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데미안 (양장) - 1919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헤르만 헤세 지음, 이순학 옮김 / 더스토리 / 201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의 주인공 싱클레어는 어렸을 때부터 세상을 선과 악으로 나누며 고민하고 방황한다. 그의 이분법적인 태도는 점점 더 그를 괴롭히며, 힘들게 만든다. '크로머'라는 아이를 통해 악의 세계를 접한 싱클레어는 그곳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그때 그를 도와준 것이 데미안이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구원자이며, 선생님이며, 또 유혹자였다. 데미안 은 그에게 모든 것을 선과 악, 두 가지로 나누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을 알려주며, 카인의 이야기의 다른 해석을 알려준다. 그리고 싱클레어는 혼란에 빠진다. 카인을 악, 아벨은 선이라고 알아왔던 그에게 실로 큰 충격이었다.

 

세상의 모든 것은 혼합과 조화로 이루어져있다. 우리를 이루고 있는 원자들도 양성자와 전자(음전자)로 이루어져있고, 우리의 마음도 선함과 악함으로 이루어져있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이기심도 있지만 이타성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그 둘의 합쳐짐으로써 형상화된다. 현실세계에서는 오직 하나의 성질만을 가지고 형상화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들이 선한 의도에서 한 행동은 나쁜 결과를 불러오기도 한다. , 사람들이 악한 의도에서 한 행동이 좋은 결과를 불러오기도 한다. 이 처럼 악한 것이든 선한 것이든, 그 안에는 악과 선 모두가 내재되어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대립관계 또는 싸움 등 악한 행동의 원인이 되는 것들은 이해관계에서 발생한다. 아무 이유 없이 누군가를 증오하고, 해치려는 행동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결국 선과 악이란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간은 추구해야할 '오직 선함'으로만 이루어진 ''을 상상했고, 배척해야하는 '오직 악함'으로만 이루어진 '악마'를 상상했다. 하지만, 절대선과 절대 악은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 악과 선은 관점의 차이와 잘못된 이해로부터 생겨난다는 것을 데미안은 알려주려고 했던 것 같다.

 

후에 싱클레어는 대학에서 방황하고 혼란을 겪는다. 심지어 그는 학교의 문제아가 되기까지 이른다. 그는 그를 구원해 줄 사람으로 데미안을 원하지만 데미안은 그를 도와줄 수 없었다. 그 때 싱클레어는 한 여성을 보고, 그녀에게 존경심과 사랑을 느낀다. 그는 그녀를 '베아트리체'라고 이름 짓는다. 그리고 그는 베아트리체를 그림으로 그린다. 그런데, 싱클레어는 그 그림 속에서 베아트리체 말고도, 데미안을 보고, 자신을 보고, 다른 여러 사람들을 본다. 사실 베아트리체는 단테의 '신곡'에서도 등장한다. 신곡에서 베아트리체는 단테의 구원을 도와주는 인물이다. 물론 헤르만 헤세가 그것을 의도하고 썼을지는 모르겠지만 베아트리체는 구원과 사랑을 의미를 지니는 것 같았다. 싱클레어는 데미안과 자신,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형상을 베아트리체, 즉 구원과 사랑 속에서 보았다.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사랑받음을 통해 싱클레어는 타락한 자신을 회복하고 정화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마지막에 싱클레어는 데미안과 다시 만난다. 그리고 싱클레어에게 이런 쪽지를 보낸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 이 구절은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이었던 것 같다. 가장 인상 깊고, 감동적인 구절이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편견과 틀, 그리고 관점에 같혀서 산다. 그것은 그들이 자신이 본 것만을 맹신하고, 그것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데미안은 그것을 깨라고 알려준다. 알을 깬 새는 하늘로 날아갈 것이다. 하늘은 비어있고 순수하다. 우리는 알을 깼을 때 선과 악이라는 고정관념을 벗어나 순수하게,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만의 관점, 즉 자신만의 선과 악을 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브락사스와 마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브락사스는 한 종파에 의해 숭배 받던, 후에는 악마로 전락한 신이다. 헌데, 아브락사스의 그리스어 문자를 모두 숫자로 바꿔 더하면 365가 된다. 이것은 365일을 관장하는 신들의 신이라고 해석된다. 데미안에서 아브락사스는 여러 가지 다양성의 융합과 궁극적 조화를 뜻하는 것 같다. 결국 그는 악이라는 것을 기피와 증오의 대상으로 보지 말고, 그것과 당당히 마주하여 소통을 통해 관점의 차이를 이해하고 포섭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데미안'을 읽은 지 조금 시간이 지나서 글을 쓰면서 책을 다시 보았다. 고전문학은 칭찬받는 정말 이유가 있었다. 읽으면서 생각을 하면 할수록 새로운 의미와 교훈이 떠올랐다. 신화나 판타지에 조금 관심이 있어서 소설의 이름과 아브락사스, 베아트리체를 판타지의 상징적 관점에서 해석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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