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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의 날의 거장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271
레오 페루츠 지음, 신동화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5월
평점 :
<심판의 날의 거장>
-레오 페루츠
-열린책들
-열린책들 세계문학/271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모호하게 서술되어 화자의 이야기가 사건을 서술하는 것인지, 자기변명을 늘여놓는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어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게 하는 작품이었다. 환상 문학의 거장인 레오 페루츠의 <심판의 날의 거장>은 1923년 출간 당시 비평적으로나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두며 당대 굉장한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라고 한다. 고전이라 이름 불리는 이 작품이 고전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21세기인 지금 읽어도 전혀 고루하거나 따분함이 느껴지지 않고, 작품 속에서 다양한 사유를 끄집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고전의 가장 취약점인 가독성이 떨어짐을 이 작품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1909년 가을 오스트리아 빈의 한 저택에서 유명 궁정 배우 오이겐 비쇼프가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여러 불가사의한 정황 속에서, 퇴역 장교 요슈 남작이 비쇼프를 죽음으로 몰아간 장본인으로 지목된다. 그는 비쇼프의 아내인 디나와 과거 연인 사이로 그녀에게 아직 연정을 품고 있고, 비쇼프의 자살을 유도할 수 있는 정보를 가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엔지니어 졸그루프는 과거에 연달아 일어난 기이한 사건들을 비쇼프의 죽음과 연결 지으며 요슈 남작의 무죄를 주장한다. 졸그루프는 의사 고르스키 박사와 함께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시작하고, 요슈 남작 역시 나름대로 비쇼프의 죽음에 얽힌 수수께끼를 풀려 노력한다. 그리고 이들의 추적은 어느 고서에 적힌 묘약 제조법과 먼 옛날 한 화가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비쇼프는 자신의 연기가 이전만큼 만족스럽지 못해서, 꿈을 포기하고 약국에서 일하는 폴디는 다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고서의 힘을 빌리는 부분을 통해 '예술'과 '창작'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예술가들이 느끼는 창작의 고통과 거장이 되고 싶은 열망의 깊이와 크기가 대단함을 다시 확인한다. 그들의 거장이 되고 싶어 하는 열망은 자기만족을 위해서일지, 타인의 인정과 세상의 중심에 다시 서고 싶은 욕구 때문인지 모르겠다. 결국 그들의 고통은 창조자 본인을 피폐하게 만듦으로 이루어낸 창조물을 보는 우리의 기쁨이 되어 버린다. 잔인하다. 요새 '만족'이라는 키워드에 빠져있어서 그런지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욕심이 작품 속 모든 사건의 원인일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창작의 힘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낸 과거 자신의 능력에만 도취되어, 이젠 만들어 낼 수 없는 자기 능력을 인정하지 못하는 현실도피에서 오는 자기 파괴이다. 요즘 tv에서 이전처럼 화려하지도, 반짝이지도 않지만 더 여유 있게 삶을 살아가는 아이돌의 원조 이효리를 보며 그녀의 삶의 자세를 본받고 싶어지기도 했다. 이전과 달라진 자기 능력을 인정하고 웃으며 현실을 받아들이는 초월의 모습이 스스로를 행복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그녀를 통해 해본다.
묘약의 힘으로 자극받기를 바라던 이들의 최후의 순간에 그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환영들이 모두 제각각임을 이야기하며 고르스키 박사는 "우리 각자는 나름의 최후의 심판을 안에 지니고 있다" 말한다(p.234). 비쇼프는 아내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요수 남작은 자신이 인정받지 못하고 정신병자 취급받을 것에 대한 공포를, 졸그루프는 만주 원정에 참여했을 때 죽어가던 중국인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자신을 파괴한다. 나는 과연 무엇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지 못하고 나를 포기할지 궁금해진다. 내가 행했던 과거의 일들 중 양심의 가책을 느낄 만큼 잘못했던 일들과 후회하는 일들 혹은 지금 이 시점에서 내가 잃고 싶지 않을 만큼 소중한 것에 대한 애착이 나의 공포를 자극할 것이다. 나를 돌아보게 하는 부분이었다.
읽는 내내도 즐거웠지만 작품의 마지막 네 면을 할애하는 <편자 후기>는 고서로 묘약을 제조한 살림베니 박사가 환상 속을 헤매는 대상에게 행했던 충격 요법인 이마 한가운데를 주먹으로 때리기의 효과를 선서한다. 반전이 대가다운 결말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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