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묻힌 거인 - 가즈오 이시구로 장편소설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하윤숙 옮김 / 시공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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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모르는 노부부(액슬과 비어트리스)는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도식(schema)의 여정을 선택한다. 명확한 목적지와 분명한 확신도 없이 자신들을 기다리는 아들을 생각하며 떠난다. 판타지 묘사로 그린 가즈오 이시구로의 『파묻힌 거인』 은 평화로운 고대 잉글랜드의 색슨족과 브리튼족의 갈등으로 암용(케리그)의 저주인 '안갯속 망각의 풍경'에 변화게 된 이유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서사로 들려준다. 기억을 찾는 자와 기억을 은폐하는 자 사이에서 그들의 목적은 암용이 죽어야 하는 이유에 같아지고 파묻힌 거인의 존재는 그간 잊고 살아온 기억의 실체를 드러내어 그들에게 다가오는 진실이 그동안 안개로 덮고 잊힌 기억을 눈앞의 잿빛 하늘로 가려버리게 한다.



4부로 나뉜 소설의 구성에서 가장 소름 돋고 오싹했던 부분은 2부에서 부터 시작되는 속도에 지치도록 끊임없이 이어졌다. 평화롭게 보이던 대지를 멀리서 바라보았을 때와 달리 가까이 들여다보는 현미경의 시선으로 따라갔다. 그러나 독자인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무엇이 진실인지 모르는, 소설 자체가 망각으로 빠져들게 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에 의문들이 쌓였다. 그것은 고대 잉글랜드의 배경에 둘러싸인 시간의 표층을 찾는 일 같았고 오늘날 영국의 역사를 거슬러 알아야만 할 것 같은 시선에서, 이 책은 뒤집어서 해석해야 할 역사를 알아야만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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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눈을 감지 않는다
에리 데 루카 지음, 이현경 옮김 / 바다출판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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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시공간이 현재인지 과거인지 꿈인지 싶은, 짚어가며 읽느라 애를 썼지만 자전소설이라 말하는 저자의 과거, 유년 시절의 추억 이야기는 진지하면서도 아이들의 관계와 호기심의 상황들이 생생했다.인상된 문장은 책의 제목이 담긴 페이지의 긴 글이 가장 강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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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여자의 공간 - 여성 작가 35인, 그녀들을 글쓰기로 몰아붙인 창작의 무대들
타니아 슐리 지음, 남기철 옮김 / 이봄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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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인의 여성 작가들의 집필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 대부분의 여성 작가들이 집필 공간으로 활용한 곳이 부엌이란 사실(시대적인 상황과 열악한 환경의 영향을 받아서) 반대로 글을 쓰는 공간이 있음에도 부엌에서 글이 잘 써지는 작가들도 있다고 한다. 그 밖의 펜과 종이가 올려져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으로 적합한 식탁의 사용도와 여러 도구의 쓰임과 활용의 변화도 시대의 영향을 받으면서 집필 도구와 공간의 분위기 또한 다양하고 다채롭게 변했다는 것을 읽게 되었다. 그러나 모두에게 공통된 공간은 머릿속이라는 사실이었다. 35인의 여성 작가 중에 먼저 떠오르는 작가는 버지니아 울프의 공간이었다. 그녀는 대중적으로 알려지는 것과는 달리 서재가 아닌 침실과 집안 곳곳을 어지럽히며 자신 주변에 원고를 쌓아놓고 글을 썼다고 한다. 그것이 습관이었다는 것에 비슷한 습관으로 창작활동을 하는 몇몇이 그려졌다.

저자는 말한다. 아는 작가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지 않고는 살 수 없었던 몇몇 여성 작가들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될 거라고. 글쓰기를 통해 큰 불행을 극복했던 이사벨 아옌데와 무미건조한 삶에서 탈출했던 제인 오스틴과 샬럿 브론테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 온실을 수리할 돈을 벌기 위해 요리를 하면서 작품을 구상했던 애거사 크리스티와 침대에서 글쓰기는 물론 자신의 일상까지 완벽하게 통제했던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도 만나보게 될 것이라고. 그랬다. 나는 저자가 설명하는 여성 작가의 공간을 만났다. 작품 해석을 시도하지 않았던 이유를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알 것 같았다. 책은 그 책에 맞는 주제의식이 분명하게 어필되어야 함을 읽었고 누구나 저마다의 조용한 열정을 갖고 있었다는 것에 동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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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모든 아침
자크 살로메 지음, 이정순 옮김 / 빛무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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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살로메는 심리학자로서 시가 있는 소설이란 글에 확연한 필감을 느껴준다. 독자가 화자의 서술에 흐름을 따라가는 이야기의 힘이 달랐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시만 좋았다 싶어지고 이야기는 화두를 위한 서술 형식으로 단조롭게 느껴졌는데, 책을 덮고 난 이후로 점점 빠져드는 매력과 여운은 깊고 풍요로웠다. 사람을 알아가는 느낌으로 이야기의 생각을 내려놓고 감정의 선을 따라 마음으로 포옹하듯 마주 바라보는 눈빛이 그려질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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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아키아, 이야기가 남았다 (레드케이스 포함) - 이동진이 사랑한 모든 시간의 기록
이동진 지음, 김흥구 사진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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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의 『파이아키아, 이야기가 남았다』를 만났다. 이 책은 수집 애호가의 시간이 기록된 추억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다. 사진과 함께 읽을 수 있기 때문에 '파이아키아' 공간을 관람하는 독자들에게 수집가인 저자의 상세한 설명과 추억이 담긴 이야기로 들려주는 글이라서 편안하면서도 즐겁게 읽었다.

