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설' 작가의 문장은 처음 접해보았다. 문장과 문장을 읽어나가는데 '시'를 읽는 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어 하나하나가 조용하고 슬프다. 파스텔톤 표지에 의미가 모호한 제목. 슬프지만 아름답다는 표현을 덕지덕지 붙일 수 있는 작품이다.변변한 직장 없이 파트타임 근무를 하며 근근이 살아가던 '나'는 엄마 성화에 못이겨 반찬을 바리바리 들고 동생의 집을 방문했다가 악다구리를 당하며 제부에게 맞고 있는 동생과 맞닥뜨린다. 그길로 동생과 조카들은 '나'와 부모가 살고 있는 집으로 들어오고 '나'는 동생이 돈벌이를 하러 나가있을 시간 동안 조카들을 돌본다. 아버지의 장례 후 언어들이 살아있는 시를 쓰고 싶던 '나'는 집을 나오고, 연필을 들어본다.건설현장 경비일을 서던 아버지가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 돌아가시고 갈피를 못 잡고 슬퍼하는 엄마와 어린 두 조카를 책임지기위해 돈 벌기 바쁜 동생을 뒤로 하고 '나'는 나로 살기 위해 빈손으로 집을 나온다.(p.170) 모질어 보일 수도 , 무책임해 보일 수도 있는 그녀의 선택이 슬프고, 아프다. 자기 소리 내기를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저려온다.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속 '나'의 모습은 보는 내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 '시' 가 있어서 '쓰고 싶은 갈망' 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살아 있음을 느끼고 싶어서, 온전한 나로 살고 싶어서 모든 걸 박차고 나온 그녀가 대견스럽다. 이해 못할 누군가의 행동 속 그들은 자리하고 있는 그곳에서 더 이상 숨쉴 수가 없어서 발버둥치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숨쉬기 위해 발버둥치겠다는 걸 누가 비난할 수 있을까?능력있고 나이 어린 동생이 조카들 없이 누군가와 새로운 삶을 이루어나가길 바라는 엄마는 무언 중 '나'에게 무거운 짐을 지운다. 그런 엄마의 억지를 보고 평소 말이 없으시던 아빠는 '나' 에게 전화를 걸어 "꽃을 피우라"고 말한다.(p.117) 그녀는 꽃을 피우기 위해 집을 나와 자기만의 공간을 만든다. 그녀의 꽃은 만개하리라. 꽃을 피우라고 응원해주는 아빠와 그녀가 꽃을 피울동안 기다려주겠다는 '그'가 있기 때문이다. 나아갈 길이 힘들고 고달프고 오래 걸리더라도 그녀는 느긋하게 화 한번 안 내고 시인이 될 것이다. 그녀의 언어를, 문장을 소중하게 여기는 그가 있을테니 시인이 될 것이다.작가는 작품 말미 <작가의 말>에서 아이를 낳고 돌봄육아의 시간을 지내면서 자신이 글을 쓰지 못할까 두려웠다고 한다. 그러면서 시를 필사했고 시의 언어 속에서 문장을 찾고 다시 조금씩 조금씩 문장을 완성하여 이야기를 만들어 나갔다고 한다. 영영 쓰지 못하게 될까봐 두려웠을 그녀의 심정이 작품 속 '나'에게 온전히 투영되어 있다. 작가가 다시 숨을 쉬고 써내려 갈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다. 누군가에겐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 지금 여기서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나는 온전히 나로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생각하게 하는 밤이다.▶네이버 카페 <리딩 투데이>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개인적인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