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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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플롯의 효과적인 응집으로 스토리가 완성된다. 뮈소의 이 작품은 내가 읽은 뮈소의 소설중에서 플롯의 빌드업이 가장 잘 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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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이자벨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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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에 읽었고, 최근 다시 읽었다. 깊은 감동을 느꼈다. <오후의 이자벨>은 불륜의 외피를 두른 멜로지만 작품을 깊이 들여다보면 풍화되어가는 우리 인생에서 사랑이 필요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아,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서글프게 사라지는 인생이여, 사랑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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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젤리크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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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매우 재밌게 읽었다. 루이즈, 안젤리크, 마티아스 이 세 인물에 포커스를 맞추고 교직된 플롯은 다소 복잡하지만 에피소드가 흥미로워 가독성과 훈훈한 엔딩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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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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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이 고작 280쪽에 불과한 김훈의 신작 하얼빈을 읽었다. 이 소설은 이등박문이 명치 일왕을 만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작가는 망원경에 제 눈을 들이대고 안중근, 이등박문, 우덕순, 김아려, 빌렘신부, 뮈텔주교 등 소설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원거리에서 들여다본다. 작가는 결코 안중근의 행위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여 치열하게 파고들지 않는다. 소설 하얼빈에서 안중근의 행위에 민족사적 의미와 주제를 찾는 건 무의미하다.

분명 맛있지만 영양은 전혀 음식을 먹는 것 같다, 이게 그동안 김훈의 소설들을 읽은 나의 일관적인 독후감이다. 김훈은 소설을 쓸 때 1인칭 주인공 시점이든 전지적 작가 시점이든, 캐릭터 속을 깊이 들여다보거나 빙의하지만 캐릭터의 내면에서 아무것도 건져올리진 않는다.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를 쓴 <칼의 노래>, 병자호란 당시 인조를 중심에 두고 항전과 항복을 다투는 대신 간의 갈등을 다룬 <남한산성>이 그러한데 <하얼빈>에서도 반복된다.

캐릭터를 중심으로 서사를 구성하든, 상황을 중심으로 에피소드를 구축하든 이야기에는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있고 그 때문에 글을 짓는다. 김훈의 소설에는 그게 없다. 작의도 없고 주제도 없다. 그저 비장한 언어와 허무에 빠진 문체 뿐이다. 문학적 상상력과 창의력이 얼마나 빈곤했으면 15000쪽이 넘는 안중근 공식 자료집을 참고하고 쓴 결과물이 고작 280페이지에 불과하다. 도대체 읽을 게 없다.


극우적 정치성향에 남근중심주의자인 소설가 이문열은 내가 혐오하는 작가다. 그러나 이문열이 소설을 지을 때 주제의식과 상상력 만큼은 풍요롭게 전개한다는 걸 나는 인정한다. 이문열이 안중근 의사의 삶을 다룬 소설 <불멸>을 읽어보라. 800쪽에 이르는 서사에서 독자는 불모의 역사 속에서 안중근 의사가 고민한 행로를 공유하게 된다. 소설이란 바로 그런 거다. 김훈은 소설가가 아니다. 그저'갬성'적 문장을 잘 쓰는 수필가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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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3 - 되찾은 시간 2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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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퇴근 후 집에 오니 아파트 문 앞에 택배가 와 있었다. 택배 내용은 알고 있었다, 택배 기사가 문자로 알려주니까. 그래도 택배 상자를 집안으로 들이고 개봉하기 전까지 조금 설렜다. 민음사에서 출간한 김희영 선생 번역의 프루스트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완결 편(‘되찾은 시간’) 두 권이 도착했다.


이 번역 판본의 첫째 권 <스완네 집 쪽으로>가 처음 출간된 건 2012년 9월이었다. 나는 그해 10월쯤에 샀다. 그리고 2022년 11월 16일 오늘 마지막 두 권(‘되찾은 시간’)을 손에 쥐면서 지난 10년간 기다림의 대장정은 끝났다. 한 작가의 작품이 아니라 작품의 번역의 마지막 권을 기다리는 데 무려 십 년이 걸렸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전권을 처음 읽은 건 20년 전이다. 국일미디어에서 출간한 김창석 번역 판본이었다. 그 이후 동서문화사에서 출간한 민희식 판본, 펭귄클래식에서 출간한 이형식 판본을 차례로 읽었다.


그런데, 김희영 선생의 번역 판본은 13권 중에서 두 권으로 구성된 <스완네 집 쪽으로>를 읽고 더 읽지 않았다. 글맛이 너무 좋아서 감질나게 다음 권을 기다리는 게 싫었다. 그래서 완간되면 그때 한 번에 다 읽자! 그 생각으로 지난 10년간 한해 두 권정도 출간된 김희영 선생의 번역 판본을 꾸준히 사 모으기만 했었다. 오늘 마지막 편 두 권을 손에 쥐었고 소원을 풀 수 있게 되었다.

김희영 선생님! 고맙습니다. 잘 읽겠습니다.




올해는 프루스트 서거 100주년이 되는 해다. 프루스트는 19221118일 파리의 자택 아파트에서 숨을 거뒀다. 향년 51, 혹은 52. 평생 독신으로 살았지만 그에게는 영원히 사는 분신이 있다. 연작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사진은 2007327일 폐흐 라쉐즈 묘지에 있는 프루스트 묘지에서 찍었다. 프랑스에 가기 전 국일미디어에서 출간한 김창석 번역 판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고 난 후여서 프루스트 묘지에 꼭 가야지 하고 마음 먹고 있었다.

 

프루스트 무덤을 찾아 갔었던 그날, 빠리 20구에 위치한 페흐 라쉐즈 묘지는 싸늘한 봄철 속에 있었고 쓸쓸한 프루스트 무덤을 바라보면서 나는 혁명가 생 쥐스트의 말을 떠올렸다.

 

"명성은 공허한 소음일 뿐이고 지나가 버린 시절에 귀 기울여 보아도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언젠가 우리 무덤 주위를 지나다닐 사람 역시 아무것도 듣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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