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모던 테일 ㅣ 안전가옥 FIC-PICK 2
서미애 외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5월
평점 :
『모던 테일』
서미애 ㅣ민지형 ㅣ 전혜진 ㅣ박서련 ㅣ 심너울 ㅣ 안전가옥
'안전가옥' 이라는 출판사는 호기심을 자극시킨다. 그 호기심은 기대감이다. 독특하고, 재미나면서도, 가벼운 방식으로, 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를 담은 작품들을 선택하는 출판사이다. 그래서 언제나 '안전가옥'의 작품들은 신뢰와 호기심, 기대를 가지고 책장을 넘기게 된다. 이 책 『모던 테일』도 그런 기대감으로 첫 장을 넘겼다.
낯설지도 진부하지도 않은 옛이야기에 동시대성을 결합하여 5명의 작가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고전의 재해석’ 을 꾀하였다. 스릴러, 미스터리, SF, 로맨스 장르에서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해 온 다섯 명의 작가진이 재해석한 고전은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신데렐라〉, 〈숙영낭자전〉, 〈당나귀 가죽〉,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다. 모두 옛이야기 속 숨은 장치들을 이용하여 현 시대 사회 속 문제점들을 멋지게 비꼬고 있다.
.
.
5개의 작품 중 최근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박서련' 작가의 [천사는 라이더 자켓을 입는다]가 가장 인상 깊었다. 박서련 작가는 샤를 페로의 <당나귀 가죽>을 가져와 권력자가 휘두르는 폭력에 대해 이야기 한다. <당나귀 가죽>은 왕이 자신의 딸인 공주에게 청혼을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공주는 이 상황을 '당나귀 가죽'을 뒤집어써 흉측한 모습으로 변해 왕국 바깥으로 달아난다.
.
.
서로 별 공통점이 없는 장년 남성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잇달아 뉴스에 보도된다. 이에 경찰은 어패럴 사업체를 이끌고 있는 나연을 찾는다. 당초 경찰은 사건 탓에 아버지를 잃은 친구를 둔 나연을 위로하며 정중히 수사 협조를 요청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연에게 차가운 태도를 보인다. 사망 사건이 발생한 장소 근처에서 비슷한 시각에 나연이 여러 번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나연의 회사 직원인 재희는 경찰의 의심을 비웃는데, 나연은 살인과는 거리가 대단히 먼 사람이라서다. 재벌가 막내딸이 되기 이전의 나연을 아는 재희는 그렇게 확신한다.
재희가 나연이 살인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것을 확신하는 이유는 그녀에게는 살인을 할 동기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너무나 뛰어난 사람은 모든 것을 다 가졌기에 누군가를 미워할 이유가 없을 만큼 나연이 보기에 재희는 평화롭다. 그녀의 평화로움은 그녀 스스로, 또한 그녀의 환경이 악의와 적의를 느끼지 못하며 살 수 있을 만큼 완벽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완벽한 평화로움'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각자의 혼란과 아픔을 가지고 있으며, 너무 큰 아픔과 혼란은 타인과 공유할 수 없다. 입 밖으로 내뱉는 것 부터가 지옥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재희의 아픔이 재희에게 더 견디기 어려웠던 이유는 자신만의 아픔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 나서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라이더 재킷을 입고 잠깐 자신의 모습을 숨기며 악을 처단하는 천사가 된 것이다. 권력을 무기로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 것을 당연함으로 알고 죄의식을 갖지 않는 세상의 모든 '벌거벗은 임금'들을 재희는 라이더 재킷을 입고 앞으로도 계속 처단할 것 같다. 그녀에게는 나연이라는 새로운 동조자가 생겼으니 말이다.
.
.
작품 속에 등장하는 방식으로는 우리의 삐뚤어진 사회 속 문제점을 해결할 수는 없다. 결과적으로는 악을 처단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과정이 또다른 악행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학 속에서 인물들이 악인에게 행하는 행동에서 대리만족을 느낀다. 그건 또한 그런 방식으로라도 그들을 처단하고 싶을 만큼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제대로 된 사회가 되길 바래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