는 이지를 잡으려고 죽을 때까지 온갖 짓을 다했다. FBI 파일은 스톤에 관한 미니 도서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193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각종 기사와 칼럼을 스크랩한 것은 물론이고, 수많은 강연을 받아적은 문서가 가득하다. 그러나 열심히 따라다니는 요원들에게는 실망스럽게도 아리따운 미녀와의 밀회 같은 것은 전혀 없다. 스톤 파일은 쪽을 넘길 때마다 이지와 에스터(이지의 아내)가 같이 다니는 장면이 지루하게 이어진다. 이처럼 후버는 허탕만 치고 말았다. 그는 이지를 잡지 못한 채 죽었다.

 

이지 스톤 평전은 민주주의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일깨워주는 듯하다. 또 그 반대의 목소리는 내는 자는 어떠한 시련에도 꿋꿋해야 한다는 것도 함께 격려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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