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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소아 - 리스본에서 만난 복수의 화신 ㅣ 클래식 클라우드 4
김한민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6월
평점 :
클래식 클라우드 <페소아 - 리스본에서 만난 복수의 화신> 은 첫 장에 실린 카페 브라질레이라 사진부터 마지막 장 읽어볼 만한 책과 참고 문헌까지 페소아와 그의 작품을 아끼고 연구하는 저자의 정성이 느껴지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포르투갈의 유명한 작가 페소아를 이 책을 읽기 전에 알지 못 했고 당연히 그의 작품을 한 권도 읽어본 적이 없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중에서 가장 낯선 이름을 찾다 보니 페소아가 눈에 들어왔는데 다 읽은 지금 페소아를 선택한 게 너무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친절하게 페소아 문학의 키워드를 다음과 같이 소개해 주었다.
1. 이명 2. 리스본 3. 오르페우 4. 메시지 5. 불안의 책
6. 오펠리아 7. 고독 8. 여행
위 8가지를 다 적기 보다는 내가 이 책을 읽고 나서 가장 기억에 남는 세 단어가 "이명","리스본","불안의 책" 이라 이것에 대해 작가가 적은 내용을 요약해 본다.
페소아는 알베르투 카에이루, 알바루 드 캄푸스, 리카르두 레이스라는 세 명의 이명으로 많은 작품을 썼고 이 외 문체와 정체성을 다르게 한 70여 명이 넘는 캐릭터를 창조하였다. 리스본은 페소아가 태어난 곳이고 그가 죽을 때까지 산 곳으로 그의 작품과 삶에 매우 중요한 장소이며 '불안의 책' 은 페소아가 1913년부터 집필하여 완성을 하지 못 하였지만 사후에 원고가 발견되어 1982년에 원고의 체계로 출판되었다. 이 책은 베르나르두 수아르스라는 인물의 일기이고 수아르스에 페소아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였으며 불안의 책은 페소아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읽히는 책이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동시대인을 두어 그를 잘 알기 위해, 그리고 저자가 영향받을 사람과 환경을 능동적으로 택하고 싶어 포르투갈과 페소아를 선택했다고 썼다. 동시대인을 알고자 하는 저자의 의지도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사람과 환경을 능동적으로 본인이 선택해서 페소아를 동시대인으로 연구하는 저자의 접근법이 매우 마음에 들었으며 저자가 생각한 동시대인에 대한 내용을 아래 밑줄긋기에 첨부하였다.
리스본은 다른 유럽 도시들보다는 내게 덜 유명한 곳이라 여행지 목록 최상위를 차지하는 도시는 아니었다. 하지만 저자가 페소아의 흔적과 영감을 찾아 나가는 여정에 동참하면서 알미란트 레이스 대로를 거닐고 싶고 페소아와 친구들이 토론하고 창작한 장소 카페 브라질레이라를 가고 싶고 알칸타라 항구에서 리스본을 오고 가는 사람들과 그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다. 책 중간에 삽입된 리스본의 골목길 사진들도 친숙했고 마치 거기를 거닐면서 나도 나 나름의 '이명'을 만들어 작품을 쓸 수 있을 것 같은 착각도 생겼다.
페소아의 이명에 대해 저자는 '창작 기계' 라고 소개했는데 하나의 이름으로 담기 부족한 페소아의 창작 욕망을 이명을 통해 구현해 냈고, '타자의 관점을 취해 넓은 시야를 확보하려는 본능'이 에세이에 나타난다고 했다. 이명에 대한 여러 학자들의 해석과 문헌들도 많으니 페소아에 대해 좀 더 알고자 하는 사람들은 자료를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이 책에서 저자는 페소아와 동료 작가들이 함께 창간한 계간 잡지 <오르페우>의 성격과 의의에 대해 잘 설명해 주었고 <불안의 책>을 볼 때 참고할 수 있는 내용과 불안의 책과 관련한 에피소드도 소개해 주었다. 그리고 페소아의 유일한 연인 오펠리아와 주고 받은 연애 편지도 일부 소개해 주었는데 페소아가 사랑에 관해 <불안의 책>에 적은 내용도 상당히 인상적이어서 그가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연애관을 가졌음을 알게 되었다.
페소아가 살았던 당시의 리스본과 현재의 리스본은 다르다. 이유는 1988년 시아두 화재 때문인데 비록 페소아가 거닐었던 곳과 똑같지는 않지만 여전히 페소아를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 포르투갈 국민들이 말하는 페소아를 현지에서 직접 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여행은 느낄 줄 모르는 이들이나 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행 책자는 경험을 풀어놓는 책으로서 항상 부족한 면이 있기 마련이다. 여행기의 가치는 글쓴이의 상상력에 비례한다."(불안의 책 텍스트 123) , "마찬가지로 어쩌다 기차역이나 항구 같은 출발지에 가까이 가는 순간, 여행에 대한 모든 상상은 창백하게 시들어버린다."(불안의 책 텍스트 265)
라고 쓴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페소아는 굳이 여행을 갈 필요성이 없다고 하였고 '상상 여행' 을 통해 상상만으로도 여행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지금 당장 리스본을 갈 수 없는 나와 같은 독자들은 페소아처럼 상상 여행을 하면서 리스본과 페소아의 작품을 느낄 수 있을 것이고 이 책은 페소아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페소아를 알게 해 주면서 페소아의 작품과 그의 생전 흔적을 따라갈 수 있게 길잡이 안내를 충실히 해 준다.