평소 영화 평론가로만 알던 이동진이라는 이름 세 글자에 이 책만큼은 수집가로 붙어야 싶다. 흔히 덕질의 세계라 말하는 열정과 애정은 경지에 이르는 수집의 정석 이상인 진가를 보여주었다.

보통 사람들이 따라 하기엔 어렵다는 것을 느낄 정도였다. 간혹 방송을 보면 여러 수집가들을 보게 되는데, 동진 작가님도 예사롭지 않는 박물관을 만드셨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눈에 많이 들어온 것은 유명 인사들의 사인이었다. 사인도 사인이지만 특별한 소품을 활용해 사인을 받은 저자의 생각이 놀라웠다. 평소 작가에게 사인을 받을 때에는 책 앞표지가 대부분이고 영화인이나 뮤지션이라면 아마도 자신이 갖고 있는 악기나 소장하고 있는 음반이나 사진, 포스터가 대부분인데 동진 작가님은 작품에서 들려주는 핵심 키워드나 의미에 대한 상징적인 소품에 사인을 받는 이색적인 특별함이 더 깊이 다가왔다.

처음 책을 읽었을 때에는 박물관 도록을 읽는 느낌이었지만 글에서 느껴지는 저자의 세월에 스며든 시간의 기록이 삶이란 이야기를 들려준다. 유년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시간 동안 담아낸 수집품은 일상의 다른 에피소드가 아닌 애정 하는 모든 이야기가 수집된 것이다.

라디오나 여러 매체를 통해 동진 작가님의 이야기를 들은 팬들은 책을 읽는 내내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아! 그 이야기가 이런 이야기를 담아 말씀하셨구나. 싶어지고 소개된 영화며, 책이며, 음악들은 찾아 듣고 싶고 보고 싶은 작품들이 대거 출현되어 있다. 모르는 것이 많기 때문에 일단은 이동진 작가님의 추억 극장에서 절찬 상영 중인 '파이아키아, 이야기가 남았다'를 읽어봐야 알게 된다. 재밌게 본 이야기를 다 말하면 재미없지 않은가?

파이아키아에 소장된 책과 음반 그리고 dvd와 수집품은 일부만 책에 담겨있다. 유년시절의 최초 수집품인 우표부터 현재의 수집품까지 사물을 통해 들여다보는 이야기라는 현미경은 삶과 역사가 뒤엉키는 새로운 이야기로 보여준다.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저자는 남았다고 말했다. 이야기 혹은 다 나누지 못한 이야기가 앞으로도 얼마나 많을까, 더불어 오랫동안 파이아키아 공간에서 담으실 소장 목록은 새로울 것 같다. 동진 작가님은 계속 채우실 것 같다. 이야기를 말이다.

언젠가 속편인 '파이아키아'를 만나게 되지 않을까? 왠지 그럴 것 같다. 많고 많은 이야기 가운데 간추렸을 이야기는 분명 일반 사람들이 접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라서 신비롭고 놀라움이 앞서졌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수집이 단순한 취미가 아닌 이야기로 탄생시킨다는 것을 읽게 된다.

이 책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생략하기로 했다. 직접 책에 기록된 사진으로 보고 글로 읽어야 흥미가 높은 책이다.

시간이 흐르고 어느 날 음악을 듣다가, 영화를 보다가 생각나면 이 책을 다시 펼쳐 이야기를 만나게 될 것 같다. 장식품으로만 대부분 수집하는 의미와는 다른 이야기들을 저자는 파이아키아 라는 공간의 프리즘을 통해 들려준다.

파이아키아의 공간의 온도와 빛은 신비하고 다채로워 보인다. 재밌게 읽은 만큼 즐겁게 기억될 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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