페소아라는 작가 자체가 독자에게 친절한 방식으로 작품을 쓰지 않았고 현대도 많은 학자들이 그의 작품을 여러 방향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 작가를 좀 더 알기 위해서 '불안의 책'을 비롯하여 그의 저서를 읽는 게 '페소아와 함께 하는 상상 여행'의 좋은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 한다.
책의 후반에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정서 '사우다드' 와 '창문하기' 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저자는 포르투갈의 역사적 특징으로 인해 발생한 '사우다드' 라는 여러 가지 성격의 그리움에 대해 서술하였다. 포르투갈에서는 사람들이 창 밖을 쳐다보는 일이 많아 '창문하다' 라는 동사도 있다고 하였는데 이 부분을 읽을 때 마침 나도 베란다 창 옆에서 이 책을 읽고 있던 터라 고개를 들어 잠시 '창문하다' 를 해 보았다. 비록 장소는 다르지만 포르투갈인과 페소아가 당시 어떤 생각을 하면서 창 밖을 바라보았을지 나름의 생각을 했다.
작가에게 '동시대인'인 페소아를 애정 어린 마음으로 잘 소개해 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고, 그 인물의 전문가만이 전해 줄 수 있는 정보들도 알게 되어 클래식 클라우드 <페소아 >를 읽은 것은 내게 매우 즐거운 경험이었다.
단, 여기서 어떤 동시대인인가를 질문할 필요가 있다. 그를 이 시간과 공간으로 호출하는 것인가, 내가 그쪽으로 호출당하는 것인가? 그도 아니면 사이좋게 중간쯤 어딘가에서 만나는 것인가? 그래서 전혀 다른 새로운 중간 세계가 열리는 것인가? 쉽게 말해, 누가 주도권을 쥐는 것인가? 아니, 이런 타협이 가능하긴 할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늘 페소아에게 끌려다니며 살아서 잘 모르겠다. 그에게 압도되어서는 아니고, 단지 그가 그의 자리에 최대한 온전하게 있는 상태에서 내가 접근하는 것이 가장 정확히 그를 이해하는 방법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 P19
페소아의 대표 이명 삼인방 알베르투 카에이루: 페소아가 "내 안에서 탄생한 내 스승"이라고 표현한 그는 모든 이명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중심인물로, 다른 이명들은 그를 중심으로 영향을 받고 상호작용하며 각자의 예술관을 형성해 나간다. 알바루 드 캄푸스: 다른 이명들이 일정 기간 동안 지속되다 어느 순간 흐지부지해지는 것과 달리 캄푸스는 페소아가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시와 산문을 써낸다. 페소아가 이명들에 대해 언급할 때도, "아무도 나를 개인적으로 만난 적은 없다, 캄푸스를 제외하고는" 리카르두 레이스: 에피쿠로스주의와 스토아주의의 상반되는 경향을 독특한 방식으로 결합한 고전 시인 - P68
불안의 책에서 만난 문장 인생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으로 가는 마차를 기다리며 머물러야 하는 여인숙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알 수 없다. (텍스트1) 우리가 사는 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우리 안에서 일어난다. 우리가 보는 곳에서 없어지는 것은 우리 안에서도 없어진다. (텍스트 279) - P122
낭만적 사랑이란 영혼과 상상력이 만든 옷이며 우연히 나타난 사람에게 입혀놓고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 옷이라고 비유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옷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는 우리가 만든 이상적인 의상이 헤어지고 , 그 아래로 우리가 옷을 입힌 사람의 진짜 육신이 드러나게 된다. 그러므로 낭만적인 사랑이란 환멸에 이르는 길이다. - <불안의 책> 텍스트 111 - P177
나는 사람들이 페소아를 모를 때 그를 알아봤다고 생각해왔다. 그를 포르투갈어로 읽고 제대로 이해하고 싶어서 이곳까지 왔고, 이 점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해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은 오로지 내가 처한 우물 안에서 통하는 얘기였을 뿐, 조금만 더 넓은 관점에서 보면 나 역시 이미 위대해진 인물의 발자취를 좇고, 속속들이 연구하고, 그러면서 학위를 받고, 소위 전문가 역할을 하고, 또 이미 신화가 된 사람을 또 다른 나라에서 신화화하는데 기여하고 있는 것뿐..... 이 모든 게 얼마나 쉬운 일인가, 정말로 관심을 받아 마땅한 숨겨진 동시대인을 단 한 명이라도 알아보는 것에 비하면? - P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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